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N]제주고 동문들, 소우 최제두 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현장N]제주고 동문들, 소우 최제두 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12.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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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읍 오라리 산 100번지 외 3필지 203,269평 제주농업학교에 실습지 무상 기증
제주고등학교+제주고총동창회, "후학 양성 위해 제주고 학생들 실습 교육 장 활용"
향목로타리클럽 회원들, 공덕비 제막에 십시일반 기금 마련..."후배들에 좋은 귀감"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제주고등학교(교장 고용철)와 제주고등학교 총동창회(회장 고석주)는 8일 오후 2시에 제주시 오라2동 산100번지 열안지 오름에서 이석문 교육감, 고용철 교장, 고석주 총동창회장을 비롯한 유족, 재학생, 동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번 공덕비 건립은 후학 양성을 위해 제주농업학교(제주고 전신)에 무상으로 열안지 실습지를 기부해 준 故 최제두 선생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리는데 뜻이 있다. 이날 세운 공덕비는 제주고 출신으로 결성된 제주향목로타리클럽(회장 원종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을 통해 만들었다. 당초 원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소우 최제두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학교측에 건의해서 총동문회와 함께 진행됐는데 제주고 후배들은 물론 타 동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실습지는 선생과 부친 최치경(崔致敬 1851~1935) 선생이 2대에 걸쳐 개척한 요지로 제주읍 오라리 산 100번지 외 3필지 203,269평에 달하는 넓은 땅인데, 당시 이곳에 숙소를 짓고 환자를 유숙시키며 전지요법(轉地療法)을 실시하였고, 농작물과 채소 및 목초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던 곳이기도 하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당시 제주농업학교 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선생은 제주농업학교에서 실습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이 땅을 실습림과 목장용으로 흔쾌히 기부하면서 명실공히 학교 실습지가 되었다. 현재 이 실습지는 제주고등학교 학생의 6차 산업 실습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부에는 탐라교육원과 제주미래교육연구원, 제주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석주 총동창회장은 "앞으로 제주고등학교는 이곳을 제주고등학교 학생들의 다양한 실습교육의 장으로 활용됨은 물론, 창업 및 다양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데 든든한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석문 교육감도 "소우 최제두 선생의 공덕에 대한 제막식을 이제야 실천하게 된 것이 늦었다"며 "이제라도 공덕비를 세우게 된 것을 기브게 생각한다"고 언급하며 "유족들에게 고마운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주 교육의 좋은 터전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의생 崔濟斗 선생 약력

의생 최제두 선생(崔濟斗 1897~1957.12.18)은 1897년(광무 원년) 5월 23일 당시 제주읍내의 유명한 의생 최치경(崔致敬)과 김해생(金亥生)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본적지인 제주시 삼도1동 914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제두 선생의 선친 최치경(1851~1935) 선생은 전주최씨로 대대로 전남 장흥군고읍면수동에 살다가 고종 24년(1887) 제주목사가 도민들을 규휼할 목적으로 끌어들이자 가족과 함께 낙향했다. 1914년 의생면허를 받고 제주면 삼도리 914번지에서 한의를 하시면서 구 도립병원 동쪽 의약골과 한라산 열안지에 약포를 개척하여 환자와 관가에 공급하면서 후세를 육성했다. 그래서 그의 본적은 제주면 오라리로 되어있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최제두 선생은 부업(父業)을 계승하기 위해 한문과 한의학에만 몰두하다가 개화기 새 사조의 학문적 욕구로 외국어 의학서적을 독학하셨고 광주의학강습소를 거쳐 26세인 1923년 의생시험에 합격하여 의생면허(1923.6.25./ 면번 6524)를 받으셨다. 제주면 외도 내도 도평 해안지역을 시작으로 광복전후까지 제주읍 외도 내도 도평 해안 애월상귀 하귀 광령 고성 금덕을 담당했다.

최제두 선생은 광복 직전 의사교육을 이수한 후 의사시험에도 합격하였으나 광복 혼란기에 의사합격증을 수령하지 못하여 평생 의생으로 자족했다. 내과적 치료는 주로 한약에 의존하고 외과적인 치료에는 수술료법을 구사하는 등 신구의술을 병용하여 도민들의 호평을 받았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제주시 무근성 탐라여관 자리와 북신로 일인거리, 관덕정 뒤, 박의원(박영훈) 자리 등 여러 곳을 옮기며 「제생의원」을 개원했다. 1943년 일제의 소개정책으로 화물선을 대절하고 전남 장흥에 피난 간 적도 있었으며, 6.25 직전에는 광주로 옮겼다가 전쟁이 터지자 전남 시골지역을 전전했다.

최제두 선생은 선천적으로 예술적 소질을 타고나셨습니다. 한문에 능하여 시문을 비롯 창(唱), 서화, 전각, 사군자, 문방 골동, 바둑, 사냥 등 고상한 취미와 잡기를 좋아했다. 한말 제주 읍내에서 그는 일류명사로 손꼽혔다. 김충희(제5대 제주도지사), 이윤희(이승택의 부. 농업학교 사친회장), 김범준(6년제 농업중 기성회장, 증보탐라지 공저), 김문희(1945 미군정 제주도사 서리), 현지준(의생) 등과 교유했다. 바둑은 워낙 고수였기 때문에 일인들도 그와 바둑을 두려면 꿇어 엎드려 한수를 청하곤 하였고, 곧잘 밤샘을 했다.

