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N아침시](95)무명초 할머니
[뉴스N아침시](95)무명초 할머니
  • 뉴스N제주
  • 승인 2022.05.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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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작가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장영주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무명초 할머니

장영주


해마다 4월은 오고 3일이 되면 
우리네 가슴에 밀물 같은 아우성이 인다.
가물가물함이 헝클어져 다하지 못한 목숨 
안타까운 절규가 분간 못할 모습으로 달려든다.

할머니 4.3 이 뭐우꽈?
응, 죄 없는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지
아기를 업은 어머니도 학생도
그게 4.3의 시작이란다.

할머니, 할머니, 왜 사람을 죽여요?
그 이유를 모르겠단다.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말도 안 했는데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산 너머 어둠은 차마 부끄러워 나를 감춘다. 
달도 없는 밤 검은 연기 피워 오른 세월이 두려워
그 밤 그 이슬에 피멍이 서러워 피맺힌 나를 지우려 한다.
붉게 물든 붉은 꽃 영혼의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른다.

붉은 꽃? 붉은 꽃이 뭐예요?
동백꽃이란다.
하얀 눈밭에서 흘린 붉은 피가 꽃봉오리가 되었단다.


알고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입 닫고 살았던 그 시절에
나처럼 입에 총을 맞은 게 어쩜 좋았는지 모른단다.
할 말은 많은데 어디다 말할 수 없구나.
음식을 먹지도 못하며 그렇게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단다. 

할머니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글쎄다. 그게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물 한 방울 삼키기도 목이 메이는 구나.

나 이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련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곳에서 그냥 그렇게 살련다. 
마냥 들리는 총소리 내 턱을 찍지 근 찢는 
소리가 없는 하얀 세상으로 가련다.

할머니 정말 미안해 난 몰랐어.
아니란다. 한라산 자태에 취해 소쩍새 울음소리 붉게 물든 사이로
내 가슴에 깊게 새겨진 영혼이 눈보라 되어 이젠 탄식할 힘마저 사라지는구나.


한평생 은닉하면서도 음식을 씹어보지 못한 무명초 할머니
이제는 마음껏 말을 하십시오.
이제는 마음껏 세월을 쓰십시오.
이제 갈등도 없는 세월 아기 손자의 재롱을 받으십시오.

누가 누군지 모르고 한데 모은 100조 상에
자손 되어 한가락 제를 지내는 백조일손지묘
얼음 추위에 죽어가면서도 
아기를 꼭 껴안은 모자상이여!

해야 솟아라 빨갛게 솟아라
워어이 웡이자랑 모두 불러 모아 한자리에 앉자

함께 가자 우리 함께 가자
끌고 간 세월의 흔적, 지난날 슬픔을 딛고 새로운 태양 작열하는 지평선 향해
힘차게 걸어가자 우리 모두 힘차게 걸어가자.

무대 빛을 받으며 가수가 등장한다.

해마다 4월은 오고 3일이 되면

우리의 가슴에 밀물 같은 아우성이 인다.

그때 그 소리

그때 그 얼굴

그때 그 이름

몰려드는 바위 같은

귀에 익은 목소리

어른거리는 얼굴

가물가물한 이름들이 마구 헝클어져

분간 못할 모습으로 달려든다.

다하지 못한 목숨 안타까운 절규

간절함에 견디지 못할 그리운 이름 부르며 달려간다.

붉게 물든 동백꽃 새겨진 영혼의 눈물이 비가 되어

눈이 되어 가득히 내리는 4.3의 아련한 탄식이여

다시 무대는 어둠이 내리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스크린에 얼굴을 무명으로 둘러싼 할머니 여정이 나타나며

손녀가 가수와 무명천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손녀가 무명천 할머니에게 묻는다.

손녀: 할머니 4.3 이 뭐우꽈?

무명천 할머니 영정은 그대로 있지만, 대답은 가수가 한다.

1947년 3월 1일 오후 2시 45분

관덕정 앞에서 총성이 울렸단다.

제주경찰서 망루에서 경찰이 구경꾼을 향해 총을 쏘았어.

6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단다.

아기를 업은 어머니도 있었고 학생도 죽었지

그래도 경찰은 사과 한마디 안 했단다.

그게 4.3이 시작이란다.

손녀: 할머니, 할머니, 왜 사람을 죽여요?

글쎄다.

