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옥 칼럼](3)"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정옥 칼럼](3)"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5.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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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포로텍션메드 제주 공동대표
'생활속의 향기' 대표

나는 벅찬 가슴을 안고 서울에 올라가서 재활 치료를 하면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남편의 옷과 슬리퍼를 가방에 담으며, 그가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는 상상을 하면서 짐을 챙겼다.

순간 뇌출혈 전에 꿈꿨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그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나의 심장이 구멍이 뻥하고 뚫려서 빠져나가버린 공허함 등 이런 게 텅 빈 가슴인가라는 생각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남편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꿈을 꿨다. 새벽에 잠이 깨서 일어나 앉아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옆에 잠을 자고 있는데 자꾸 없는 것 같이 느껴지지”

남편의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 내가 좋으면 초능력으로 축소 시켜서 호주머니에 담고 다녀라”

그러면서 작년 여름에, 결혼하고 12년 만에 처음으로 본 심야영화 ‘아일랜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일랜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이 ''앞으로 세상은 인간이 복제되면 영원히 죽지않고 몆살까지 살수 있을까?"라는 남편의 얘기가 생각이 났다.

6월1일, 사설 특수 구급차는 아침에 제주에 도착했다.

이제 13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돌보며 올라가지? 남편이 의식이 있어 이송하는데 더 어려움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방치되어 치료시기가 많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이송 중 수시로 체위변경하면서 셕션 유동식 식사 및 약을 챙겼다.

그런 와중에 환자를 실은 배는 무사히 목포항에 도착했다.

간병을 위해 읽었던 책 표지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서둘러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선 채로 선생님 보조를 맞추는데 호흡을 잘 맞춰 나갔다.

두 달 전에 내려 올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였는데 어느새 프로 간병사가 돼 있었다.

다행히 새벽2시 세브란스 재활의학 병동에 도착 했다.

바로 도착하자마자 사전 예약된 2인 병실에 입원했다. 다시 1주일 후에 다인병실로 옮길 수 있다.

날이 밝아 병원 돌아보는데 처음에는 길 찾는 것이 어려웠다.

재활의학과 검사를 받으려고 이동하는 데 승강기 앞에는 휠체어 전쟁이었다.

간병을 위해 읽었던 책 표지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90%가 남자환자, 그 순간 나는 대한민국 아빠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졸중 환자들이 좌뇌 없는 사람, 우뇌 없는 사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마비된 재활환자들이 보톡스 주사로 치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리치료, 연하치료, 심리치료, 언어치료 등 각 환자별로 분야별로 치료하는 것이 이렇게 많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2인실에서 다인병실로 옮기고 휠체어 탈 때는 작은 이동식 리프트로 환자를 옮겼다.

재활치료 시간표가 정해지면서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인병실에서 다른 환자들을 보면서 의식이 없어도 병실에 물리치료 선생님들이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주도에서 방치되어 치료를 못 받은 것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전문의 책에 의하면 뇌졸중 발병 후 가능한 빨리 재활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쓰여 있었다.

또, 뇌가 회복되는 것은 뇌졸중 발병 후 처음 3개월간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잘 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적의 회복기가 지난 이후에는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아도 회복되는 것이 한계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재활치료 시기는 뇌졸중 환자가 급성기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즉 발병 후 1일내지 2일째부터 재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차적인 합병증을 예방하여 단기간에 최상의 기능회복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처음 발병 후 일주일 동안을 뇌졸중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가 많이 변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가지 검사도 받고, 약물치료도 받고, 때로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보통 이 시기가 지나면 신경학적 상태가 안정 되는데, 이 시점부터 운동능력과, 일상생활 훈련 등을 위한 포괄적 재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전문의 책을 수없이 읽으면서 그것을 터득하면서 나역시 전문적인 간병사가 돼 가고 있었다.

재활치료는 의식이 돌아오면 살아 있는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사용하지 않는 뇌를 훈련 시켜서 바통을 넘겨준다고 들었다.

남편은 엘튜뷰관, 기도관 삽관을 했기 때문에 연하치료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조를 짜고 하는 데 25살 젊은 청년하고 시작했다. 삼키기 곤란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 보다 폐렴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한 번도 삼키기가 곤란한 경우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삼킨 곤란 조영술을 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 1회용 작은 스푼으로 떠서 삼키고 얼린 막대 거즈로 마사지하고 삼키고 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어느 날 같은 병실에 보호자가 “제주도 댁은 참 신기해요. 어떻게 환자 하고 대화가 돼요?”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아듣고 하니 치료가 빨리 되네”

나는 결혼할 때 남편에게 우리는 가난하지만 절대로 떨어져서 살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나 역시 같이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잠을 잘 때도 하루 일과를 서로 얘기 하고 잠을 잤다.

어떤 날은 똑같은 말이 동시에 나올 때도 많았고 같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아! 그때 대화를 많이 한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지”

지금이야 느끼지만 그렇게 남편과의 대화를 가졌던 것이 이렇게 반응이 없는 남편을 치료하는 데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되는지를 느꼈다.

같은 병실에는 장기 재활 환자들이 많았다.

2년, 3년, 5년, 10년 대기업 사장님, 영사님, 공무원 등 직업이 다양하고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는 분들이라 다 간병인을 두고 보호자는 따라 다니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처럼 간병인을 둔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혼자 24시간 간병을 하고 치료 받을 때는 열심히 치료선생님들 따라 어깨 너머로 배웠다. 열흘이 되어갈 무렵 이 병원이 8년 만에 큰 파업을 했다

병워 측 의사가 “다른 병원 예약 해보세요” 하고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가 귀에 들렸다.

“네? 안돼요. 선생님. 제주도에서 어떻게 올라왔는데”

“예약해서 한 달 반 만에 그것도 구급차에 배를 타고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13시간이나 어렵게 왔는데 저, 절대로 퇴원 못해요”

나는 눈물범벅이 돼서 담당 의사선생님에게 매달렸다.

이어 남편의 심리치료 검사를 하는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고 치료를 거부하고 죽고 살고싶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나는 휠체어를 밀고 아무 생각 없이 한참 가다 멈추고는 휠체어를 앞으로 밀어놓고 뒤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이대로 같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있는데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눈앞에 ‘기도문‘ 보였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도록 틀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도 깨지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 주면서 “제주도 댁 병실로 환자 데리고 가야지”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휠체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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