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란 칼럼](11)야행의 비밀
[공영란 칼럼](11)야행의 비밀
  • 뉴스N제주
  • 승인 2024.03.25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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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수필, 작사가
(사)종합문예유성 총무국장
가곡작사가협회 상임위원
공영란 작가가
공영란 작가가

내가 사는 곳은 개발업이 활발한 곳이다. 때문인지 농지의 객토 작업도 빈번하다. 토지개발업은 주로 주변의 야산이나 언덕, 등을 깎아 밀어 평지로 만들고, 땅이 단단하도록 다지고, 방치된 폐가는 부수어 없애, 그 땅을 필요에 맞게 용도변경 해 되파는 일이다.

이때 처리해야만 하는 많은 양의 흙과 돌, 등이 부산물로 생겨난다. 누군가에게 팔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에 많은 양이다 보니, 대부분은 오히려 돈을 주고, 갖다주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로, 처리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니 농지들 가운데 지반이 낮거나, 땅이 상대적으로 주변과 비교해 꺼져 있어, 높이 조절이 필요한 곳이나 계곡, 웅덩이, 등 메우기 작업이 필요한 곳에, 개발 작업으로 생겨난 흙을 갖다 부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야산이나 언덕, 등 맨땅으로 있었던 흙은, 농지 객토 작업에 사용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영양분도 많고, 부드러워, 상당히 그 질이 양호하고 좋다. 그러나 폐가, 등의 건축물을 부수어 나온 폐건축물은 농지 객토에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규정이 있다. 그러니 개발자는 폐건축물 처리로 늘 고심이 많다. 우선 제대로 잘 처리하려면 비용이 적지 않게 들기도 하거니와, 흔쾌히 받아주는 곳도 많지 않아, 난감한 게 사실이다.

지난가을 어느 날 밤잠을 자는데, 서너 시간 동안 쿵쿵 쾅쾅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시끄러움에 잠을 거의 잘 수 없어 꼬박 밤샌 날이 있었다. 소리는 들렸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때문에, 우리 강아지들만이 아니라, 온 동네 강아지들까지, 난리라도 난 듯 요란하게 계속 짖었다.

 두 소리가 합해져 결국,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란스러운 소음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하나둘 불을 켜고는, 뭔 일인가 밖을 내다봤다. 그랬더니 한 달이 넘도록 매일 낮에 하던 객토 작업을, 왠지 그날은 자정까지 조용하다가, 다들 자는 한두 시가 넘은 그 늦은 밤을 이용해 아침까지 마을 사람들 잠도 못 자도록 하는 거였다.

그곳은 사실 우리 마당 담장 펜스 바로 앞인데 다 마당보다 낮고, 담벼락 가로등이 하도 밝아, 작업하는 게 그쪽에선 우리가 안 보일진 몰라도, 우리에겐 훤히 다 너무 잘 내려다보였다. 남편은 춥다며 금방 들어갔지만, 나는 한 시간도 넘는 한참 동안을 지켜봤더니, 덤프트럭은 쉴 새 없이 짐을 싣고 와 쏟아붓고 갔다. 포크레인은 이전에 객토한 곳에 구덩이를 엄청나게 깊이 파고, 덤프트럭에서 쏟아부은 걸 거기다 메우고, 또 그 위에 구덩이 파면서 나온 흙으로 덮은 후 쿵쿵 꽝꽝 다지기를 한다. 

작업은 날이 밝아지기 전에 어느 정도 매듭짓고, 해가 뜨고 아침이 되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크레인만을 덩그러니 남기고,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그리곤 다음 날부터 포크레인 기사만 며칠 더 와서는 땅을 고르게 평평히 해, 겉보기엔 아주 객토 작업이 잘 돼 보이게 해 놓곤 사라졌다.

주변에선 웅성거렸다. 저것들이 왜 그 야밤에 도둑질이라도 하는 마냥 그랬을까? 뭔가 눈에 띄면 안 되는 게 있어 숨기려고 몰래 한 거 아니겠냐. 땅 주인은 알고 있을 거니 물어보자. 땅속에 묻으면 안 되는 뭔가를 묻은 게 분명하다. 그러니 신고해야 한다. 땅을 파봐야 한다. 등의 무수한 논란으로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꽤 시끄러웠다. 

그렇다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소유 땅을 함부로 파 볼 순 없었다. 게다가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게 아니니, 신고도 할 수 없었다. 까딱하다 무고죄나 명예훼손의 송사에 휘말려 역풍을 만날 수 있었기에, 모두 말만 그럴 뿐 누구도, 어떤 시도는 하진 않았다. 그러나 모두는 분명 폐건축물을 묻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랬다. 내가 밤에 혼자 마당에서 지켜본 바로도 확실한 사실이었다. 남편에게 말하니 우리는, 외지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나서서 말해, 분란의 중심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다가 송사에 휘말리면 아마도, 이곳에 정착 못 하고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설 것이고, 나쁜 일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지켜보자, 결론지었다.

나쁜 짓은 가만히 두어도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토지 소유주가, 그곳을 다른 용도로 뭐를 해볼 요량으로 시에 토질역학을 의뢰해, 구조물의 기본이 되는 토양의 검사와 토질 측정을 하게 되었다. 시에서 나온 기사가 지면으로부터 지하 얼마까지를, 파이프를 박아 검사하다가 땅속의 이상을 언급했고, 시에 보고가 돼 원상 복귀 통보를 받았다. 

토지 소유주가 한바탕 난리를 쳐, 객토 작업을 진행했던 이는 다시, 포크레인을 동원해 지금 한참 원상 복귀 작업 중이다. 잔꾀 부리다 제 발에 넘어진 샘이 된 것이다. 

결국, 업자는 어쩔 도리 없이 벌금을 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상복구 하느라 비용도 몇 배로 더 덜게 됐다. 이를 보는 이마다 안타까워하기보다,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고 불신하니, 신용만 잃게 된 꼴이다.

예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인두겁을 쓰고 살면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노려 토양의 환경을 파괴하고, 그 농지 수확물을 먹는 이들의, 건강에까지 나쁜 영향을 주거나 해칠 수 있는 일을, 남의 눈을 피해 몰래 하였지만 의도치 않아도 이렇게 드러나, 결국은 더 큰 손실로 돌아옴은 물론, 자신의 신뢰까지 바닥으로 무너뜨리게 되었으니, 사람이 얼마나 밝지 못하고 어리석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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