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교 칼럼]](38)소훼란파 (巢毁卵破)
[유응교 칼럼]](38)소훼란파 (巢毁卵破)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5.11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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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조시인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예술문화 대상, 해양문학상, 전북문학상, 전북 아동문학상, 소년 해양문학상, 새전북 문학상, 디카에세이상 첫 수상자

시인 유응교 '그리운 것이 아름답다'라는 시집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해학과 웃음, 그리움을 선사하는 전북대 건축학과 유응교 교수가 뉴스N제주에 그의 시조를 소개하는 '유응교 칼럼'을 연재합니다.

그는 둘째 아들(저자 유종안)이 쓴 '대한민국 브랜드 파워'라는 책을 보고 ▲태극기▲무궁화▲한글▲한복▲한식▲한옥▲한지▲국악(판소리)▲아리랑▲인쇄술(직지심체요절)▲조선왕조실록▲사물놀이▲전통놀이▲K-Pop▲도자기(달항아리)▲팔만대장경▲거북선▲태권도▲한국의 시조▲한국의 온돌-아자방▲한국의 막걸리▲한국의 풍류-포석정▲한국의 불사건축-석굴암▲한국화 김홍도의 씨름 등 총 24개의 항목에 대해 동시조와 시조로 노래해 대단한 아이디어 창조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공학박사 유응교 시인은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사)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8주년 창립기념식에서  디카에세이상 시상위원회(위원장 장영주)와 뉴스N제주(대표 현달환)가 협력약정서를 맺어 가진 우리나라 최초로 공동 시상하는 디카에세이상에 첫 수상자로 얼굴을 알리는 영광도 가졌다.

유응교 시인은 전남 구례 ‘운조루’에서 출생해 1996년 「문학21」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년문학』 동시 부문 등단,

칼럼집 <전북의 꿈과 이상>, 유머집 <애들아! 웃고 살자> 외 3권, 시집 〈그리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외 25권, 동시집 <까만 콩 삼 형제>외 1권, 동시조집 〈기러기 삼 형제〉외 3권 등을 펴냈다.

한국예술문화 대상, 해양문학상, 전북문학상, 전북 아동문학상, 소년 해양문학상, 새전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전북대 공대 건축과 교수, 전북대 학생처장, 미국M.I.T 연구교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건축 추진위원장, 전북예총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전북대 명예교수다.

유응교 교수님의 해학과 웃음, 감동을 주는 시조를 앞으로 매주마다 뉴스N제주를 통해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 바랍니다[편집자 주]

유응교 시인
유응교 시인

제38장
소훼란파 (巢毁卵破)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흐르게 했던 왕은 
태종(太宗, 1367~1422) 이방원이었다. 

방번, 방석 어린 형제는 물론 
개국공신 정도전부터 처가 민씨 집안까지 
완전히 도륙을 냈던 이방원이었다. 

필자(筆者)는 지금도 그 잔인함에 
차마 경어(敬語)를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왜 태종이라는 시호(諡號)가 붙었는지, 시호에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를 이어 
그 자식 이방원에게도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식이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시호는 왕의 붕어(崩御) 이후, 
후인(後人)들이 붙인다. 
그러니까 후세의 인물, 
즉 세종과 그 신하들은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와 같은 동급의 왕이었다는 평가를 한 것이 분명하다.
 
이방원은 정도전과 사림세력들이 
추구했던 신권정치(臣權政治)에 맞서 왕권정치(王權政治)를 정립하고 수호했던 인물이다. 

이에 반대하거나 왕의 권위에 
위협이 될 기미가 보이는 자들은 
모두 주살(誅殺)하였다. 
신하는 물론 친가와 외가, 처가의 처남까지 예외가 없었다. 태종은 왕권이 확고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이 피비린내 속에서 왕의 자리에 환멸을 느낀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물러나고, 훗날 세종대왕이 된 충녕대군에게 이방원은 
모든 걸림돌을 제거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도, 
군사에 관한 일을 보고하지 않았다 하여 
죽임을 멈추지 않는다.
 
왕권에 맞서거나, 
장애가 될 모든 인물을 제거한 이방원. 
그리하여 아들 세종은 
부친이 닦아놓은 탄탄대로(坦坦大路)의 길에서 
5000년 민족역사에 남는 최고의 치적을 이룬다. 

훈민정음 창제부터 6진개척, 대마도 정벌, 장영실의 과학까지, 참으로 눈부신 날을 이룬 것이다.
 필자(筆者)가 이방원에 태종이라 붙인 이유에 함구(緘口)하고 미움을 푼 것은, 태종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10명의 신하가 있다고 치자.
 그 중의 한 명은 틀림없는 충신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 명은 
 반역을 꿈꾸는 역적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명은 누구일까.“
 
필자(筆者)는 
태종의 다음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왜 그가 클 태(太)자를 쓰는 임금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나머지 8명은, 내가 강하면 충신(忠臣)이 되고, 내가 약해지면 역적(逆賊)이 된다.“
태종 이방원의 고뇌(苦惱)와 
처갓집까지 멸문(滅門)을 시킨 그 번뇌(煩惱)를 이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튼튼해야
국민이 안전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념이 양분되어 서로 싸우면 둥지가 무너지리라!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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