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2022.12.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시상식 올해의 공로상
1998년 삼성라이온즈에서 16년 선수생활을 끝내고 홀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에 있는 싱글A 팀으로 지도자 연수를 받기 위해 들어갔다. 이때도 문화의 장벽과 언어의 장벽 그리고 음식의 장벽으로 인해 미국생활 첫 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어로 인한 불편함과 더불어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오는 관계적 불편함 속에서도 평생 해온 스타일 대로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생활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개인운동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야구장에 항상 제일 먼저 나가 선수들의 도구를 챙겨주고 매일의 스케줄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누가 알아주기 위한 가식이 아니라 평생 해온 나의 습관대로 똑같이 생활한 것이다. 하지만 코치들이나 선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던 언어의 장벽은 나를 계속 힘들게 했다.
그래도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궂은 일은 혼자서 도맡아 했다. 이렇게 이들과 함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지도자생활 첫 해를 보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클리브랜드팀에서는 나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팀에서 매일 리포터를 작성해 메이저리그 구단에 보고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예전 김용국 후배가 미국에 지도자 공부하러 갔을 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누가 보았는지 리포트를 작성해 '언제 어디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 그때부터 김용국 후배가 운동장에서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들은 어디서 보았는지 매일 리포터를 작성해 구단에 제출한다. 마찬가지다. 박효철 감독과 내가 베트남에 들어와 지난 시간 동안 베트남 야구협회에서는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매일 감시 아닌 감시를 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특히 이들 베트남 야구협회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박효철 감독이 베트남 초대감독으로 부임하자 누가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박효철 감독에 대해 훤하게 깨뚤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박효철 감독이 미국에서 베트남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원대한 꿈을 품고 들어왔지만 박감독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제대로 호응도 하지 않고 방관을 했었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박효철 감독이 그동안 마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야구인 선배로서 마음이 아플뿐이다. 그래도 박효철 감독은 묵묵하게 자기가 꿈꾸었던 야구를 이들 베트남 어린 선수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지난 2년을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 고생하며 묵묵하게 자기 일을 했던 것을 이들 베트남 야구협회에서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비록 박효철 감독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겠지만 박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박효철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베트남 야구협회 임원진들이 알았기에 이제부터 더 돈독한 관계속에서 베트남은 야구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