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인터뷰](20)한곬 현병찬 선생..."'먹통' 하나에 빠져서 살아요"
[명사 인터뷰](20)한곬 현병찬 선생..."'먹통' 하나에 빠져서 살아요"
  • 현달환, 이은솔, 강정림, 이승국 기자
  • 승인 2020.06.10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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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제주' 창간2주년 기념 명사 릴레이 인터뷰-20
"판매는 그것으로 끝나지만 기증하면 오랫동안 인연 남아"

제주도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은 제주 문화 예술의 이해와 정서를 순화시키고 지역 개발 효과 유발 및 관광 자원화와 함께 제주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1999년 건립 기획되어 현재까지 조성 중에 있다.

또한 현재 50% 정도의 공정이 진행됐으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 및 개인, 가족 단위로 작품 감상, 제작 과정 견학, 작품 구입, 실습에의 참여 등이 가능한 문화생활 및 휴식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뉴스N제주는 창사 2주년을 즈음해 제주인이 꼭 알아야하는 인물로 문화예술인마을 ‘먹글이 있는 집'에서 상설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한곬 현병찬 서예가를 전격 인터뷰했다.

제주도민은 물론 각 가정에 좋은 말이나 가훈 등을 무료로 써주고 해서 가정에 가보면 액자에 걸려 있을 한곬 현병찬 선생의 글들을 쉽게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제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또한 문화예술인 마을의 안내를 자청하고 계신 한곬 선생님은 1957년 처음 붓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여전히 ‘먹통’ 하나라고 말한다.

특히, 작품을 팔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고 1031평의 부지에 조성된 전시관과 그 동안의 모든 작품들을 전부 제주도에 기증한 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한 세종대왕 기념사업재단에 등재된 폰트글씨 ‘미소체’를 특별히 제주도민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고 오로지 먹통 하나를 잡고 행복한 외길 인생을 자청한 한글 서예의 대가이신 한곬 현병찬 선생님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한곬 현병찬 선생
한곬 현병찬 선생

◆ 현병찬 선생님,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제주도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 ‘먹글이 있는 집’에서 먹통에 빠져서 헤매는 현병찬입니다.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 서예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중학교 들어가서 보니까 선배들이 교실 기둥에 표어들을 써서 붙이더라구요. 불조심 표어도 있고 반공 표어도 있고... 다양한 표어들을 매주 바꾸면서 복도 기둥에 붙여요. 그러니까 글 쓰는 선배들은 항상 표어 쓰다보면 시간이 흘러가는거 같이 느껴져서 직접 가서 보니까 글 참 곱게 쓰는구나...나도 저만큼 써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게 동기예요.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 동기심이 생겼어요.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 소암 현중화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 사범학교를 가서 소암 현중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1년동안은 한문 서예를 지도 받았는데 한문 서예로는 표어를 못 쓰겠더라구요.

표어를 쓰고 싶은 마음에 소암 선생님께 한글 서예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처음엔 의아해 하시는거 같았는데 일중 김충현 선생님이 쓰신 ‘고등서예’라는 고등학교 서예 교과서를 놓고 비교를 하시면서 가르쳐 주셨어요. 소암 선생님은 일본에서 서예를 하셔서 한글 서예를 안하셨던 분이셨거든요.

그렇게 기초를 가르치신 다음에 선생님께서는 이제 작품을 써보자고 하셨어요 곧 전시회가 있으니 작품을 내어 보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선생님께 작품을 낼 수 있을 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우월감도 생기고 기쁜 마음으로 ‘네’하고 대답을 해놓고 집에 왔어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울 때라 종이 사기가 힘이 들 때여서 신문용지라고 하는 갱지를 어머니한테 조르고 조르고해서 어렵게 구해 글을 써서 가져갔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글을 써가면 빨간 잉크 묻은 붓으로 "책은 이렇게 되었는데 네가 쓴 것은 이렇게 되었구나" 하시면서 자꾸 고쳐요.

"이정도면 출품할 수 있겠지"하고 정성들여 써 가면 또 고치시고... 그렇게 1년 내내 고치시는 거예요. 집에서는 종이 살 돈이 없어서 쩔쩔 매는데 선생님은 끝이 없고... 그래서 그해 겨울에 선생님께 제가 좀 무례하게 여쭤보았어요.

“선생님, 낼 모레 전시회가 있다고 하는데 낼 모레가 언제입니까”하고 따진거죠. 그러니깐 선생님께선 그냥 웃으시며 “곧 있어, 곧 있어, 잘만 써 잘만 써”하고 대답하셨는데 그게 선의의 거짓말이였어요.

그렇게 1957년부터 소암 선생님께 한자 1년, 한글 1년 지도를 받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도 고등학교 경서대회(한라문화제)가 있었는데 거기서 금상을 받았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거죠.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 시인으로 등단도 하셨는데 특별히 제주어로 시를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등단은 2015년에 했구요. 한글 서예로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시를 많이 접하게 되어서 시인과 가깝게 돼요. 그래서 한글 서예 하는 사람들은 시인으로 등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글에 ‘아래아’자를 우리는 그걸 ‘하늘아’라고 해요. 왜냐하면 그 점이 생길 때는 이 우주를 함축해서 점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늘아’라고 하는데 그 ‘하늘아’를 겸해서 쓰면 상당히 조형성이 깊어요. 한글 서예를 해야하니까 제주어를 쓰게 되고 작품 활동을 하다보니까 제주어는 한글 서예하는 사람들이 문자 미학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어에 관심을 갖고 제주어를 많이 접하다 보니까 제주어가 참 재밌어요. 제주어로 표기 된 말은 표준어로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이 안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시적인 것들이 많고 시를 쓰면 재미가 있어요.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 제주도내에 선생님 글씨가 많이 쓰여져 있는데 무료로 주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주변 분들이 좋게 봐 주시는 거죠. 그리고 제 주장은 재능기부 하는데 돈을 받으면 두고두고 자신이 후회가 될 것 같아요. 내 재능을 돈 받고 판 것이 될까봐서요.

