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3회 뉴스N제주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2022년 제3회 뉴스N제주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1.0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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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다섯 개의 물의 장면
이정은 시인
이정은 시인

다섯 개의 물의 장면
이정은

1

11월, 시침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
카라꽃 조화를 11년째 키우고 있어요
물 없는 화병에서 꽃대는 올라오고
하얀 꽃잎은 향기를 뿜은 듯 버성기네요
속아주어야겠어요, 꽃이고 싶어 하잖아요
빈 화병에 물을 줍니다
찰랑찰랑 아파트 지하 수면실로 타고 내려가요
보일러 아저씨 잠이 깨요
달력 한 장 젖어요

2

양수리 두물머리
검푸른 물의 흐름이 엉켜있어요
마른 장작 타는 체취, 당신을 불러들인 건 나의 실수였습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 한잔이 나의 독주이기를
같이 했던 시간들은 윤슬처럼 흩어집니다
물의 카페에서 멀어질 때까지

3

어쩌지, 양수가 흘러내려
생명 다한 꺼져가는 촛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녹아 굳어버린 촛농들을
무덤 삼아 수그러드는
작은 호흡
물의 끝은 여기까지
인큐베이터 안이 추워

4

어느 시인과 사랑을 했어요
더 이상 뭘 원하시는 거죠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몰라요*

5

구피의 유영이 당신의 눈동자를 흐리게 하지요
몰려다니다가도 삐진 양 꼬리치며 돌아서는
구피의 번식력이 안방을 휘젓고 있죠
앉아 있을 장소조차 없이 불어난 구피 종자들
쏟아진 물난리에 익사를 조심하세요

물의 장면, 되돌이표를 그려 넣을까요
 

*주. 김종삼의 시 <民間人>에서 가져왔으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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