그 이유를 모르겠단다.

아무 일도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말이야.

가수 혼자서 노래 부른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이 어인 하늘의 슬픔인가?

산 너머 어둠은 밤을 새우고 내 이름 차마 부끄러워 나를 감춘다. 나를 지우려 한다.

달도 없는 밤 검은 연기 피워 오른 세월이 두려워

그 밤 그 이슬에 달도 제 모습이 아니구나

가슴 아래 피멍이 서러워 붉은 꽃은 피맺힌 원한만 남았구나.

손녀: 붉은 꽃? 붉은 꽃이 뭐예요?

동백꽃이란다.

추운 겨울날인데도 저절로 피어 해마다 끗긋한 강인한 생명을 피운단다.

하얀 눈밭에서 흘린 붉은 피가 동맥 꽃이 되었단다.

알고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입 닫고 살았던 그 시절에

나처럼 입에 총을 맞은 게 어쩜 좋았는지 모른단다.

할 말은 많은데 어디다 말할 곳이 없구나.

하얀 천을 입을 막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며 그렇게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단다.

손녀: 할머니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관중석 웃음

다시 정적이 잦아들며

이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련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곳에서 그냥 그렇게 살련다.

붉은 동백꽃이 피면

마냥 들리는 총소리 내 턱을 찍지 근 찢는

소리가 없는 하얀 세상으로 가련다.

손녀: 할머니 정말 미안해 난 몰랐어.

아니란다.

한라산 자태에 취해 소쩍새 울음소리 붉게 물든 동백꽃 사이로

내 가슴에 깊게 새겨진 영혼이 눈보라 되어 이젠 탄식할 힘마저 사라지는구나.

영정과 소녀가 무대 뒤로 사라지며 가수가 혼자 무대 중앙에 선다.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목소리만 들린다.

손녀: 백조일손지묘가 뭐예요?

할머니: 응, 오래전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단다.

단군 할아버지 자손들이 육천만 명이 넘는단다.

이렇게 단군 할아버지는 한 분인데 자손이 많은 거지?

근데 말이다.

제주에는 4.3사건이 터졌단다.

동네 사람 모두가 총살당했거든.

사건이 잠잠해지니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부모·형제가 죽은 곳에 와 보니

어느 게 자신의 가족인지 알 수 없게 시신은 갈라지고 부패하고 흩어져 있었거든.

그러니 서로 다툼이 생긴 거야.

“이건 우리 아버지 신발이야.”

“뭐라고, 천만에 우리 삼촌 신발이거든.”

“아냐. 이건 우리 오빠 신발이라니까.”

사람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은 시신 조각 하나를 두고 자신의 가족의 신발이라 우겼던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시신을 수습해 보시다. 팔, 다리, 목, 가슴…….”

이렇게 한 무덤에는 여러 사람의 시신이 모이니 온전한 가족은 아니거든.

그래서 여러 조상은 있지만, 자손은 하나라 정해 단다.

조상은 백인데 자손은 하나란 뜻이지.

무대에 가수를 향해 한 줄기 빛이 비치며

얼음 추위에 죽어가면서도 아기를 꼭 껴안은 모자상

한평생 은닉하면서도 음식을 씹어보지 못한 무명초 할머니

이제는 마음껏 말을 하십시오.

이제는 마음껏 세월을 쓰십시오.

이제 갈등도 없는 세월 아기 손자의 재롱을 받으십시오.

해야 솟아라

빨갛게 솟아라

워어이 워이자랑 모두 불러 모아 한자리에 앉자

함께 가자 우리 함께 가자

끌고 간 세월의 흔적, 지난날 슬픔을 딛고 새로운 태양 작열하는 지평선 향해

힘차게 걸어가자 우리 모두 힘차게 걸어가자.

무대에 동백꽃, 무명초 할머니가 스크린에 비치며 손녀가 나타나 가수 옆에 선다.

님께서 가신……. 음악이 은은히 퍼지고 그에 맞춰 노래 부른다.

관중석에서도 손뼉을 치며 따라 한다.(이때 자막이 나가면 더욱 좋다)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오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여

바람 불고 비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엔 눈물이 넘칩니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손수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오

떠나시는 님의 뜻은 등불이 되어

눈보라가 휘날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님의 행복 빛나소서

(개작, 글다듬고 고치기 해도 좋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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