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1)탐라 성주‧왕자의 탄생과 문가(文家)의 입도 배경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1)탐라 성주‧왕자의 탄생과 문가(文家)의 입도 배경
  • 뉴스N제주
  • 승인 2020.10.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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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칼럼][2]나는 천사방성의 땅 탐라가 낳은 왕자손이로소이다!
문영택 수필가 · (사)질토래비 이사장

문영택 칼럼인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 기행' 제1편의 '차귀현(遮歸縣)의 비경(秘境)과 비사(秘史)를 찾아서'가 마무리 되고 이제 본격적인 탐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제2편 '나는 천사방성의 땅 탐라가 낳은 왕자손이로소이다!'의 제목으로 이번 주부터 독자들과 만납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제주특별자치도와 한국예총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회장 부재호)가 주최하고 탐라문화제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제58회 탐라문화제가 오는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산지천 탐라문화광장에서 개최된다.(사진=제57회 탐라문화제 모습)
사진=제57회 탐라문화제 모습

2. 나는 천사방성의 땅 탐라가 낳은 왕자손이로소이다!

1980년대 교사시절, 말띠이며, 말의고장 남원읍 출신이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12년 선배 교사와 나는 입씨름을 하였다. ‘저는 이래봬도 탐라왕자 손 이우다. 제주에서는 고씨가 성주를, 문씨가 왕자를 했덴 햅디다.

책에도 경 써 있고 마씸.’이라고 하자, 제주에 무슨 왕이 있고, 왕자가 있느냐는 것이다. 제주에 왕은 있었지만, 왕 대신 성주라 칭했고, 내가 말하는 왕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세습적인 벼슬이름이라고 말했으나,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음 날 관련서적을 보여주어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만치 왕궁이 없는 제주에선 역사도 사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에, 우리의 논쟁은 싱겁게 끝내야 했다.

(1) 탐라 성주 ‧ 왕자의 탄생과 문가(文家)의 입도 배경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로 된 성을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성을 가진 사람보다 성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게다. 조선 초기에는 양민도 성을 가질 정도로 성씨가 보편화 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은 조선 후기에도 성을 쓸 수가 없었다.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 시행으로, 누구나 성과 본을 가질 수 있도록 비로소 법제화 되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씨는 5582개, 본관은 3만6744개로 조사되었다. 한자가 있는 성은 1507개고, 없는 성이 4075개다. 한자가 없는 성씨는 하질린, 쓰룬, 추옹, 호이 같이 귀화한 외국인 성씨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10대 성씨로는 김 ‧ 이 ‧ 박 ‧ 최 ‧ 정 ‧ 강(姜) ‧ 조 ‧ 윤 ‧ 장 ‧ 임이고, 제주 10대 성씨로는, 김 ‧ 이 ‧ 고 ‧ 강(姜) ‧ 박 ‧ 양 ‧ 오 ‧ 강(康) ‧ 최 ‧ 정 ‧ 문이다.

남평문(文)씨를 쓰는 인구수로는 전국적으로 20위 전후이지만, 유독 제주에는 10대 성에 낄 정도로 많음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문씨가 제주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12세기 탐라시대부터다. 탐라라는 명칭이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말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제주도를 주호(州胡), 도이(島夷), 탁라(托羅), 동영주(東瀛洲), 섭라(涉羅), 탐모라(耽毛羅), 탐부라(耽浮羅), 모라, 담라, 탐라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島)를 섬이라 하듯, 탐(耽) ‧ 담(儋) ‧ 섭(涉) 등의 음이 섬과 흡사하여, 도국(島國) 즉 섬나라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3세기 경 진수가 편찬한‘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 기록된 내용이다.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 있는데 주호라 한다. 그 섬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언어는 한(韓)나라와 다르며, 모두 머리를 짧게 깎아 선비족과 비슷하다. 가죽옷을 입었는데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없어 마치 벗은 모양과 같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고 배를 타서 한(韓)나라와 중국과 왕래하며 장사를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선덕여왕(645년)때 자장법사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는데, 이는 신라를 위협하는 주변 9개국을 제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겠다는 염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주변 9개국(중국, 일본, 오월, 거란 등) 중 4층에 언급되고 있는 나라가 ‘탁라(托羅)’인데, 이는 탐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이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에 조공을 받쳤듯, 탐라국은 백제에 이어 통일신라에 조공을 받쳤다. 백제에게는 476년(문주왕 2년)부터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여, 백제가 멸망(660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라와는 662년(문무왕 2년)부터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후 8세기부터 조공관계로 꾸준히 교류하였으며, 일본과 당에도 사신을 파견하였다.

제주선인들의 삶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같이 결합할 때 더욱 알찬 교훈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실(fact)이라는 단어와 허구(fiction)라는 말이 합쳐진 역사적 허구(faction)라는 말이 드라마를 중심으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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