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란 칼럼](12)준비는 자기 돈으로 해야지 
[공영란 칼럼](12)준비는 자기 돈으로 해야지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4.08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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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수필, 작사가
(사)종합문예유성 총무국장
가곡작사가협회 상임위원
공영란 작가가
공영란 작가

 

이십 년 가까이 보아온 영숙은 좀 다혈질이긴 해도 착한 심성을 지녔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우아한 옷차림, 붙임성 좋고 싹싹한 그녀는 잘 웃는 성격이다. 이곳에 350평의 땅을 마련해, 직접 설계한 집을 지을 때만 해도 그녀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멋진 삶을 살 것이란 확신이 있었단다.

그러나 인생이, 삶이, 어찌 뜻한 대로,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귀농하겠다고 땅을 보러 다닐 땐 어느 땅이 좋을지, 본 땅의 장래 전망에 관한 조언도 구하고,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의논하더니, 마련한 땅에 집을 지을 땐, 우리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듣지 않고 무시하며, 좀 과할 정도로 무리하여 집을 지었다.

그녀가 땅을 사고 남은 돈은 겨우 일억 정도뿐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쏟아붓는 게 아니다. 얼마의 여유를 남겨야 흔들림 없는 평안한 일상유지가 가능하다. 요즘 같은 때, 대출까지 해서 너무 무리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 형편에 맞게 살다, 열심히 돈 벌어 자비만으로 지을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정말 원대로 잘 지으면 좋겠다. 요즘은 이동식 주택도 엄청 안전하고, 견고하게 잘 나온다. 무엇보다 혹 이사 갈 때, 갖고 갈 수 있어 집 문제는 바로 해결되고, 싫으면 다시 팔아도 그 비용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좀 괜찮은 이동식 주택에 살다, 돈 모이면 집은 그때 짓는 게 어떻겠냐. 등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도, 영숙은 이미 귀를 막은 상태라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도 막지 못하는 고집불통으로 영숙은, 친정 오빠에게 빌린 일억오천과 은행으로부터 이억의 대출을 받아, 직접 설계한 집을 지었다. 그리곤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여, 집들이도 성대하게 했다. 나와 남편은 별도 조용한 날에 초대했다.

 남편은 참 잘 지어 집이 좋다며, 그녀가 듣기 좋아할 소리만 했다. 그러나 집을 본 나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전혀 없는, 마치 사막에 덩그러니 홀로 선 선인장 느낌이랄까. 편안한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집 같지 않고, 무슨 물류창고 같은 냉랭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구조도 꾸밈도 평생 살 집을 이렇게 짓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 중에, 자꾸 어떠냐는 물음이 난감해 그냥 깨끗하네. 만 계속했다.

우리의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현실이 되었다. 무리한 대출이 그녀의 삶을 흔들고, 옥죄게 되어 안정된 현실이 어려웠다. 대출금리가 많이 올라 회사 월급만으론 이자조차도 갚기 힘들어져, 궁리 끝에 그녀는 퇴사 후 인근에 식당을 차렸다. 남편과 나는 주변 지인들과의 식사 약속은 다 그쪽으로 잡았고, 바쁠 땐 내 일처럼 도왔다. 다행히 손맛이 좋고, 활기찬 성격에 늘 밝은 얼굴로 열심인 모습이 안타까워 이웃들은 단골로 이용하며 매상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침체 현상이 시작되고, 상황은 나아지기보다 점점 더 나빠져 사람들 씀씀이가 줄고, 점점 지갑을 닫아 외식도 줄였다. 하여 당연히 식당 매출도 급격히 줄게 됐다. 고맙게도 그녀 오빠는 자신이 가진 상가에, 임대료 없이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잘 운영해 돈을 좀 벌어보라고 했다. 식당 임대 기간을 거의 1년 정도 남긴 상태라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버티다 못해 임대료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오빠 상가가 있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으로, 식당을 옮길 준비를 시작했다. 지방의 개업 준비는 이곳을 운영하며 짬짬이 하느라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곳 준비 시작 전, 이곳 건물주에게 미리 말해 임대공고를 내게 했다. 주차도 쉽고 위치도 나쁘지 않았지만, 임차를 문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숙은 장기전이라며, 여긴 기한까지 월세를 내더라도 일단, 오빠네 상가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러자 때마침, 임차를 원하는 명희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7월부터 사용할 것이니, 6월 말까지 임차료를 내라며, 7월 1일 계약을 요구했다. 

