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N인물]서예가 우헌 문인성 선생..."후학 양성과 절차탁마 정신으로 서법 갈고 닦아"
[뉴스N인물]서예가 우헌 문인성 선생..."후학 양성과 절차탁마 정신으로 서법 갈고 닦아"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2.21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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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나 시작하면 집중하는 성격..."주경야독 글 쓰는 일 자신의 일상"
문인성 서예가"묵향으로 이어진 분들과 남은 서예인생 소중히 채워갈 것"
붓을 잡고 열심히 쓰다 보니 공모전과 휘호대회에서 대상 여러 번 수상
문인성 서예가
문인성 서예가

문자생활이 대중화되면서 서체가 발달되고 인접국가예와 교류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글자체가 표현됐다.

서체의 발달은 예술적 장르로 표현됐는데 한국에서는 서예(書藝), 대륙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로 호칭되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서법과 서도는 모두 글씨 쓰는 법‘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같지만 서예는 ’글씨의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사뭇 다르다.

서예 도구도 동양과 서양은 조금 다르다.

동양에서는 그림과 글씨가 같은 붓을 갖고 표현해 작가의 정신과 인격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그림을 붓과 글씨 쓰는 펜이 서로 달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과거 서예라는 분야는 글공부의 백미였다. 그런데, 광복 이후 한자교육 쇠퇴로 인해 한자를 바탕으로 존립, 발전하여 온 서예의 입지조건은 취약해졌다. 이런 이유로 감상자의 폭도 자연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예를 직업으로 하는 서예전문가가 서서히 등장했으며, 197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에 따라 취미와 교양을 위한 서예인구는 다시 늘어났다.

하지만 현대적 문명이기들의 발달은 차츰 서예의 질적인 향상은 대체로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극히 소수의 서예가들만이 한국 현대 서예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서예라고 하면 먼저 한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예는 한자를 대상으로 하여 시작됐다. 한자 자체가 표음문자가 아닌 상형문자의 원형을 그대로 지녀 왔고, 또 붓·먹·종이를 통하여서 나타나는 글씨는 그 자체가 벌써 조형적인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식 시절부터 시작된 서예. 서예의 길을 근 30년 넘게 걸어왔고 제주시 삼양동에서 서예원을 운영하고 있는 우헌 문인성(61) 서예가를 만났다.

문인선 서예가
문인성 서예가

현재 그는 후학 양성과 절차탁마의 정신으로 서법을 갈고 닦는데 더욱 정진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법을 익혀온 문인성 서예가는 제3회 추사숭모전국휘호대회 장원, 제19회 대한민국정조대왕 효휘호대회 장원 등을 차지했다. 또한, 서화예술대전, 전국서예대전, 대한민국서예·미술대전, 세계서법 초대작가로 알려져 있다.((수상 목록 참조))

그는 전국에서 잘 알려져 있지만 제주출신이지만 제주에서의 작품 활동보다는 육지에서 하다 보니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우헌 선생은 오체의 달인이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오체라 일컫는데 이 오체를 자유롭게 구사해서 작품을 하는 작가가 몇 안된다.

우헌 선생의 서예원에 내걸린 글씨들을 보면 아주 정교하고 날렵한 필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번 전라남도와 보성군이 후원하고 한국 다향예술협회가 주최한 제8회 대한민국 다향예술대전에 매계(梅溪)선생의 시 오언절구를 전서체(篆書體)로 써낸 작품을 출품해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 서예가는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아버지께서 붓글씨 쓰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서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하지만 막상 붓을 잡게 된 것은 20대 중반부터”라고 피력했다.

그는 “이왕이면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싶었다”며 “서울에 올라가 필방마다 돌아다니며 최고의 서예가를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여초선생님을 꼽았다”고 반추했다.

문 작가는 “(여초선생)계신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제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먼데서 다니기가 힘들 거”이라며 “마침 제자 한 분이 제주에 살고 있으니 거기서 배워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에 내려와 벽천선생님을 찾아 사사받게 됐다.

