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건공장군 김성조 영정 제작기
[특별기고]건공장군 김성조 영정 제작기
  • 뉴스N제주
  • 승인 2022.07.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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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 건공장군김성조현창위원회(수필가)
김정택 수필가
김정택 수필가

영정은 특정 인물의 자태를 그린 그림으로, 영(影), 진(眞), 진영(眞影), 상(像, 相), 화상(畵像), 초상화, 인물화라고도 한다.

초상화(인물화)는 흔히 후손에게 교훈의 의미를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의 목적으로 제작된다. 생시이건 고인(故人)이건 얼굴을 묘사하여 그 자체로 시대적 예술작품이면서 대상자를 기억하는 기념물이 된다.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역사 인물은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둔다. 초상화는 인물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각 시대 인물화의 특징이 초상화에 집약되어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초상화의 종류로는 어진(御眞)·공신상(功臣像)·기로도상(耆老圖像)·사대부상(士大夫像)·여인상(女人像)·승상(僧像)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건공장군 김성조상은 공신상에 해당된다.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이나 그 자손들에게 그 공을 치하하고 공신호(功臣號)나 포상(褒賞)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고승의 초상화(僧像)은 조사 신앙의 예배 대상으로서 선종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러므로 영정은 일반 사진의 가치를 넘어 그림속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할 수 있는 메시지이자 숭배와 기원(祈願)의 대상이 된다. 장차 교과서나 여러 책자에 실리거나 동상으로 제작될 때에 그 기준이 된다, 물론 화폐 도안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리는 방법으로는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린 도사(圖寫), 생존 시 그린 진영이 없어 얼굴을 아는 이들의 기억에 의존해 그린 추사(追寫), 기존 진영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모사(模寫)로 나뉜다. 예를 들면, 해인사 대작광전에 봉안(2019)된 경순대왕 어진(御眞)은 민화작가 백미자 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모사(模寫)이다. 원화가 낡아 자취가 희미하고 원래 영정을 모셨던 해인사로 환귀본처(還歸本處)하자는 후손들의 염원이 모여 제작된 것이다.

단종의 어진은 생존 시 모습을 그린 도사(圖寫) 작품이 없기 때문에 추사(追寫) 방식으로 제작됐다. 전통적인 장황 기법의 족자 형태다. 단종의 용안은 조선왕조실록과 행장 등 사료와 전주 이씨 종중의 골상적 특징이 고려됐다고 한다. 여기다 국보 317호 태조 어진 경기전본과 세조 어진 초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을 검토해 공통된 특징을 추출했다.

김성조 장군 영정 (백미자 作 69 x 122 cm)
김성조 장군 영정 (백미자 作 69 x 122 cm)

건공장군 김성조(1527~1575)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나 진영은 물론 찾을 수 없다. 을묘왜란(1555) 당시를 기준 잡으면 466년 전 조선 중엽 용감무쌍한 28세의 젊은 인물이다. 수염을 기르기 시작할 때이다. 김성조 장군의 실제 얼굴이 수백 년 후인 배우 얼굴보다는 후손들의 얼굴을 닮았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유전 정보는 DNA의 유전자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외향적 특성 가령, 머리카락, 피부색, 대머리, 눈빛, 키, 체질, 성격 따위는 후손과 인척간 비슷한 경향이다. 물론 친족 간에 전혀 닮지 않은 경우도 있다. 결국 김성조 장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상의 영역인 것이다.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상태에서 일종의 상상화가 씨족 공인 초상으로 제작되는 것이기에 물론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꼭 닮기도 불가능하거니와 상상에 기댈 수밖에 없는 초상화는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고 누구에게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여러 번 회의 끝에 제주 민속풍으로 신화적 감각과 대중성을 우선하기로 하고 하였다. 물론 민화(民畵)인 경우 정면성과 대중의 이해도, 동화적 표현을 우선하므로 입체감이 없고 현대적 감각과 달라 무속(巫俗)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김성조 장군의 영정 제작에 앞서 작가 선정과 기준이 될 만한 인물을 조사했다. 다행히 종친 가운데 청도에 사는 민화 대장인(大匠人) 기양 백미자 선생에게 의뢰(2021. 7.12)하니 흔쾌히 응락했다. 필요한 화상(畫像)으로 장남 중심의 직계 후손과 계파별 대표 인물 등 30명의 사진을 확보하고 최대 공약수로 그림을 요약해 보냈고, 충분히 참고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오래 제작 기간을 거쳐 작품(69 x 122 cm)을 인수(2022. 2.5)하였다.

