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에서는 2015년 이후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수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면서 난민 수용정책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고 있고 한국에서 또한 예멘 난민 관련 찬반논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내 고향 제주에서 많은 이슈를 낳고 있는 난민수용 문제는 이 곳 머나먼 타국에 이민와서 늘 비주류로 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과거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취하고 자국민만을 보호하는게 당연시되던 시대를 지나 전세계가 하나라 부르짖는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난민문제를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그들을 보듬어야 하는지 국가차원만이 아닌 그 국가의 일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영역의 범위는 과연 수용가능한 건지 등등을 함께 걱정하고 실현해 내야할 과제를 자의든 타의든 안게된 게 사실이다.
이제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고 어쩜 이미 사회 깊숙히 퍼져있을 지도 모르며 따라서 이 기회에 이를 공론화 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시대의 취지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난민 (refugee) 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사회적 소수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나 심한 차별을 받을 때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피난처를 찾는 이들을 일컫는다.
한편 망명신청자 (asylum seeker) 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 단계로 아직은 난민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를 말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두가지 개념을 섞어서 사용함으로서 마치 신청자 신분인 사람들 조차 난민자격을 인정받은 것처럼 숫자를 부풀려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의 테두리에서 내팽개쳐진 그들을 수용하고 힘든 짊을 나누어지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는 못할지언정, 혹여 그들의 진심을 왜곡하고 극소수 신청자가 범하는 악용의 소지를 강조함으로써 난민수용의 반대여론을 위한 논거로 삼아 이미 상처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행위는 캐나다든 한국이든 그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 할 듯하다. 난민으로 인정받든 아님 본국으로 추방되든 상관없이.
수십년전 한국 또한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을 양산하고 세계 여러나라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국제적인 원조, 첨단기술의 개발과 우수한 인재 육성을 근간으로 오늘날 10대 경제대국이 되어 이제는 타국에서 유입되는 난민의 수용여부를 고민하게 되니 개인의 운명이든 국가의 위상이든 세상 일 예측하기 참으로 쉽지않다란 생각에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캐나다는 국내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난민수용을 적극적으로 정책화해서 필요한 예산과 인력를 과감히 지원하는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린 몇 개 안되는 국가 중의 하나이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주저하고 있을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보여진다.
2001년 봄 이후 이민자로서 살아오는 동안 이곳 캐나다 사회로부터 받는 불편한 시선이야 이루 말할 수 없고 겉으로야 아닌척 하겠지만 피부색, 종교, 문화, 언어가 너무도 다른 우리를 철처히 이방인으로 혹은 필요에 따라서는 국가경제에 이득이 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우린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일반 시민들이야 이민정책을 펴는 정부의 경제적 이익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얻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국격상승 등의 효과에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겠지만, 언젠가 한번은 내 자신 혹은 내 자식이 어떤 이유에서든 수십년 터전이던 고국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을 (이민자의 자격이든 난민의 자격이든) 밟게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타국에서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지닌 그들에게 잠시나마 따스한 시선을 보냈으면 하는게 나의 소박한 바램이다.
비록 내 자신의 선택으로 이곳에 이민을 와서 17년 넘게 살고는 있지만, 늘 불완전하게 이 사회에 소속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이제까지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나를 비롯해 내 가족 또 다음 세대의 나의 가족 역시 영원한 이방인으로 이 땅에 살게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동시간대에 두 나라에 살아 볼 수는 없는 일이라 과거 내 선택이 옳았나란 판단은 어리석은 짓이며 설사, 좀 후회되는 순간들은 존재지언정 전반적으로 볼 때 캐나다라는 나라를 선택한 부분 만큼은 탁월했다고 자평한다.
가끔 원주민들이 보내는 불편한 시선과 차별이 많이 서운하기도 하고 무시와 모멸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다수는 이질적인 것에 덜 두려워하고 주저없이 손을 내밀며 이민자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국가로부터 거부당한 가난한 대륙과 나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난민들에게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하며 사회 소수자의 목소리도 주의깊게 듣고 그들의 권리도 최대한 보호하자는 정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등 높은 인권 의식을 지닌 점에서는 그들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물론 보수층에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으나 모자이크 문화가 이 나라의 특징인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의견이 압도적이 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나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다수의 국민이 존재하는 나라라면 내가 겪는 일부의 불편과 차별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내 처지가 그들의 상황보다는 조금은 나으니 말이다. 내가 모른척 하지 않아야 그들도 내가 어려울 때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임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난민의 유입으로 생기는 문제는 분명 존재할 것이며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민간단체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개선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결코 검증 되지 않은 상대적 불이익만을 앞세워 그들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우매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론조장을 목적으로 일부의 불확실한 주장만을 무분별하게 떠벌리는 언론을 잘 가려내고 양심에 따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인도주의 원칙을 지키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