영숙 입장에 선 그래도 6개월의 월세 부담은 덜게 되었다. 새해 시작은 오빠 상가에서 할 계획으로 이사를 하려니, 건물주가 6월 말까지의 월세를 다 주고, 가라고 했다. 영숙은 군말 없이 그렇게 하면서, 몇 개의 잔짐과 벌레퇴치기기와 자신이 설치한 다른 한 장치를, 6월 말 임대차기간 만료 시점에, 갖고 가겠다 하고 남겨 놓았다.

명희는 분명 7월부터 상가를 쓴다고 했다. 그런데 영숙이 이사 간 1달이 지나자, 내부 길이와 높이를 측정하여, 안에 비치할 여러 기구 등을 어디 둘지 등, 어떻게 꾸밀지 자세히 보고 설계할 수 있게, 문을 좀 열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아 그러냐, 그래라. 열어준 그때부터 매일 자꾸 와 볼 일이 있다며, 문을 좀 열어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영숙이, 지방에서 매번 오기가 번거롭고 힘들어, 열쇠는 건물주에게 잠시 맡기고, 우리에게 자기 식당을 좀 봐주고, 무슨 일이 생겨, 변화가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해, 그러기로 했다.

명희가 처음 문을 열어달라고 한 며칠이 지나자, 인부를 불러 식당에 물받이 공사를 시작했다. 그걸 본 사람마다 물어봤다. “7월부터 쓴다더니 이번 달부터 사용하나 봐요? 영숙이 부담 좀 많이 줄겠네!” “아 아니, 그건 아니고요.” “네? 아닌가요?” 그녀는 침묵했다. 그리고 일주일 넘게 매일 오며, 공사를 완성한 후 가스를 설치했다. 다음 날은 간판을 달고, 대형 냉장고 하나를 들여놓더니, 며칠은 오지 않고 잠잠했다. 

그달을 열흘 남긴 월요일이 되니, 우리에게 영숙의 잔짐을 좀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게 아니니 물어보겠다고 했더니, 잔짐을 모두 밖에 내놓고는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날 모든 집기와 기기를 다 들여놓았고, 삼일지나 홀의 테이블까지 싹 다 들여놓았다. 어쩌지 못해 우리는 영숙과 통화 후, 나중에 오면 갖고 가라고 한 후, 잔짐을 우리 집에 보관했다.

이후 매일 와선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청소하고, 테이블 등 자리 배치를 이리했다, 저리했다 하느라, 이웃은 몇 날 동안 소음을 느끼며, 시끄러움을 참아야 했다. 그런 그달 중순엔 개업 예배를 드렸고, 이틀 후부터 오전 11시면 문을 열어 저녁 7시까지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나는 물어보았다. 이제 임대료 부담하고 계속 장사하는 거냐고. 그랬더니 아니다. 아직은 장사가 될지, 안 될지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전에도 그녀에게 열 번도 넘게 물어봤지만, 아니다. 7월부터 사용하기로 했다는 말만 하고, 그저 비웃는 듯이 입을 삐죽이며, 소리 없는 웃음만 웃을 뿐이었다.

명희의 이런 행동이 의아해 건물주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준비는 필요하니, 그런 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영숙과 다, 얘기가 되었나보다 여겨 굳이 통보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숙과 얘기된 게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언급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영숙과 가깝게 지낸 이웃은 많아, 그들 중 여럿이 전화로 이런 상황을 다 알린 모양이었다. 

또 영숙의 자택이 이 마을에 있어, 주말 저녁이면 매번 와서 굳이 누가 전해주지 않아도 보고, 이런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길 한 달이 지난 주말 저녁에 영숙이 우릴 찾아 왔다. “새로운 임차인도, 건물주도 계속 기다리는데도 누구 하나 일언반구 아무 연락도 없고, 무슨 말이 없네요. 이 사람들이 도대체 날 어찌 보고, 이렇게 무시하고, 경우 없이 굴까요? 정말 괘씸해지네요.” 했다.

주일 지나 월요일 영숙이 건물주에게 전화하니, 받지 않아 문자와 카톡으로 통화를 원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는데, 연락이 없다며 우리에게 전화가 왔다. 혹 보면, 그녀가 전화 좀 달란다고 전해달랬다. 의사전달은 금방 되어 영숙과 건물주가 통화 중 언쟁을 했는지, 명희네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를 좀 보고 와서,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라 금방 알려주고 좀 지나, 영숙이 우리에게 말해준 통화내용은 이랬다.