영정봉안의 취지는 후진(後進)들이 의지할 데를 구하여 그 진영을 족자에 그려 특정 장소에 봉안하고 일반 참배의 대상으로 또는 제사 때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군봉인축
장군봉인축

영정(影幀)이나 신주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을 사묘(祠廟)·사당(祠堂)·서원(書院)·진전(眞殿)·진영각(眞影閣)·영정각(影幀閣)·영당(影堂)이라고 한다. 종친회의 소망은 김성조 장군이 제주도민들의 숭모를 받고 나아가 불천위 봉제(不遷位 奉祭)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당은 관계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기다려 추진할 작정이다. 그때까지는 종친회관 구내의 임시영당에 모실 수밖에 없다.

영정은 신주, 지방(紙榜), 혼백과 마찬가지로 망자의 영혼을 의탁하는 일종의 상징물이다. 그림에 영험이 있으려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며, 장군과 작가와 후손들의 영혼이 서로 통하는 접신(接神)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임시봉안소에 봉안중이지만 종친들의 경건한 참배를 권고하는 바이다. 여기서 접신이란 조상의 신령이 그림에 옮아 붙거나 그림 속에 자리 잡게 하려는 상태이다. 이에 임시 봉안축을 덧붙인다.

 

恭惟                              삼가 생각하온데

歲壬寅二月合朔乙卯  初五日己未    때는 임인 2월초닷새 기미일

孝孫宗親會長昌海 敢昭告于         효손 종친회장 창해는 감히

先朝尊前。                        선조님 전에 고하나이다.

金公成祖 有盛威武  성자조 할아버지는 을묘왜변으로 위태로운 나라에서

身在危邦 乙卯倭變  위무를 크게 떨치시어

贄建功將 來復粗鄕  거친 향토를 회복하사 건공장군 벼슬을 받으셨습니다.

忠孝家風 由緖甚重  충효로운 가풍에 유서가 깊어도

義色亡形 公議齊發  바른 모습 형체가 없으셔 공론이 일어나자

依托追寫 秉彝同好  그림에 의탁함을 사람들이 함께 좋다하므로

請伯起陽 粧潢奉安  기양 화백에게 영정을 청하여 표구하고 봉안하나이다.

瞻仰影幀 視貌則然  영정을 우러러 보아 그럴듯하오니

拔俗高標 樹厥名聲  세속에서 벗어난 높은 풍모요 그 명성을 세웠나이다.

可質蒼天 仰若日星  창천에 물어보아도 해와 별처럼 우러를 만하고 하물며

矧吾後孫 景行彌敦  저희 후손들의 앙모하는 마음은 더욱 도탑습니다.

良史所書 遺澤猶存  역사에 기록되었고 그 은택이 아직 남아 있사오니

精爽如在 淸風豎髮  정령께서 계시는 듯 맑은 풍모에 의기가 솟습니다.

今有臨宮 何日閣設  지금은 임시 궁실이오니 언제면 영각에 모실까요,

鄕人景慕 建祠妥靈  고을 사람들이 사모하며 사당 세운다고 합니다.

於禮則宜 剋日將祀  예법에 따라야 마땅하오니 날을 정하여 제사를 받들고

尙德勵節 永樹風聲  덕을 기리며 닦아 그 풍성을 영원히 전하겠습니다.

於薦馨香 惠今光明  아아, 이에 제물을 올리오니 광명을 내리시고  

尙饗               흠향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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