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4)나는 99번 긍정한다 ... 즐거운 도전에 희망이 있다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4)나는 99번 긍정한다 ... 즐거운 도전에 희망이 있다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3.07.01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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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시대의 경제인
행복한 CEO 송주온 성공 이야기
끊임없이 긍정하고, 또 긍정하라

뉴스N제주가 창간 5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복한 CEO' 송주온 성공이야기 '나는 99번 긍정한다'라는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송주온 BT&I 대표이사는 첫 인상만 봐도 즐거움을 준다. 송 대표는 평소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며 여행업 또한 고객에게 행복을 주는 서비스업종이라 여기고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할 수 있고 고객이 행복하면 CEO인 자신 또한 행복해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대개 직원들을 혹사하면서 오로지 고객만을 만족시키려는 CEO가 있지만 송 대표는 우선 직원들이 행복해야 된다는 논리다. 새로게 시작하는 기업 대표나 기존 사업이 부진하다고 생각있는 CEO는 참조할 만하다.

이번 주제인 즐거운 '도전에 희망이 있다'는 내용을 살펴보면 성공하는데 '타이밍'과 CEO의 '직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예로 송대표가 여행사를 차린 다음해인 1988년 서울올림픽은 기회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여행업계에 익숙치않은 바우처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미리 객실예약 대행을 해서 방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현상을 간파한 것인지 마케팅의 큰 성과를 본 것이다. 

'안목(眼目)'이라는 말이 있다. CEO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단 능력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송대표에게 따라붙는 '행복한 CEO'라는 말만 들어도 고객은 물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송 대표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하면 된다'는 생각, '되면 한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닌 주도적인 생각이 사업장을 크게 키운 바탕이라고 여겨진다.

기업체 전문 여행 서비스 분야 1위를 넘어서 업계 1위의 여행사로 성장시키고 있는 송주온 대표의 도전과 희망을 응원하면서 많은 필독과 응원바랍니다. 이 장부터 송경애 대표를 송주온 대표로 표기합니다. [편집자 주]

송경애 BT&I그룹 대표
송주온 BT&I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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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도전에 희망이 있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아니 만고의 진리라고 믿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가진 것이 없어서, 운이 나빠서 해도 안 되더라."고 반문할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든든한 배경과 특출한 능력이 있는데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이라도후회 없이 열심히 뛰어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보람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하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사를 시작할 때 거의 맨 주먹이나 다름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구두 뒷굽을 수없이 갈아가며 뛰고 또 뛰었다. 내가 열심히 뛸수록 영업실적이 올랐으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항공권 판매가 점점 늘어났다.

1990년 1월 여행사를 시작한 지 2년 6개월 만에 우리를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항공권 판매액이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금 돈으로환산하면 약 12억 원 정도인데, 그 당시에는 그 가치가 훨씬 컸다.

매출100만 달러 달성은 항공권 판매와 여행서비스 판매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했다.
주로 외국인 고객을 상대하는 터라 대한민국 국적기보다는 노스웨스트 NW, 유나이티드 UA 등 외국항공사 관매가 90% 이상이었다. (우리 회사가 초창기였던 그 당시에 많은 도움을 주신 노스웨스트 항공사 관계자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연간 항공권 판매액 100만 달러를 달성했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정한 단기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더욱 성장할 수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직원도 늘어났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항공권의 전자 발권이 되지 않아 손으로 일일이 작업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여행사를 시작하고 매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회사 대표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발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정해 뛰고 비즈니스에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여행사를 차린 다음 해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많은 외국인의 서울 방문이 예상되고 있었다.

