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6)세계지질공원 산책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6)세계지질공원 산책
  • 뉴스N제주
  • 승인 2020.08.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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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칼럼][1]차귀현(遮歸縣)의 비경(秘境)과 비사(秘史)를 찾아서
(사)질토래비 이사장
문영택 수필가
녹고의 눈물...
녹고의 눈물...

특이한 지질형태를 보여주는 이곳 해안가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용암 쇄설물이 바닷물과 만나 약해지면서 사구를 특이하게 형성한 곳이다. 절벽 틈에서 흘러나온 물을 모으는 샘터를 만났다. 녹고의 눈물이라 하는 약수터이다. 한 모금 마시고 입안을 다시고는 내뱉는다. 소금기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맛이다.

(★녹고의 눈물 : 수월봉 전설에 따르면, 어머니의 병환 치유를 위해 약초를 찾아 절벽을 오르던 누이 수월이가 떨어져 죽고 동생 노고마저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수월봉 절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녹고의 눈물’이라 불렀고 남매의 효심을 기려 이 언덕을 ‘녹고물 오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제주관광공사 설명)

세계적인 지질명소로 선택된 이유는, 엉알이라 불리는 해안가의 단애가 세계 수성화산 중에서 가장 멋진 응회암의 퇴적구조이기 때문이라 한다. 수만 년에 걸쳐 변동하는 해수면과 그에 따른 화산체의 침식작용과 강한 바닷바람은, 아직 채 굳어지지 않은 화산재층을 아름답게 조각해 놓았다. 그 화산재층 언덕 위에 신석기 초기의 고산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에는 수월봉을 고산(高山)으로 표기했다. 표고가 70여 m의 높이로 낮은 해안 언덕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산’이라 부르고 있다. 수월봉은 지각에서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과 만나서 격렬한 폭발로 만들어진 수성화산으로 응회환(tuff ring)이고,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당산봉도 수성화산으로 응회구(tuff cone)란다.

수월봉은 화산재를 비롯한 화산성 물질들이 부스러기 형태로 층층이 쌓여 있는 응회암 지대이다. 수월봉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응회암의 두께는 77m로, 당시 분화구는 침식되어 사라지고 없다. 수월봉은 분화구가 없는 수성화산체인 셈이다.

수월봉 해안 도로
수월봉과 차귀해안 도로

수월봉이 솟아오른 시기는 1만 8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에 해당된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하강하고 반대로 간빙기가 되면 북반구의 두꺼운 얼음층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지금은 간빙기로 해수면이 가장 상승된 시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최대 150m까지 하강했다고 한다. 현재 한반도와 중국 사이의 바다인 황해의 평균 해수면이 약 50m이므로, 당시에는 해발 100m 높이의 육지가 드러났다는 지질학적 상상이 과학 문외한인 내게도 가능해진다.

빙하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약 2만년에서 1만 5000년 전이다. 이중에서도 1만 8000년 전에 해수면이 가장 하강했다 한다. 당시 해수면은 일본 오키나와 중국과 제주도는 물론 이어도도 육지로 드러나 있었을 때에 수월봉이 형성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월봉 해안 도로
자구내 포구

고산리 지역은 바다의 수중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넓게 깔려 평야가 되었고, 그 평야에 숲이 만들어져 주변의 당산봉 ‧ 수월봉과 함께 사냥터뿐만 아니라, 열매를 채집하는 과원으로도 이용되었을 것이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소라와 전복 등 각종 어패류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자구내 하천에서는 생활식수를 얻을 수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신석기 후기에는 자연신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전복껍질로 화살촉도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고산리 선사문화는 제주시 용담동 ‧ 한림읍 금능리 ‧ 구좌읍 김녕리 ‧ 조천읍 북촌리 등지로 널리 퍼져나갔다 한다.

사진 제주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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