[김택남 칼럼](6)희망과 성공의 차이 ... 희망은 등대와 같다
[김택남 칼럼](6)희망과 성공의 차이 ... 희망은 등대와 같다
  • 현달환 편집국장
  • 승인 2023.06.24 0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국장이 만난 제주사람, "아, 반갑수다!"
[김택남 자서전]내가 꿈꾸고 설계하는 세상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 5주년을 맞아 마련한 '김택남 칼럼' 제6탄의 주제는 바로 '희망'이다.

2023년 천마기업은 창립 57주년을 맞이했다.(1966년 4월 14일 김택남 회장이 나이 7살 때 천마물산이 창립된다.) 

김택남 회장이 천마그룹을 인수시 65명 가족이 지금은 300여명 가족으로 제주의 중견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그동안 김택남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제주도의 토종기업으로 57년이란 세월을 이어갔다는 것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하지만 도민들 역시 제주도에 이러한 역사를 가진 기업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만 한다. 왜그러느냐 하면 50여년간 존재하는 기업들이 몇 안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이야기하자면 57세된 중년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세월속에는 눈물, 기쁨, 온갖 감정들이 다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택남 회장은 향후 그룹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회사 발전을 위해 부서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 건지, 모든 일에 임직원부터 솔선수범하는 자세, 개인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규사업 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긴장하며 살아가자는 얘기를 한다.  

이러한 오랜 세월 속에 가장 돋보이는 단어가 '희망'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바로 희망을 보고 경영하는 것이다. 설계하고 도전하고 투자하는 것에 '희망'이 없다면 미리 관심을 끈다.

김택남 회장
김택남 회장

김택남 회장이 달랑 3500원을 들고 뭍에서 일하면서 잊지않은 게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사업체를 갖고 밤잠없이 노력한 것이다. 김 회장의 성실성은 그의 직장생활 때 진급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계장'이라는 직책으로 승진할 때 "내가 계장 승진됐다"고 하니 아내가 믿지않을 정도로 비약적인 승진인 것이다.

나이든 직원보다 먼저 진급하는 게 당시에는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성실성을 높게 사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기뻤을 때가 '계장'으로 승진됐을 때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부친이 늘 사업해야 한다는 말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언어'다. 희망의 언어는 한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바꾼다.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면서 지금은 도민 300여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희망의 언어는 가장 강력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어떤 주문, 요구를 할 때 먹히는 것이다.

가령 남녀 연인이 서로 '00하고 결혼하자'(00은 돈, 진급 등 다양할 수 있다)하면 서로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 희망은 굉장히 중요하다. 글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희망과 성공의 차이는 바로 꾸준함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지금 힘들다면 누군가를 위해 한송이 꽃을 심으라. 그 꽃이 희망이고 새로운 사람들이 꽃을 보러 올 것이다.

김택남 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난번 회사 주위 찜통더위 속에 사옥 주변에 수국을 심는 걸 목격했다. 그 꽃이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관심이 된다. 자신의 사업장만이 아니라 길 건너 이어지도록 해서 아름다운 길로 만들었다.

그 길이 아름다운 길이고 사람들이 지날 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당신은 어떤 꿈을 가졌는가. 꿈은 미래에 대한 기대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서 있을 때 한인들이 서로 네탓하면서 수염잡고 싸울 때 그는 집에서 큰 빗자루를 들고 와서 말없이 골목 청소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도자는 보여주는 사람, 거기에 늘 희망을 잊지않고 살아가는 사람. 그의 어록을 올리면서 마무리 해본다. 

소에게 무엇을 먹일까 하는 토론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소를 굶겨 죽였습니다.
百의 이론보다
千의 웅변보다
萬의 회의보다
풀 한짐 베어다가 쉬죽 쑤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바로 일꾼입니다 
- 도산 안창호 선생

오늘도 할 수 있다는 '희망' 갖는 시간이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희망과 성공의 차이

가끔 나에게 이 정도의 성공을 예상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질문에 "음,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예상했던 것 같다"고 대답하면 대부분 놀라는 눈치다. 하지만 사실 나도 내가 이만큼이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다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내게는 있었다.

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는 두 명이었다.

