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5)청정 제주환경을 생각한다!
[특별기고](5)청정 제주환경을 생각한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0.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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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문제는 환경이다! - 에필로그
현상민 박사/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현상민 박사
현상민 박사

인류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다.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 인류는 숱한 난관을 겪으며 부단히 노력해왔다.

물론 이런 문명화 과정에는 애써 쌓은 금자탑을 인류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었다. 그 비극적인 현상은 백사장에 쌓은 모래성이 바닷물에 씻겨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문명 파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환경영향’이다.        

문명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화려했던 잉카문명의 소멸이 그러하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장엄했던 이집트 문명의 사라짐도 그러하다.

이런 문명의 파괴는 단순한 문명 자체의 붕괴로만 보기 어렵다. 환경이 붕괴의 강제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그 운명의 화살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면 누구든 비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화려했던 문명의 자취만 엿볼 뿐 그 문명 붕괴의 실체적 모습은 어두운 기억 너머로 던져두었다. 풀어야 할 숙제인데도...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물질적인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적인 환경, 인간의 다채로운 활동에서 빚어진 결과론적 환경 모두를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간의 활동에 기인된 각종 환경오염이 서로 합쳐져 복합적으로 생기는 환경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문명파괴처럼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환경 그 자체의 속성은 동일하지 않다. 도대체 왜 잉카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사라졌을까, 그런 문명의 붕괴 이후 그 영향은 어떤 형태로 현재까지 파급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어떤 환경변화 혹은 속성 때문에 찬란했던 그들의 문명이 사라졌는지, 우리는 그 붕괴의 원인을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성찰은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반면교사인 동시에 현재 우리가 속한 문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다.

지금까지 ‘청정 제주환경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한 연재 칼럼에서는 자연환경과 인위기원 환경변화를 다루면서 각각에 대해 따로 제한하지 않았다. 즉, 환경변화의 주된 원인이 인위기원인지, 자연기원인지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주로 지난 칼럼의 초점은 제주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만 강조했다. 하지만 찬란했던 인류문명도 가차 없이 소멸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려는 것처럼, 제주도가 자랑하는 청정환경을 헤치는 주된 요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이를 미룬다면, 먼 훗날 땅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자기 방기는 후손들을 위한 직무유기요, 제주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또 옳은 길일 수 없다.

따라서 연재의 마지막 칼럼인 이번 에필로그에서 필자는 대기-육지-해양을 아우르는 환경의 속성을 토대로 제주도의 환경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말하고자 한다.  

자연적인 환경변화가 우리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옛날 그린란드(Greenland)에 살았던 종족의 삶이다. 바이킹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반도에 본거지를 두고 살았다. 중세 온난기(800~1,300 AD)로 불리던 시기, 지구기후가 따뜻해지자 그들 중 일부는 지금의 그린란드로 이주했다.

그런 후 그들은 한동안 그곳에서 주로 농업과 어업을 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지구 온난기인 10세기경만 하더라도 바이킹 주민이 그린란드에 도착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가축까지 기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곡식을 재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13세기로 접어들자 ‘소빙기(1,300-1,650 AD)’라는 한랭기가 엄습하자 지구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바이킹 묘지에서 얻어진 뼈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초기에 그들의 섭취했던 영양분의 80%는 육지에서 유래했고, 나머지 20%는 바다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빙기가 되었을 때는 육지유래 음식이 20%, 나머지 80%가 바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본래 작황이 좋지 않던 작물생육 환경이 더욱 더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그들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당시 바이킹족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북유럽의 여러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더러는 그 과정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이 혹독한 자연적 환경변화(추위)에 적응할 수 없어 그린란드라는 정착지를 포기한 것을 뜻한다. 결국, 수 십 년 혹은 수 백 년에 걸친 한랭화나 온난화는 자연기후를 바꿨고, 정착지에서의 식생과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당시 같은 장소, 같은 환경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이면 자연환경의 변화가 우리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바로 이 사례에서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전적으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경변화(환경오염) 때문에 삶이 바뀐 예도 부지기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은 1960~70년대에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연안지역 공업단지에서 심각한 산업폐기물인 중금속류를 무차별적으로 방출했다.

특히 독성이 강한 수은(Hg)이나 카드늄(Cd) 등도 방출했는데, 그 결과 연안지역의 상황은 처참했다. 중금속 오염을 다룬 책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따이이따이’ 병이나 ‘미나마타’ 병이 바로 그런 심각한 현실을 말해준다. 일단 카드늄에 중독되면, 뼈가 쉽게 물러지고, 재치기를 하거나 의사가 진맥을 하는 것만으로도 골절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병명인 ‘이따이이따이’는 우리말로 ‘아프다 아프다’란 일본어다. 정말 조그만 몸을 움직여도 통증을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니, 얼마나 아프면 이 병명을 이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바이킹족의 이동과는 곧바로 견줄 수 없으나, 일본의 중금속 오염이 끼친 삶의 상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오염의 폐해가 얼마나 큰 무서움을 초래하는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비록 일본의 사례지만,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1970년대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이들 병에 대한 진단을 정확히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 남해안 마산만에 대한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마산만으로 유입되는 오염원은 주로 마산-창원지역인데, 그 범위는 조그만 하천을 포함하면 539 군데에 달했다.

