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7)석기시대로의 시간 여행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7)석기시대로의 시간 여행
  • 뉴스N제주
  • 승인 2020.09.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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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칼럼][1]차귀현(遮歸縣)의 비경(秘境)과 비사(秘史)를 찾아서
(사)질토래비 이사장
문영택 수필가
천연기념물 제342호. 주굴의 길이 2.9 km. 총길이 11 km.​위 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於音里)​동굴 입구는 해발 230 m의 비교적 평탄한곳에 있는 함몰구(陷沒口)로 약 20 m를 내려가면  서쪽 방향 또는 북서 방향으로 뻗은 터널이 전개된다.​동굴로서는 매우 거창하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동굴로 웅장한 직류형인 주굴과 2층 ·3층으로 교차되는 미로형의 가지굴이 복합 발달하였다. 속칭 ‘소라굴’이라고도 불리는 이 동굴은 나선상으로 발달한 공동(空洞)의 형태가 희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이 동굴은 그 구조나 형태면에서 중요시될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의 동굴주거 유적으로서의 석기, 목탄류와 순록 ·황곰[黃熊] 등의 동물 화석이 발견되어 한국 본토와의 육속(陸續), 제4빙기(4만~3만 5000년 전)가 한국을 거쳐 갔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등 고고학상의 가치도 매우 커서 보존 연구를 위해 비공개 영구보존 동굴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빌레못동굴 - 제주시 애월읍|작성자 뾰족부리
애월읍 빌레못 동굴 입구 (사진 카페 퍼옴)

우연히 애월읍 빌레못 동굴 입구에 간 적이 있다.

그곳 안내판을 읽다보니, 제주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하는 역사적 의구심이 조금 풀리기도 했다. 제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만 년 전인 중기 구석기 시대부터라 한다.

애월읍 빌레못 동굴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제주도에 흔한 돌인 현무암을 떼어내어 찍개나 긁개, 돌칼, 톱날과 같은 도구를 만들었고, 갈색곰 ‧ 사슴 ‧ 노루 등을 사냥하면서 생활했었을 것이다. 제주시 삼양동 삼화지구와 외도동, 한림읍 동명리, 서귀포시 천지연 바위그늘 집자리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도 이와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며 생활하였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는 빙하 시대와 간빙기 시대가 번갈아 있었던 시기로서,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낮아져서 한반도와 중국대륙이 서로 연결되었던 시대이다. 그러기에 인류는 물론 갈색곰과 대륙에 살던 사슴과 노루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제주도에 들어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살았던 시기에는 화산활동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많아서 기후나 지각변동에 견디지 못하여 모두 멸종되었다고 전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잇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다가, 이곳 한경면 고산리 한장밭에서 구석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유물로는 무늬 없는 토기 파편과 타제석초, 첨두기(창끝), 화살대를 만드는 시병연마석기(矢柄硏磨石器) 등이고, 이중에서도 슴베가 달린 유설 첨두기는 아직 한반도에서는 출토되지 않은 형식이라 한다. 이런 유물들의 발견으로 고산리 한장밭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 고산리 선사인들은 북방민족이었다. 빙하시기에 북방에 살던 선사인들은 따뜻한 남쪽지역을 찾아 한반도와 지금의 황해인 넓은 평야로 내려왔는데 이들 중 한 갈래는 강원도 동해안 오산리로, 다른 무리는 부산 동삼동으로, 또 일부는 제주도로 들어왔다고 전한다.

약 170만 년 전부터 해수면 아래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되어 16만 년 전에 한라산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후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12만 년 전에는 백록담이 형성되고, 10만 년 전부터는 기생화산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져서 곳곳에 오름이 형성된다. 2만 5천 년 전까지 이러한 활동이 진행되면서 오늘과 같은 제주도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 한다.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빙하기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150m 정도 낮아, 한반도 ‧ 중국 ‧ 일본이 연결되어 있어서, 북쪽에 살던 사람들과 동물들이 제주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1만 년 전을 전후로 하여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이 형성되어 제주도가 탄생되었다.

1만 년 전쯤 제주도가 섬으로 형성되던 시기에 일단 제주에 들어온 이들은 고립되어 제주도 풍토에 맞는 독특한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갔을 것이다. 이들은 떼어내기 방법으로 자그마한 돌화살촉과 돌망치 등의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을 게고. 토기로는 식물줄기를 보강제로 섞어 만들었으며, 후기에는 덧무늬 토기도 만들었다. 이러한 석기와 토기는 제주도가 섬으로 이루어진 후 제주선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도구들이다.

1653년(효종 4년)에 편찬된 이원진의 탐라지에 의하면, 당시 고산리 지역에는 박은곶(所近藪소근수) 이라는 숲이 한라산에서부터 당산봉 차귀당까지 이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구내도 꽤 큰 규모의 하천이었을 것이다. 수월봉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고산리 유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내가 흐르고 숲이 우거져 있는 천혜의 환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이 시작되나, 제주도는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화산회토가 많았다. 이를 체득한 고산리 선인들은 수렵이나 채집, 어로 생활을 더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덩치가 작고 동작이 빠른 사슴과 노루를 잡기 위하여 다양한 돌화살촉과 창을 만들었으며, 움집보다는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동굴과 바위그늘을 이용하여 집자리를 만드는 등 자연조건을 이용하면서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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