영숙이 노발대발하며, 6월 말까지 임차료를 낸 가게의 모든 권리는 내게 있지, 명희씨 당신에게 있지 않다. 당신은 지금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여, 무슨 공사를 하고, 집기를 넣어 장사해 영리를 취하고 있냐. 이게 말이 된다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냐. 

애초에 1월부터 사용한다고 했으면 내가 왜 6월까지 월세를 냈겠냐. 이게 분명 나를 기만한 사기가 아니고 뭐냐? 내게 6개월 치의 월세를 돌려줄 거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이미 6월까지 월세를 내고, 이사 갔으면 끝이잖냐. 지금은 그냥 준비하는 것일 뿐이다. 7월에 개업식 하면, 그때부터 월세 내면 되는 거 아니냐. 계약이 그때로 돼 있다. 라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차서, 영숙은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세상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대. 아니 이 여자 도대체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 말을 했단다. 아니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행동을 했을 땐, 법적 대응쯤은 각오했으리라, 여긴다. 6개월 치의 월세를 내게 주던가. 아님, 당장 간판 내리고 모든 집기 싹 다 드러내라. 난 도저히 그냥 둘 순 없다.

 만약 둘 중 어느 쪽이든 이행치 않을 시엔, 반드시 고발해서 법적 처벌받게 할 것이다. 그랬는데도 그녀는 공사하고, 간판 달고 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 이왕 이래 됐으니, 이달 월세는 주면 되잖냐. 뭘 그것 같고, 그렇게 화내며 법적 운운하냐. 나도 다, 먹고 살려니 그랬다. 라고 해, 영숙은 기가 차서 법정에서 보자. 하고는 전화를 끊었는데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참을 수가 없단다.

사실 이 일은 임대차법을 운운할 거 없이 단순한 문제였다. 먼저 건물주와 명희는 영숙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명희가 공사 시작한 달부터 월세를 내고, 건물주는 영숙에게 미리 받은 월세를 되돌려 주고, 마지막으로 영숙의 잔짐과 아직 철거하지 않은 출입문의 벌레퇴치기, 등 두 개의 장치를 떼 갖고 가면,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간에 명희는 끝까지 이달 월세부터 줄 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영숙은 결국, 다음 날 사기와 무단침입 등 여러 건으로 위자료까지 받을 생각으로 그들을 고소했다.

시골은 작은 일도 금방 소문이 난다. 영숙의 고소장 접수는 누가 말했는지 더 빨리 온통 주변에 퍼졌다. 명희는 다음날 하루 식당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영숙에게 식전 댓바람부터 전화해선, 첫마디가 하루 지났으니 이제 마음이 좀 진정되고, 화가 가라앉으셨나요? 좋은 게 좋다고 우리 서로 얼굴 한번 안 본 사이에 신경전 맙시다. 

벌레퇴치기랑 장치는 나도 다 필요하니, 내가 다 쓰게 해 주고, 그냥 이달부터 월세 낼게요. 그러니 건물주께 이달 월세만 돌려달라 하세요. 하고는 이혼하고 혼자 딸 하나 키우면서 어렵게 산다는 둥, 등등 자기 한풀이 얘기를 한 시간 넘게 하고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겠다며 끊었단다.

세상엔 참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이 산다. 그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만난 사람의 대부분은 가능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영숙도, 우리도 좀 황당했다. 

이유야 어떻든, 처음부터 남을 속이고, 남의 걸 내 것처럼 당연히 여기면서 무한 배려까지 바라는, 정말 뻔뻔하고 경우 없는 무개념은 처음이라, 모두 참 이상한 여자가 이곳에 왔네! 자신이 존중과 배려를 받으려면, 먼저 저부터 경우 있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 양해를 구했어야지. 

무슨 개똥처럼 세상 다 제멋대로 하면서, 별 개뼈다귀 같은 사람 다 봐. 준비는 자기 돈으로 해야지. 왜 남의 돈으로 해. 하고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헛웃음을 웃었다.

여하튼 영숙과 명희가 원만히 잘 해결하여, 오랜 시간 법정을 오가지 않길 바란다. 모두 하는 사업이 잘 돼 돈 많이 벌어, 돈 때문에 얼굴 붉히지 않고 너그러이, 그러세요. 할 수 있는 정말 풍족한 여유가 생기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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