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칼럼](11)2시간의 미학
[현금이 칼럼](11)2시간의 미학
  • 뉴스N제주
  • 승인 2019.02.0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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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Golden Maple
나는 영화 마니아다. 자의식이 싹트기 훨씬 전부터 영화광이시던 아버지 옆에서 수많은 명작들을 보고, 그에 매료되어 그 후 40여년 이상 늘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하루 네 편을 보기도 한다. (시네마천국 표지)

나는 영화 마니아(mania)다. 스스로 거리낌없이 칭할 수 있는 이유는, 자의식이 싹트기 훨씬 전부터 영화광이시던 아버지 옆에서 수많은 명작들을 보고, 그에 매료되어 그 후 40여년 이상 늘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하루 네 편을 보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인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 과학의 힘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시절 외화가 주였던 그 때, 영화 속 세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으며 시청 후에도 끊임없이 배우이름을 찾아 외우고, 배경음악을 찾아 들으며 감정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덤이었다. 최근에는 영화를 본 후 인상적인 장면들과 결말, 혹은 반전 등의 이해를 위해 구글링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짧은 시간안에 모든 걸 보여주고 결론을 낸다는 점이다. 지루함을 싫어하는 나에겐 딱인 셈이다. 2시간 남짓임에도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기승전결이 명확하며 집중력의 한계를 넘지않는다. 드라마와 같은 상품은 감정을 너무 오래 소진시킨다.

둘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점인데, 책과 달리 인간 자체를 모델로 이미지화함으로서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시켜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일생을 한가지 유형으로 밖에 살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 제3자의 역할을 통해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삶을 살 수도, 정의를 실현할 수도 때론 본인의 평범함에 안도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셋째, 학습의 효과가 크다는 것인데, 훌륭한 말과 글이 주는 감동에 비해, 비주얼화된 이야기와 사건의 맥락이, 오히려 이해를 쉽게 하고 사고방식의 변화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청각보다는 시각적으로 습득한 정보를 더 오래 간직하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내 삶을 지탱해준 풍부한 감성과 공감능력, 나아가 인간과 삶에 대한 고뇌 등 영화가 미친 영향은 7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내게 커다란 울림을 준 몇 작품을 언급하고자 한다.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1993) 를 보고 난 후,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인간은 평등하다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란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거듭 되새기게 해주었다.

일급살인(Murder In The First, 1995)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소소한 유년기의 실수의 댓가로 복역하게된 평범하고 나약한 한 인간이, 감옥안에서 벌어진 인권말살로 인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를 보여준 영화다. 반성과 교정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인간의 기본자유에 대한 억압은 절대악이며 더 커다란 범죄를 양산할 뿐이다.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 1992)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청년의 평범한 용기와 의리가, 삶의 의미를 상실해 세상을 등지고자 하는 퇴역한 맹인 장교를 변화시키며, 누구에게나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고,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것이다란 희망을 선사한다.

또한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양심을 팔지 않는 젊음에 감흥받은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남을 파는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의 현실을 개탄하기까지 한다.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 1996)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사형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썼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가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슬리퍼스 (Sleepers, 1996)는 청소년들 범죄의 재발을 막고자 존재하는 소년원에서, 간수에 의해 벌어진 아동성범죄로 인해 일생이 망가져버린 네 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어린 학생들의 범죄도 중하게 여겨 엄벌해야한다는 요즘의 사회분위기에 합리적 논거없이 감정적으로 편승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크래쉬 (Crash, 2005)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편견이 불러온 파국과 불행,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물간의 폭력을 흥미롭게 다룬 영화다. 하지만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인간을 통해 치유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불편한 주제를 던져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 중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작품이 바로 영화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난 아직도 영화 시작전, 제목과 등장인물, 그리고 제작사나 감독등의 이름이 화면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연 저들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고, 내 삶의 언저리에서 어떤 의미로 머물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것보다는 가족이 잠든 시간에 아버지랑 더빙된 외화를 같이 보았던 40여년 전 그 어느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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