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아직도 대학시절의 풋풋함으로 장전돼 있건만 몸은 그 괴리감이 심해서 사춘기와 권태기에 이어 갱년기 또한 피해갈 수 없음에 헛웃음만 나온다.
토론토에서 맞는 갱년기라 그런지 옛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더해져 심란한 요즘, 주변의 권유로 동네 휘트니스에 딸린 실내 수영장에 열심히 드나들며 헛헛함을 달래고 있다.
팔 뻗으면 닿을 듯한 바닷가 근처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물 귀한 줄 몰랐고, 커서는 해수욕장이나 실내 수영장에서 탈의하고 여러 가지 물품 챙기고 하는 게 귀찮아서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면 피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쩜 물속에 대한 신비감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질려서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수영장의 경우, 수경과 수경모자 착용이 거의 의무화 되는 상황이 대부분인지라 접근하기가 더욱 힘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수영복 이외에는 강제적인 착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훨씬 덜어진 부담을 안고 맘껏 이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에 아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수모를 안 쓰고 있어서 참 의아했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서울 길거리에 쓰레기통을 없애서 쓰레기를 줄이고 거리를 깨끗하게 하겠단 야심찬 아니 어이없는 행정정책이 대두되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또 실제 실행은 했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실내수영장 운운하다가 갑자기 길거리 쓰레기통 얘기를 꺼내 도대체 무슨 관련성이 있나 의문이 들겠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이 두 가지 모두 혜택을 받아야 하는 주체가 누군지에 따라 관점이 확연히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누구에겐 이득으로 누구에겐 손해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을 위해 그런 규범 또는 규칙을 만들고 강요하는지 궁극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지를 거듭 생각해본 후 내린 결론은 관리자 입장에서 그런 규칙을 정해야 그들이 편하고 통제도 용이하게 되므로 그들의 이익을 우선해서 생긴 일이타는 내 나름의 결론을 얻었고 이는 지극히 개인의 소견일 뿐임을 일단 밝혀둔다. 시쳇말로 뇌피셜이라고나 할까.
어떤 시설을 만들고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방법을 고안해 내는 데 있어 과연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반대의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즉 관리를 편하고 효율적으로 할 것인가 아님 소비자나 이용자의 편의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에 의해서 그에 따른 지침들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이해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경우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서로 충돌할 경우엔 이론적으로 완벽한 정책도 현실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결국 결정권자의 철학이 묻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논지를 위한 사족이 쓸데없이 긴 이유는 그야말로 무논리 무원칙을 기반으로 얘기를 이어 나가는데서 오는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치부해주기 바란다.
수영장에서 수경이야 본인의 위생상 선택의 범위에 있겠으나 수경모 착용의 강제성은 결국 자주 청소하지 않음으로 얻는 관리의 수월함을 더 우선으로 두고 반영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물론 머리카락이 떠 다녀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것에 방점을 두겠지만 이 조차도 어쩌면 대다수의 동의를 얻기 위한 변명으로 삼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이곳 캐나다인이라고 해서 머리카락이 덜 빠질 리도 없고 이 나라 청소부들이 청소하는 걸 더 즐기는 건 더더욱 아닐 것임으로 결국 같은 조건에서도 누구 위주의 견해를 우선하는지에 따라 펼쳐지는 상황은 확연히 달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길거리 휴지통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많이 모이거나 걸어 다니는 장소에 쓰레기가 존재하는 건 당여지사고 오히려 그들이 편하게 버릴 수 있는 장소와 도구를 늘리는 게 대안이 되어야지 휴지통이 없으면 쓰레기가 덜 발생할 것이고 길거리가 깨끗해질 것이란 생각에서 출발하니 그런 어설픈 대책이 나오는 게 아닐까.
정당하게 벌어 투명하게 세금을 내는 이유는 최소한의 규제로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 맘껏 행복을 누릴 권리를 보장받고자 해서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 늘 제제해야 하고 편의를 악용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해야한다는 미명하에 가해지는 얕은 수작들은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충분한 자정능력을 가볍게 보는 것이고 매를 들어야 말 듣는다는 과거 우리시대의 뒤틀린 관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수영장 같은 공용시설은 자주 청소를 하는 걸 당연시하고 청결함을 유지함으로써 이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하며 어려서부터 시설이용에 대한 교육을 시켜 서로의 편의를 도모해야 하는 게 우선이지 사용자들로 하여금 더럽게 할 소지를 안 만들려 미리 제약을 가하고 시설이용의 문턱을 높이는 일이 되서는 안 된다.
또한 길거리 공용 쓰레기통 문제 또한 마찬가지로 주변이 더러우면 자주 쓰레기통을 비우고 오히려 쓰레기통을 늘려서 모두가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짜내야 하며 여러 방도로 시민들의 협조를 부탁하고 교육함으로써 보행자들이 손에 쓰레기를 들고 어쩔까를 고민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반문해본다.
수영장이든 공용휴지통이든 본인의 잘못이 교묘히 숨겨지는 공동시설의 선의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나 그들은 늘 소수이며 대다수의 시민은 양심에 걸리는 상황에 여러 번 노출되는 걸 피할 것이다.
사회가 분화되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이상 시민들을 옥죄고 규범을 빡빡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해서는 안 되며, 민도를 높이는 직간접적 교육이나 교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편리함과 자유로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