작품을 써 주고 돈을 받으면 그것으로 흥정이 끝나지만 돈을 안 받고 선물을 하면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이 남잖아요. 그 마음을 사는게 얼마나 큰 일인데요.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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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곬 ‘미소체’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 표어를 많이 쓰다보니까 궁체에만 빠져서 궁체만 쓰다가 해정 박태준 선생님을 만나서 한문 교육을 받았어요.

한문 교육을 10년 정도 받으니까 해정 선생님이 낙관을 만들어 주시면서 국전에 한번 출품해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한자로 작품을 써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게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한글 작품을 쓰고가서 이것으로 출품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한글 작품을 처음 출품했는데 입상를 해버렸어요.

1992년도 낸 것은 대상을 받아서 국전 초대작가가 되었어요. 초대 작가가 되어서 판본체를 써서 출품하니까 그때 판본체를 본 사람이 나보고 "저 현병찬이는 죽도록 써도 평생 판본체를 못 쓸 놈"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좋은 말을 들었구나. 마음을 일깨워주는 그 말을 들어서 참 좋다"라고 느낀 거예요. 그리고 그 때부터 판본체를 파기 시작한 거죠.

그 당시 김충현 선생의 판본체를 보면서 공부했는데 그 것을 쓰다보니까 그 선생님 닮게만 써지지 내 개성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누군가가 말하는 ‘"글씨가 살아있어 좋다"라는 말을 들은 거예요. 그 때부터 또 어떻게 하면 글씨를 살아있게 쓰나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파도가 넘실대는 것을 보고 ‘파도체’를 쓰다가 2011년도 세종대왕 기념사업을 하면서 현재 살아있는 서예가 5인을 불러놓고 폰트를 만들겠다고 해요.

네 분의 작가한테는 궁체나 다른 거를 쓰라고 하고 저한테는 판본체를 쓰라고 하더라구요. 김충현 선생님의 판본체에서 느껴지는 장중함 대신 가로획을 입술 모양으로 올려서 웃는 모습이 되고 즐거운 표현이 되겠다 싶어서 써 봤더니 생각했던 것이 나오는 거 같더라구요.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미소체’입니다. 미소체는 앞으로도 더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보충하면서 계속 더 보기 좋게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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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를 하셔도 작품을 팔지 않으시고 전시관과 작품 일체를 제주도에 기증하신 이유는?

-. 작품을 팔아버리면 끝나버리는게 싫어요. 선물을 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더 좋아요.

1031평 부지와 전시과, 그리고 보관하고 있는 작품 일체를 제주도에 기증했어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는냐고 나를 보고 바보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제주도가 관리해 주는 한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라고 생각해요. 작품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거죠. (현재 현병찬 선생은 자식에게도 일체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고 했다)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 제자들은 몇 명이나 있으신가요?

-. 손을 거친 제자는 만 단위가 되겠지만 꾸준히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가 중요하죠.

지금 전화하면 바로 달려 올 제자들이 150명 정도 될 거예요. (이날 인터뷰 자리도 결곬 김수애, 참곬 김희열 제자 등이 보필했다)

◆ 제주의 문화에 대해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가야할 과제인데 제주도에는 다른 지방보다 노동요가 굉장히 많아요. 제주의 민요를 작품으로 다 쓸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은 100분의 1도 못 했거든요.

제자들도 다 호응을 해서 함께 제주어 쓰기를 하고 있는데 제주도는 문화와 풍습도 육지하고 다르고 기후도 육지하고 다르고 말씨도 다르고 해서 대한민국이지만 이국땅 같은 느낌이 있어요.

요즘은 편하게 살지만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 모습도 잊지말고 제주도의 옛 풍습을 작품으로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문화가 튼튼해야 그 지역이 살찌고 문화가 없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래서 제주도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 마지막으로 제주도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문화예술인 마을에 들어와서 전시관을 운영하다 보니 육지에서 또는 외국에서 찾아 오시는 관광객들이 참 많습니다. 그 관광객들에게 제주도를 알리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모자란 점도 많습니다.

우리 제주도가 앞으로 점점 발전해 나갈텐데 제주를 알리는 일에 내가 먼저 앞장 서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분도 함께 힘써 주신다면 제주도가 더욱 더 발전하는 힘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모두 제주의 발전을 위해서 함께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현병찬 (玄昞璨 1942년생)
-. 대한민국 서예가
-. 아호 한곬
-. 제주특별자치도 화북 출신
-. 1957년 제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소암 현중화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 서예를 시작.
-. 1960년 학교에 졸업 후 바로 세화초등학교 교사
-. 1980년 해정 박태준 선생에게 계속 가르침을 받아 서예 기술 발전
-. 1992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 1999년 대한민국 서예 초대작가전
-. 1995-1999 대한민국 현대 서예대전 초대작가전
-. 1996-1999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초대작가전
-. 2000년 동화초등학교 교장
-. 2003년 정년퇴임...후학양성
-. 현재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상주
-. 제주특별자치도의 현판과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표지판 글씨체 현병찬 선생 작품

한곬 선생과 뉴스N제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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