앞서 본 일본의 사례와 유사하게 우리나라도 70년대~80년대에는 산업활동과 주거생활에 따른 오염원이 거의 무차별적으로 마산만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마산만의 퇴적물에는 중금속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 중금속오염은 70년대 초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0년까지 줄곧 이어졌다(그림 1). 2000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국가 및 지역사회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때 당시 시작된 오염방지에 대한 노력의 결과 지금은 다소 감소된 상태다. 최근 방송자료에 의하면, 공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슬러지 등을 줄인 효과로 마산만에 사라졌던 수생식물 잘피가 돌아오고 있다고 보고되었다(2020.6월 KBS보도). 같은 공업지대라 할 수 있는 창원시는 대기오염 때문에 상시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그 폐해의 경각심을 깨달은 결과,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그에 따른 개선의 조짐도 보이면서 관련된 해양환경도 개선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마산만의 경우처럼 육지환경과 해양환경을 각각 분리시켜 다룰 수 없고, 환경악화를 유발함에 있어 우리 인간의 간섭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기환경과 육상환경, 해양환경 부문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무엇보다 환경을 중시하는 새로운 삶의 자각과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그림 . 마산만 퇴적물에 대한 중금속 농도 조사 결과 (조 등, 2015). 대표적 중금속 종은 197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0년 초까지 이어진다. 

환경에 이상이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는 자연이 만들어낸 환경변화와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변화가 중첩됨으로써 환경악화를 한층 더 상승시킨다. 앞서 말한 자연환경과 인간기인 환경오염이 합쳐진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환경변화가 그렇다고 본다. 작년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미세먼지 문제가 그렇고, 바로 며칠 전부터 퍼붓고 있는 기록적인 강우도 그렇다. 전체 변화 중 자연적인 영향이 큰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영향이 큰지, 핵심은 그 기여도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런 환경변화에서 우리 인간의 영향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으로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밖에 없다. 그런즉 청정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명심하고 또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제주도, 문제는 환경이다!’란 이 거창한 주제로 총론을 포함해 제주도의 바다환경, 육상환경, 그리고 대기환경에 대해 살폈다.

비록 좁은 지면이지만, 지난 두 달 반에 걸친 연재기간 동안, 칼럼을 읽은 일부 독자로부터 유익한 지적도 받았다. 칼럼 내용과 사실관계가 조금 다르다는 얘기였다. 연재를 마치는 에필로그인만큼, 지적한 내용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첫째, 이 칼럼의 총설에서 다룬 괭생이모자반에 관한 내용이다. 칼럼에서 필자는 제주도를 엄습하고 있는 달갑지 않은 손님 ‘괭생이모자반’을 전혀 쓸모없고 제주도의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만 주목했다. 그러나 독자가 보낸 제보에 의하면, 이 괭생이모자반이 전혀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괭생이모자반을 수거하여 미생물에 의해 제염(탈염)을 한 후 친환경 퇴비를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화학비료가 아닌 친환경비료는 꽤 인기가 있어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하니, 그 덕분에 최근 회자되는 친환경 4차 산업을 실천하는 기업을 견학하는 부수적인 영광도 경험할 수 있었다. 둘째, 제주도 육지환경에 관한 칼럼에서 언급한 올레길에 관한 내용이다.

필자는 제주도에 올레길을 25개 코스로 언급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다고 알려줬다. 최종적으로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확인해 본 결과 2010년에는 16개 코스, 2018년에는 21개 코스 등으로 확인되었다. 출발 시점에 따라 코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현재는 총 제주올레는 26개 코스로 운영 중이다.

여하튼 괭생이모자반이나 올레길 코스처럼 환경관련 칼럼을 쓰면서 더욱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거운 책무감도 갖게 되었다.  

제주도라는 지역에 국한하더라고 청정 제주도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넘치고 넘친다.

총 다섯 차례에 걸친 연재를 통해 편의상 바다, 육지, 대기로 나눠 살폈지만 아쉬움이 많다. 이런 제한된 범주를 떠나 좀 더 자세하고 객관적이며, 주의 깊은 관찰과 더불어 다뤄야 할 부분도 많다는 것을 자인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제주도의 농업과 관련된 환경, 제주도의 지하수와 관련된 환경, 관광객 입도에 의한 생활환경 변화 등등이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런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게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중에서도 각별한 주목이 요구되는 부분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양자강 담수에 의한 제주도 연안의 피해, 앞서 언급한 괭생이모자반 문제, 여름철에 자주 등장하는 해파리 떼, 대기오염과 식생변화 등... 이런 이슈는 지속가능한 청정제주를 위해 무작정 미뤄둘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이다. 

한편, ‘제주도, 문제는 환경이다!’라는 주제로 연재하면서 각각의 주제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었다. 다만, 그 각각의 주제들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거듭 언급했다. 왜냐하면 각각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어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제주도의 핵심적 문제이자 제주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제주도를 둘러싼 자연계의 중심에 환경이 자리한다는 것을 줄곧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말하면, 어디에 있든 우리 인간의 삶에서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얘기다.

인류의 크고 작은 발전을 통해서도, 제주도를 떠나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에 발전에 있어서도,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공간은 살고 있는 환경과 그 영역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한 분명한 것은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이 물리력으로 공유하는 곳에 무리한 힘을 가하면 그 토대가 되는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 탓이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도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인간의 몫이다. 자연환경으로부터 무한한 혜택을 숨을 거둘 때까지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의 책임 또한 무한하고 지속적인 책무로 받아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삶의 가치도 있고, 제주도 역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제주도의 환경에 대해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우리는 물론 우리 다음세대도 지속적으로 대물림하며 살아가야 할 공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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