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89)고구려 왕 이야기(4)
[장영주 칼럼](89)고구려 왕 이야기(4)
  • 뉴스N제주
  • 승인 2023.06.03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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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고구려 9대 고국천왕(179-197)

신대왕이 세상을 떠나니 왕을 이어받은 이가 제9대 고국천왕이다.

고국천왕은 왕후의 친척인 어비류, 좌가려 등에게 벼슬을 주어 나랏일을 보게 하였으나 외척정치는 국정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등 행패가 심하므로 이들을 잡아 처형하였다.

왕은 이런 일을 교훈 삼아 동부 사람 안류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기고 을파소를 국상으로 삼았다.

진대법이란?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 16년(194)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부터 해마다 3월에서 7월 사이에 나라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내어 주고 추수를 한 10월에 백성들로부터 그 곡식을 거둬들이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 후 이 제도는 고려 시대 조선 시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구호 사업이었다. 빈민 구호 제도인 이 ‘진대법’을 을파소가 주장하여 실시하게 되었다는 사적 기록은 없지만, 고국천왕 때 국상을 지낸 을파소가 주장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을파소는 고구려 사람으로 압록곡 좌물촌에 살던 을소의 손자였고, 을소는 유리왕 때 고구려의 대신이었다. 그는 성질이 강직하고 지혜가 많았으나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으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이때 왕의 외척으로서 그 권세를 함부로 휘둘러 옳지 못한 일을 마구 하니 모든 백성이 그들에 대하여 원망과 분개를 사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안 왕은 어비류, 좌가려 등의 외척들을 조정에서 내쫓으려 하였다.

좌가려 등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반역을 도모해 왕을 쫓아내려 하였으므로 이 일을 알게 된 왕은 극노하여 그들의 목을 베고 귀양을 보내도록 명령했다.

이에 왕은 충성심이 강하고 인덕이 높고 지혜가 뛰어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인재를 찾아 함께 훌륭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왕은 5부의 대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관직을 이용하여 무고한 백성들에게 해를 미치니 이는 과인이 정치를 잘하지 못한 까닭이오. 경들은 과인이 밝은 정치를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오.”

5부의 대신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의논했다.

"어질고 착한 인재라면 누가 제일 좋을까?"

동부 대신이 먼저 말했다.

“나는 안유를 추천하겠소. 그 사람은 아직 벼슬길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아는 것이 많고 사람 됨됨이가 어질다 하오."

이에 4부가 동의하여 5부의 대신들이 왕 앞에 나가 이 일을 아뢰었다.

"원하시는 인물을 결정했사옵니다. 안유란 인물로 어질고 현명하다 하옵니다."

“그러면, 그 안유란를 불러오시오."

안 유는 왕 앞에 나왔다.

“그대가 안유인고? 그래 과인과 더불어 나라를 잘 다스릴 생각은 없는고?”

"황공하옵니다. 저는 아직 덕이 모자라고 아는 것이 부족하여 그런 큰일은 어렵사옵니다.”

“무슨 겸손의 말을, 그대의 충성심이면 될 것이오.”

"아니옵니다. 저보다 더 뛰어난 이가 있을 듯하옵니다.”

“누구인고?"

“예, 서쪽 압록곡 좌물촌에 사는 을파소입니다. 을파소는 유리왕 때의 대신 을의 후손입니다. 성품이 강직하여 그릇된 일에 굽히지 않으며, 슬기롭고 아는 것이 많으나 농촌에 숨어 살면서 그냥 지내고 있사옵니다."

왕의 부름을 받은 을파소는 왕의 앞에 대령했다.

“과인이 오늘 그대를 부른 까닭은 과인과 함께 백성들을 잘 다스려 보자는 것이오. 어떻게 생각하오?”

"황공하옵니다. 마마.”

“그대에게 중외대부의 벼슬과 우태의 작위를 주겠소,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우태란 조선 시대의 우의정 벼슬과 비슷한 직위이다.

"황공하옵신 분부이시옵니다. 마마의 소신의 부족한 재주로서는 감히 받들기 어렵사옵니다.”

을파소는 뜻은 있지만, 직위가 낮다고 생각하고 사양했다.

“그러면 어떤 자리면 되겠소?"

"제 뜻과 마마의 뜻을 함께하려면 국상은 되어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래야 일 처리가 쉬울 것입니다.”

국상이란 벼슬은 왕 다음으로 평민으로서는 최고 높은 관직이다.

"과인을 위해 일해 준다면 국상 정도의 벼슬자리를 주겠소.”

을파소는 국상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신하들과 왕의 친척들은 을파소를 시기하고 미워했다.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헐뜯으려 하니 왕이 이 사실을 알고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지 국상의 명령을 어기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을파소는 왕의 말에 감동되어 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면 더욱 열심히 일했다.

정치를 바르게 하고, 백성들을 어질게 대했다.

상을 주는 것과 별을 주는 것을 분명히 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니 모든 백성은 그의 덕을 칭송하고 또한 그를 잘 따랐다.

그가 국상이 된 후에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좋아졌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이에 을파소는 왕에게 아뢰었다.

“마마,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사옵니다. 관에 저축한 곡식을 풀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심이 좋겠사옵니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마마, 그것을 ‘진대법’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진대법은 이렇게 하여 생겨났다.

그 후로는 해마다 이 법이 실시되어 백성들은 여름이 되어도 굶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 후 을파소가 죽은 뒤에도 진대법은 계속 시행되었고 모든 백성은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고국천왕은 왕위에 오른 지 19년이 되던 해 여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왕후 우 씨에게서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왕후는 어찌할까 생각하던 끝에 왕의 큰동생 발기를 불러들였다.

"대왕에겐 아들이 없으니 응당 큰 아우 되시는 발기공이 왕위를 이으셔야 하옵니다."

“부당한 말씀이오. 왕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옵니다. 소신은 왕의 재목이 못 되옵니다."

그러나 발기는 왕에게 아들이 없으니 으레 첫째 동생에게 왕 자리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사양해 본 것뿐이었다.

이때 왕후는 발기가 왕위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으며 셋째인 연우가 왕위에 오르게 되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으나 첫째인 발기에게 왕위에 오르기를 청하였던 것이었다.

발기가 왕위에 오르기를 사양하자 왕후는 잘됐다는 듯 연우를 불러들였다.

연우 활달하고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소신 연우, 왕비 마마의 분부를 받자와 들어왔사옵니다."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 첫째이신 발기공께 왕위를 이어 주십사고 말씀드렸으나 사양하시니 그다음인 연우공이 왕위를 이어 주셔야 하겠소!”

"삼가 분부대로 거행하오리다."

연우는 서슴지 않고 왕위에 오를 것을 승낙하였다.

왕후는 곧 신하들을 불러 연우가 고국천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을 알렸다.

“선대왕은 아들이 없으므로 아우인 연우를 왕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는 선왕의 뜻이시다. 신왕은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시며, 백성을 친자식같이 사랑하시는 어진 분이시니 고구려의 큰 복이다. 백성들은 신왕의 뜻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여 왕을 섬기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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