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91)고구려 왕 이야기(6)
[장영주 칼럼](91)고구려 왕 이야기(6)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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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주) 필자는 1986년 지우문예 추천 작가이다.

80년대는 설화와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다. 이때 소년 소녀 『한국의 역사』 일문당, 1987년 전 12권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하늘의 자손 단군에서 시작하여 조선왕조까지를 한데 아우르는 대 서사시적 드라마이다. 야화와 전설, 실담과 변형되어 내려오는 비슷한 이야기까지 한대 아우러진 설화소년소설인 셈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 책 1권에 나타난 이야기를 토대로 이에 맞는 사료를 찾아 덧붙여 마사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의 소견까지도 곁들여 왔는데, 마침 고구려 제12대 왕을 이야기하려 보니 아뿔싸 2권 책이 없는 게(분실? 찾지 못함) 아닌가?

해서 이번부터 나가는 한국왕조 설화 고구려 왕 이야기는 소년소녀 한국의 역사 책을 들여다보지 못한 체, 타 역사서와 필자 소장 자료를 검토하여 인터넷과 접목 새로운 왕조설화가 이어져 나가고 있음을 밝혀 둔다.

○ 중천왕

224년 출생 270년 사망, 재위기간(248년~270년)

삼국사기 원문읽기, 고구려 본기와 기타 자료를 덧붙여 보면, 12대 왕 중천왕(태자 때 이름 연술)은 248년 동천왕이 세상을 뜨니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중천왕은 국상인 명림어수의 보필을 받아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의 안위와 삶의 개선을 위해 애썼다. 전쟁 피해가 심한 지역에는 세금을 감면해 주고 각 고을의 관장에게 명해 떠돌이 백성들에게는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보살피게 했다.

어느 해 겨울, 국상 명림어수가 왕에게 아뢰었다.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려면 왕실이 번창해야 합니다. 왕께서 아직 배필을 맞이하지 못하셨으니 한시라도 빨리 혼례를 치르셔야 좋을 듯 아뢰오.”

“오호! 그러하마.”

중천왕은 연나부 출신인 연 씨를 왕후로 맞아들였다.

1년(원년 248년)

몸가짐과 용모가 준수하고 명석한 지략이 있는 연불은 동천왕 17년 태자로 책봉되고, 동천왕 22년 9월에 왕이 돌아가자 즉시 즉위여 제12대 중천왕이 되었다.

3년(250년) 왕이 국상 명림어수에게 명하여 안팎의 군사 업무를 겸직하게 했다.

4년(251년) 왕이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고 서해에 던졌다.

(관나부인 이야기는 별도 처리)

​7년(254년) 4월 국상 명림어수가 죽자 비류 패자 음우를 국상으로 삼았다.

8년(255년) 왕자 약로(후에 서천왕)를 태자로 삼고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렸다.

9년(256년) 11월 연나부의 명림홀도를 공주에게 장가들게 하여 부마도위로 삼았다. 12월 눈이 오지 않았으며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12년(259년) 왕이 두눌곡에서 사냥을 나갔다. 위나라 장수 동천왕 때 유옥구에게 식읍을 하사한 곳이 두눌이다.

13년(260년) 왕이 졸본으로 가서 시조 사당에 제사 지냈다.

15년(262년) 왕이 기산의 언덕에서 사냥을 나가 백색 노루를 사로잡았다. ​

23년(270년) 왕이 돌아가시다. ​중천의 언덕에 장사 지내고 시호는 중천왕이다.

● 관나부인 이야기

관나부 부장 ‘척발’이 왕의 환심을 사려 딸을 바쳤다. 궁에 들어온 딸이 관나부 출신이라 관나부인이라 불렀다.

중천왕은 관나부인을 총애하니 이를 질투한 왕후가 그녀를 몰아낼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차, 왕이 왕후의 침소로 찾아들었다. 오랜만에 왕을 본 연 씨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관나를 소후로 들이려 하오. 왕후가 신경 좀 써 주시구려.”

소후로 관나부인을 맞겠다는 왕의 말에 연 씨는 화가 났지만, 억지웃음을 지었다.

“왕실의 번영을 위해서 좋은 일이지요. 신첩이 두루 살필 터이니 심려치 마소서.”

몇 달이 흘렀다. 국왕 내외와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명림어수가 시중에서 떠도는 소문을 중천왕 앞에서 했다.

“위나라 임금이 장발 미인을 천금을 걸고 백방으로 구하고 있다 합니다.”

중천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천하를 뒤진다 해도 관나만한 미인은 찾을 수 없을 거요.”

왕이 관나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 왕후는 기분이 상했으나 짐짓 이상한 소리를 했다.

“위나라와 싸운 후 양국 간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폐하께서 아량을 베푸시어 화해를 도모하신다면 천하가 태평할 겁니다.”

“왕후의 뜻이 아름답구려. 그럼 무엇을 내세우면 저들이 화친을 받아들일 것 같소?”

왕후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위주가 장발 미인을 구한다고 하니 나라 안을 찾아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중천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나부인을 겨냥한 얘기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 알 수 있었다.

왕후가 중궁으로 돌아가고 둘만 남게 되자 중천왕은 명림어수에게 물었다.

“왕후가 소후를 미워하고 있는 것 같지 않소?”

“그런 듯합니다.”

“짐은 이제껏 왕후가 후덕하여 소후를 포용하는 줄 알았소. 앞으로 궁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왕후는 왕실의 기둥입니다. 기둥이 흔들리는데 어찌 집안인들 온전하겠습니까? 각별히 신경을 써 주셔야 합니다.”

중천왕이 보기에는 왕후의 편을 드는 말이었다.

이날 대전에서 있었던 일은 시녀의 입을 통해 관나부인의 귀에 들어갔다.

밤이 되어 왕이 침소로 들자 관나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맞이했다.

“어찌 우는 게냐?”

관나부인은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를 않느냐?”

그제야 관나부인은 얼굴을 들고 왕에게 하소연했다.

“낮에 왕후께서 저를 부르시기에 갔더니 ‘천박한 계집이 왕의 총애만 믿고 언감생심 중궁을 노리느냐! 너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신첩을 모질게 쳤습니다.”

관나부인은 옷을 걷어 등과 팔에 난 상처를 보였다. 이를 본 왕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신첩은 이곳을 떠나야겠습니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곳에서 한시라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왕후가 순간 화가 나서 그런 모진 말을 했을 거다. 본심은 악한 사람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다음 날 중천왕은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이쯤에서 궁내의 기강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왕은 시녀들에게 은밀히 명해 왕후와 관나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보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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