잠실 쪽에는 선수촌 아파트가 한창 건설되고 있었고, 언론에서는 선수단과 기자단을 제외한 나머지 관광객들이 서울에 왔을 때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숙박시설에 주목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관광 산업 수준이 많이 뒤떨어진 상태였다. 나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객실 예약대행을 했다. 현지에서 예약하면 대신 방을 예약해 주고, 예약이 확정되면 현지로 팩스를 보내어 예약업무를 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발급한 바우처(Voucher. 지금은 사회보장제도의 의미가 강하지만 초기만 해도 일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중서, 마케팅에서 특정상품의 판매를 촉진하고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 중의 하나로 사용)를 가지고 호텔 체크인을 하도록 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망으로 세계 어디라도 e-mail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그때는 팩스가 대세였고, 때로는 우편으로 예약하기도 했다.

송경애 BT&I그룹 대표
2023 제주포럼에서 송주온 BT&I그룹 대표(사진= 페이스북)

그때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다. 지금처럼 국제전화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고, 시내전화비도 만만치 않아 고객들과 연락도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노하우도 생겼고 더불어 매출도 늘었다.

드디어 한국의 가장 큰 축제였던 올림픽이 다가왔다. 예전 호텔 근무경험을 살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춰 봤을 때 관광호텔, 모텔, 민박 등 관광객들의 다양한 수요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텔은 '블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미리 돈을 지불하고 방을 예약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강남지역에 있는 쓸 만한 모델들의 실태를 조사하여 외국인들이 숙박하기에 불편하지 않는 곳을 찾아 목록을 작성했다.

한번은 당시 선릉에 있던 뉴월드호텔 앞에 있는 미도장 여관에 계약을 하러 갔다. 계약을 끝내고 지배인과 나오다가 길 앞에서 아버지 친구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와 마주친 그분은 기절초풍한 상태였고 나 역시 불편하기 마찬가지였다. 27세나 된 처녀가 벌건 대낮에 나이 든 남자와 여관에서 나오는 것을 봤으니 어떤 상상을 했겠는가.

지배인이 숙박예약 업무 때문에 이곳에 계약서를 작성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계약서 사본까지 보여 주며 오해할 만한 상황을 이해시켰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미국에 있는 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다소 민망한 상황까지 겪으면서 작성된 목록을 바탕으로 올림픽 개최 몇 개월 전에 강남지역의 모델들을 미리 예약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거절하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하지만 바로 입금을 해주자 주인들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돈을 미리 받았으니 손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액으로 2~3만 원 정도의 방들을 미리 확보했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낯설었던 바우처를 만들어서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호텔, 여관 등에 필요한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미 간파했기에 바우처를 대중화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많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지금은 매우 보편화 되어 익숙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고객이 호텔에 우리 바우처를 주고 들어갔다.

내 예상은 적중해서 올림픽이 열리자 방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2~3만 원짜리 방들이 8~9만 원까지 올랐다.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한 업주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올려서 모두 팔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직접 팔기 위한 마케팅을 우리 회사에서 대행까지 했으니 업주 입장에서는 배는 아팠겠지만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숙박예약 사업은 큰 성과를 올렸고, 회사가 발전하는데 큰 기틀이 되었다. 이 성과물은 우리 여행사가 마포를 확장하여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벌써 회사 설립 25주년이 되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고, 현실이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 달려왔다. 끝까지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내 사전에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안 돼!"

여자라서 안 된다는 그 말을 결코 인정할 수 없어 인내와 뚝심으로 이루어낸 사업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이겨내려면 내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송경애 BT&I그룹 대표
2023 제주포럼에서 송주온 BT&I그룹 대표(사진=페이스북)

여성을 향한 세상의 잣대에 결코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업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했다.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나만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처음부터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면 시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기업을 이끌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발로 뛰었기에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안목도 생겼던 것이다.

나를 지금까지 이끈 힘은 '희망을 품은 간절함'이다.

단순히 희망만 품은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간절히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가 있는 한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근성'이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일을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즐겁게 할 일인가' 라고 보는 시각의 차이이다.

이왕 하는 것 즐겁게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만큼 성과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같은 도전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하면 그 희망의 값도 커진다.

그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만을 좇아 도전했다면 벌써 지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가족 같은 직원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행복을 바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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