최제두 선생은 오라동 열안지 일대에 선친이 일궈놓은 208,269평(688,493 m₂)의 엄청난 산림과 목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목장의 서쪽 계곡에 선친 최치경이 그곳에 별장을 짓고 토지를 개간했다. 이곳은 최제두 선생까지 2대에 걸쳐 관리했던 소중한 땅으로, 환자를 유숙시키면서 전지(轉地)료법을 실시했던 요지였다. 또 최제두 선생은 열안지 뒤 샘물에서 건천까지 1 km 상당거리에 왕대로 배수관을 만들어 식수로 공급하고 논(나락)농사도 했다. 제1채초지(採草地)에는 채소와 작물을 재배하였고 제2채초지에서는 목초를 길러 가축을 키웠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농장을 2대에 걸쳐 애써 관리해온 최제두 선생은 때마침 농업학교 후원회(사친회의 전신) 회의에서 목장 실습지 구입관계로 애타는 모습을 보고 당신의 소유인 열안지 일대 1백여정보를 농업학교 실습림과 목장으로 기쁘게 무상 기증했다. 당시 기증절차에 따라 후원회원인 최제두 선생은 농업학교 후원회장 이윤희 명의로 일차 등기후 1938년 4월20일 농업학교 소유로 이전해 주었으니 오늘날 제주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탐라교육원 과학고 과학연구원의 기틀이 되었고 한때 섬문화 개최지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선생은 재물욕이 없으셨고 자녀에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못했다. 부인 김해김씨(金順熙 1898~1963)는 혼자 힘으로 6남 1녀를 양육하는 한편, 열안지 관리와 자연과 산수를 즐기는 시아버지(최치경) 봉양과 부군을 위해 벅찬 생활을 감당했다. 최제두 선생은 1957년 12월 18일 별세하니 향년 61세였다.

최제두 선생의 아우 중에 최길두(崔吉斗 1917~1992) 시인이 유명하다. 최길두 선생은 제주고 제25회 졸업생(1935)으로 1946년 <新生>발간에 참여, 최일(崔一)이란 필명으로 「폐허」「哀貧의 農者」을 발표했고, KT란 필명으로 「詩人鄕」등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시집으로 「無明土」가 있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유족으로는 수형(守衡) 수아(守俄) 수광(守珖) 수상(守常) 수명(守明) 수민(守民) 수일(守一) 등 6남 1녀가 계시나, 현재 차자인 최수광씨가 최제두 선생의 묘소관리와 봉제를 맡고 있다. 최제두 선생의 묘소는 이 근방인 제주시연동 2488-330번지에 있다.

이곳 제주고등학교 열안지실습지는 1939년 4월 20일 의생 최제두(崔濟斗 1897. 5.23~1957.12.18) 선생으로부터 후학 양성을 위해 제주농업학교(제주고 전신)의 실습림과 목장용으로 무상 기증받은 소중한 학교자산이다.

열안지실습지는 최제두 선생과 그의 부친 의생 최치경(崔致敬 1851~1935) 선생이 2대에 걸쳐 개척한 요지이며 숙소를 짓고 환자를 유숙시켜 전지요법(轉地療法)을 실시하면서 논농사 등 작물과 채소와 목초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던 곳으로 제주읍 오라리산 100번지외 3필지 203,269평에 달한다.

이곳 실습지는, 최제두 선생이 제주농업학교 후원회 회원이었으므로 당시 기부절차에 따라 학교 후원회(사친회 전신)에 먼저 기증한 후 후원회 임원 이윤희 현경호 김두현 3인 명의로 1차 등기하여 1939년 4월 24일 제주농업학교로 소유권이 이전됐다가 <임야소유권이전등에관한특별조치법>에 따라 1971년 6월 10일 제주도로, 1991년 10월 8일 제주도교육청으로 소유권이 변경되었다.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현재 선생이 기부한 실습지는 제주고등학교 학생 6차 산업 실습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부에는 탐라교육원, 제주미래교육연구원, 제주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최제두 선생은 광주의학강습소를 거쳐 1928년 의생 면허를 받은 선구적인 의료인으로 「제생의원」을 개원하여 신구 의술을 병용했다. 후손으로는 수형(守衡) 수아(守俄) 수광(守珖) 수상(守常) 수명(守明) 수민(守民) 수일(守一) 등 6남 1녀가 있다.

제주고등학교와 제주고총동창회는 후학 양성을 위해 이 실습지를 기부해 준 최제두 선생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 제주고 학생들의 실습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것을 다짐한다.

                                                                                                                            2021년 12월 8일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 이석문 
제주고등학교 교장 고용철 
제주고등학교총동창회 회장 고석주

소우 최제두선생 공덕비 제막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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