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표
곽인숙
행간마다 대화가 웅성거린다
책갈피 속에 끼워둔
마음의 물기 마를 때까지
맑은 슬픔을 간직한 서표
새로운 글줄이 서재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귓속말로 퍼져나가는
빛과 어둠이 혼재한다
책 속에는 출렁이는 혀가 있고
앞면과 이면은 행간의 벽을 이룬다
글을 쓰는 시인은
행복에 젖거나 고뇌에 빠져 줄 쳐진
흔적들을 눈 속에 담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은
사라지는 표정을 붙잡으려 몸부림치는가
건너갈 수 없는 곳까지 바람이 뒤척이니
생각은 날로 골똘해진다
걸어 들어간 발자국 깊게
고운 시 한 편 쓰고 싶도록
미세한 떨림을 속지 속으로 접어 넣는다
*서표: 책의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하여 책장 사이에 끼워 두는 물건
[오늘의 평]가을의 단풍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시간. 단풍이 곱게 물들인다는 것은 청춘을 다한 열정의 땀방울로 그려진 얼룩들의 결과물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무상무념의 연속이다. 그런 까닭에 쉼표는 굉장히 중요하다. 서표는 인생에 있어서 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표적이다. 그런 삶을 인생에서도 경험한다. 지금이 좋으면 과거에 고생했던 기억으로 되돌아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단풍이 힘을 다해 초록의 물을 빼는 이유도 지금이 좋은 것이다. 단풍의 고유한 색이 좋아서 열심히 뽑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설령 땅에 떨어진 낙엽이 될지라도 지금은 자신의 생의 한복판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서표가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다 지우진 것이 아닌, 다시 시작,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깊어가는 겨울의 속살을 드러내는 요즘, 서표를 꺼내고 삶의 중심에서 집중해 보자[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