나는 맨날 먹는 보리밥에 마늘 장아찌만 담은 도시락을 친구들 앞에 꺼내놓기 싫었다.

선생님들 틈에서 점심을 얻어 먹은 그 소풍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이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고 할지 몰라도 남에게 내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스스로 내 인생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천마물산을 인수하고 제주도에 내려온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를 기억한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가난했던 너가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전화했다."

육지에서도 잔치나 제사 음식을 이웃에 나누지만 섬지역은 뭐든 나눠 먹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이 얼마나 가난한지 두고두고 가슴에 맺힐 정도로 실감했다.

이웃집 제삿날이라기에 밖에도 안 나가고 기다렸다.

떡을 담은 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보였다. 그런데 우리집은 건너뛰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우리집은 제사를 지내도 이웃집에 떡을 돌리지 못했다. 나눠준 떡이 없으니 돌아올 떡도 없었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그때 가난한 우리집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라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감이랄까.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하는 공부의 길에 순탄하게 진입하지 못했다.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고, 공부하는 방법도 몰랐다. 공부하는데 무슨 분위기나 방법 타령이냐 하겠지만 그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이들은 벌건 대낮에는 뛰어다닌다. 그래야 잘 큰다. 공부는 해가 저물고 전등 밑에서 해야 집중이 잘 된다. 하지만 전기세는 우리집의 수입과 지출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이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우리집 가계를 맡았던 아버지는 그 정도의 지출도 여유가 없었다.

그런 분위기도 그랬지만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몰랐다. 보통 형이나 누나가 공부하는 것을 보며 따라한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형, 누나 모두 매우 일찌감치 공부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스스로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조언 내지는 지시 사항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자 아버지는 나도 형, 누나처럼 일찌감치 학교 관두고 무슨 일이든 했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내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던 누나가 방패막이가 돼주었다. 어린 나이에 해녀가 되어 물질을 배운 누나는 숨을 참으며 번 돈으로 집안 살림과 내 학비를 거들었다.

나는 그런 누나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공부하는 방법은 여전히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마치 인디언처럼 공부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신통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두 번, 세 번 ...... 계속 읽었다.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때까지 읽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마뜩찮게 생각하셨다.

내가 공고에 진학한 뒤로는 전략을 바꾸어 뜬금없는 사업 타령을 하셨다.

"그깟 자격증 있으면 월급쟁이밖에 더해? 남자가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지."
"......"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애써 입을 꾹 다물었다.

공고생들은 2학년 때부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 학교 수업 외에 참고서와 문제집이 필요하지만 아버지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누나가 나섰다. 그 나이의 아가씨들은 반지를 좋아했다.

누나는 물질을 하며 스스로 장만한, 가장 아끼던 금반지를 팔아 내 책값을 내줬다. 나는 그때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품었다. 자식들 학비도 못 주실 만큼 가난한 부모님의 처진 어깨를 펴 드리고, 신주처럼 아끼던 반지를 미련없이 빼준 누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했다. 누나가 사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시험장에 가서 만난 문제들은 대부분 내가 읽은 책 몇 페이지와 관련된 문제구나 라고 기억할 정도였다.

고2 때 원하던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꾸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실망에도 좌절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과 누나는 나에게 각각 다른 희망을 안겨 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실망으로 자극하고 누나는 나에게 사랑이라는 부담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 자극과 부담이 나에게는 희망으로 구체화되었다.

희망은 등대와 같다. 희망이 없으면 길을 잃는다. 희망이 있으면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낙관적으로 대할 수 있다.

"낙관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생명력이다. 남들이 포기했을 때에도 희망을 갖게 하고 절망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미래를 포기해 비관론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희망의 이름으로 미래를 손에 넣는 힘이다."

히틀러의 독재정치에 맞선 독일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수용소에서 처형되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성공은 희망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성공을 꿈꿀 수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 고향을 떠나 육지에서 일할 동안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사업가가 되느냐 마느냐는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언제 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

◇미래를 손에 넣는 힘

등대
희망은 등대와 같다.

희망은 등대와 같다.

희망이 없으면 길을 잃는다. 희망이 있으면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낙관적으로 대할 수 있다.

"낙관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생명력이다. 남들이 포기했을 때에도 희망을 갖게 하고 절망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