그는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집중하는 성격이라 그 이후 주경야독으로 퇴근하면 돌아와 글 쓰는 일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일상이 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문 작가는 “붓을 잡고 열심히 쓰다 보니 공모전과 휘호대회에서도 대상이라는 큰 상을 여러 번 받게 됐다”며 어느 휘호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문인성 서예가 작품
문인성 서예가 작품

공모전과는 달리 휘호대회는 현장에서 명제와 좌석 배치까지 추첨으로 주어지고 참가 당일에 심사까지 해서 수상자를 발표하게 된다.

문 작가는 제일 먼저 얼른 다 써놓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심사도 안 한 상태에서 함께 참가했던 분들이 모두들 내 작품을 보면서 장원감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더라는 것.

아니나 다를까 심사가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내 작품이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면서 내 마음도 쿵쿵거렸는데 마침내 제일 위에 남아 장원이 됐다는 것이다.

그 후 문 작가는 일취월장해 각종 공모전 등에 수없는 상을 받게 된다.

문 작가는 서예의 묘미에 대해 “서예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는 각각 나름의 멋이 있다”며 “집중해서 쓰다보면 마음수양도 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하얀 종이에 검은 먹물이 번지는 그 느낌에 빠져 살다보니 벌써 30여년 이상 흘렀다는 것.

문 작가는 “서예에 욕심낸 만큼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일에 소홀해진 점이 없지 않다”며 “그로인해 다소 아쉬움도 있지만 서예는 이미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그 좋은 필력을 가지고 후학양성을 안 하느냐는 질책도 있었는데 해왔던 사업을 접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예에만 집중해볼 수 있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익혔던 것들을 후학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서예원도 열었고 (시대에 맞게) 유튜브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문 작가는 "앞으로도 절차탁마의 정신으로 서법을 갈고 다듬으며 묵향으로 이어진 분들과 함께 남은 서예인생을 소중하게 채워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문인성 서예가는 뉴스N제주를 통해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반추하고 앞으로 문인성 칼럼으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동안 정신적인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서예의 작품 감상은 좋은 휴식공간이 될 것이다. 유튜브와 함께 하는 서에활동에 많은 관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뉴스N제주는 제주의 보물들이 사장되어가는 느낌을 받아 기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뉴스N제주는 앞으로 제주의 많은 실력있는 작가들을 언더그라운드에서 햇빛이 따뜻한 무대위로 드러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바랍니다.

문인성 서예가 작품
문인성 서예가 작품

◆문인성 작가 수상 및 기타

△제8회제주도서예대전 행초서 입선
△전국서화예술대전 장려상 외
△제1회한라서예전람회 한문행초 입선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삼체상 외
△서예한마당 전국휘호대회 입선
△경북추모전국휘호대회 입선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입선(해서)
△전국 휘허(안향)선생 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
△허백당정난종선생추모제 12회 대한민국태을 서예문인화대전 삼체상 외
△전국추사선생 추모서예문인화대전 휘호대회 우수상
△추사숭모전국휘호대회 장원(대상,예서) 외
△대한민국 정조대왕 ‘효’휘호대회 장원(해서, 예서)
△2019 여초선생추모전국휘호대회 장려상 외
△연암선생 서예대전 삼체상
△서예신문대전 장려상 외
△5.18 전국휘호대회 일반부 특선
△대한민국 다향 예술대전(대상)
△대전서예전람회 삼체상
△대한민국 매창 휘호대회 장려상
△대한민국서예대상전 회장상
△추사서예대전 장려상 외
△한국추사서예대전 장려 외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국제교류전
△한중신교류전
△한중일교류전
△세계서법 초대작가전
△서화예술 국제교류전
△월간서예문인화한국 정예작가 100인 초대전
△세계비엔날레 특별전
△강진문화예술협회 교류전
△광화문휘호퍼포먼스 참여
△서화예술대전 초대작가
△전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미술대전 초대작가
△세계서법 예술대전 초대작가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작가전(공로증)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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