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란 칼럼](6)신뢰와 정직의 맛 
[공영란 칼럼](6)신뢰와 정직의 맛 
  • 뉴스N제주
  • 승인 2024.02.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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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수필, 작사가
(사)종합문예유성 총무국장
가곡작사가협회 상임위원
공영란 작가가
공영란 작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김 노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이전부터 그 마을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일흔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빚진 적 없고, 넉넉히 나누며 살아 평이 참 좋다. 

평소 남의 말 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이를 멀리하고, 누구보다 정신이 똑바르고 기억력 좋은 맑은 사람이다. 젊을 땐 직장인이었지만 퇴사한 후, 일흔을 넘기면서부터 부담되지 않을 만큼 농지를 경작한다. 

그곳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팔아 생기는 돈을 아껴, 마을노인회관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남몰래 필요한 것을 파악해, 미리미리 사다 채워 놓는 걸 즐기고, 기뻐한다.

어떤 작물이든 수확하기까지 힘들게 일하는 농부가 흘린 땀방울은 거뜬히 한 바가지가 넘기 마련이다. “농사는 하늘이 반 짓고, 농부가 반 짓는다. 하늘을 맘대로 할 수 없지만, 농부가 부지런하고, 성실했는지 농작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는데 자고로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후회가 없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그의 수확은 늘 풍년이었다. 참깨랑 서리태를 늘 대풍으로 경작하다, 작년에 바꾼 배추 농사도 너무 잘 지어 대풍이라 보는 이마다 탐냈다.

원래 농작물은 경매하면 바로 현금 입금된다. 그런데 여태 살아온 원칙을 어긴 잘못인지, 사람을 너무 믿은 게 죄인지, 어쨌든 넉 달이 지난 지금도 김 노인은 그 배춧값을 못 받았단다.

대충해도 이삼천 단은 거뜬히 넘는 양을 그 마을 김치공장에서 밭떼기로 통째 천오백만 원에 사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현금이 없어 절임 배추와 김치를 판 후, 언제 기일을 정해 그때 꼭 주겠다. 

그러니 믿고, 자신에게 넘기라고 사정 사정을 했다. 그 똑 부러지고 인심 좋은 김 노인은 그가 원래 같은 동네 사람은 아니지만, 동네에서 공장 한지도 벌써 십육 년이나 됐고, 설마 배추로 김치 담그는 사람이 배춧값을 떼먹기나 하겠어. 한 생각에 인수증이나 차용증도 없이 그 사장 말만 믿고, 약조한 날에 달리 말 없어도 꼭 입금하라 말하고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사장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약속을 매번 어기고, 다음으로 미루기를 서너 번 하더니, 급기야 돈 줬잖냐는 거짓말로 우기다, 김 노인을 치매 걸린 미치광이 취급했다. 

김 노인은 생전 화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정말 화가 났다. 그래도 그는 꾹 참고, 형편이 어려우면 풀리 때까지 기다릴 의향이 있다. 자금 흐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확실히 내가 안 받았다.

 그러니 미결 확인 후 꼭 결재하길 바란다. 고 했다. 그러나 그 사장은 김 노인을 완전히 무시했다. 돈이 없다더니 인근에서도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건물을 임대한 후, 엄청난 투자를 해 번듯하게 꾸민 김치 요리 식당을 열었다.

개업식 날 김 노인은 축하도 하고, 음식 맛도 보기 위해 손님으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손님 대접은 고사하고 사장의 남편과 아들이 출입문을 막으며, 영업방해로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했다. 김 노인은 어이없고 기막혀 “내가 배춧값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손님으로 왔는데 이래도 되냐?”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작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건장한 그 두 남자는 김 노인이 꼼짝 못 하게 양팔을 하나씩 잡고, 들어 올려 도로 반대편에 내동댕이쳤다. 누가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본 눈은 많았다. 그 일은 사흘도 되기 전, 김 노인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어디서 말이 났는지 그 숨은 사연까지 보태져 온 동네 이미 쫙 다 퍼져 있었다.

거기다 개업하고 한 이틀 모든 게 너무 맛있었던 음식이, 사나흘 되는 날부터 밑반찬에서 메인까지 맛도, 때깔도, 다 그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맛만 없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먹은 후 속이 편치 않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동네 여러 곳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김 노인 말고도 그 전년도에 그에게 배추를 넘긴 사람은 결국, 변호인 중재로 배춧값을 반밖에 못 받았단다. 

그는 다 자신이 여물지 못해 당한 일이라 생각하고, 부끄러워 어디가 말도 못 하고 속병만 났다면서 김 노인을 위로했다더라. 그래서인지 급기야, 김치를 담고 팔고 나면 상품성 없는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데, 식당을 차린 이유가 그 찌꺼기 처리를 위함이다. 거긴 절대로 가지 말자. 쓰레기 음식이라 맛이 없다. 는 등 여러 추측성 소문이 난무했다.

식당을 열기 전 사장은 어느 지역의 길게 줄 서서 먹는 맛집을 경영하다 추가로 분점을 하니, 맛이야 이미 보증된 것이라 맛에 대해 말이 필요 없다. 고 주변에 홍보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고 있던 그의 아들은 이웃의 물음에 진실을 말했다. 엄마가 김치를 공급하는 친구네가 맛집이다. 엄마도 그런 맛집을 하고 싶어, 거기서 일하며 배워와 차렸다. 개업할 때 그 엄마 친구가 한 이틀 도와주러 왔었다. 그때 자신도 배워 바쁠 때 돕는다. 라고.

소문의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온 동네 쉬쉬하며 태산처럼 퍼진 소문은 다시 거두기가 쉽지 않다. 땀 흘려 애써 수확한 농작물 값에 대해 그렇게 한 게 사실이라면, 그리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음식엔 과연 정직할까. 모두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사람이 무슨 음식에 대한 철학을 갖고, 맛에 자부심 느낄까 싶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인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고, 사는 이유도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 입맛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과 평이 아니더라도, 맛이 아니라면 다시 찾지 않는다. 하물며 먹은 후, 속이 편치 않고 탈 나는 사람이 많다면, 누가 거길 찾을까. 거기다 온 동네 평판이 그러니, 그 사장이 알아도 그걸 바꾸려면 아마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다 싶다.

거짓의 산이 아무리 높고 웅장해도 진실의 작은 뜨락을 다 가리지 못하는 이치를 그 사장이 알고, 반성하여 사죄할 일은 용서받고, 샘도 깔끔히 매듭지어, 신뢰와 정직의 맛을 살리는 올바른 삶을 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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