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N인물](3)"전자통신연구소 초빙과학자로 귀국...지난해 정년퇴직"
[뉴스N인물](3)"전자통신연구소 초빙과학자로 귀국...지난해 정년퇴직"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0.01.07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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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주 박사의 미국 유학시절 돌아보며 쓴 자서

(3편 계속)

◇ 캠퍼스 밖의 경험

오병주 박사
오병주 박사

아내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 6개월간 유태인 부부의사 집에서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며 그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방식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집에 6학년 아들과 2살 난 딸이 있었는데, 아들에게는 방학에 마이크로프로세서 조립 교육을 시켰다.

딸아이를 지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딸이 집에서 놀다가 어떤 요청이나 어려움을 호소하면, 엄마는 바로 들어주지 않고 유도 질문을 해가며, 애가 스스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가도록 섬세하게 이끌어 주었다.

그 후 한 달은 한인식당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기도 하였다.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시내 종합병원 산부인과에 등록을 하고 주기적으로 진찰을 했는데, 출산이 한 달쯤 남았을 때, 해산의 고통을 줄일 목적으로 주말 저녁마다 부부들을 함께 모아 호흡법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 교육의 마지막 주에는 훈련을 받는 부부들을 남편그룹과 아내그룹으로 나눠놓고는,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알아들을 때가 되면 제일 강조해주고 싶은 주제를 순위대로 말해보라고 한다. 나는 뭐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서슴없이 하나씩 말한다.

용기, 성실, 정직 등. 그런데 나중에 종합해 보니 남편그룹에서 정직이 일 순위, 아내그룹에서도 정직이 일 순위로 뽑혔다.

당시 부부들은 스키강사, 교사, 가게주인, 직장인 등 30세 내외의 보통 시민들이었다. 미국인들이 정직을 얼마나 강조하는지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알버커키에는 한인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처음에는 한인교회에 나가다가 나중에는 미국인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신앙생활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 기독교가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를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현지 기독교를 좀 더 알고 싶고, 또한 미국인들과 더 깊은 교제의 기회를 갖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같이 성경공부를 하고, 소풍가고, 가정심방도 하면서 그들의 신실한 신앙생활을 알 수 있었다.

◇ 온 가족이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84년 5월이었다고 생각된다. 삼 개월이나 되는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므로, 달라스에 살고 있는 누나 집에 다녀오리라 생각하여 자동차를 점검하였다. 엔진과 각종 오일을 점검하고 앞 타이어도 갈았다. 뒤 타이어는 조금 더 사용해도 될듯하여, 마침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터라 교체를 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아내와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태우고 I-40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밤새껏 달려서 아침 10시쯤 누나 집에 도착했다. 거리로는 600마일(1000킬로) 가량 되는 거리이다. 며칠 지내고 누나 집에 머무시던 어머님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70마일로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찌지직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핸들로 방향조절이 되지 않더니 다리난간 왼쪽과 오른쪽에 순차적으로 부딪친 후 180도 회전하여 역 방향으로 정지하였다. 뒤 타이어가 갈가리 찢어져 타이어 휠만 남았고, 차 앞의 범퍼 모서리가 크게 망가져 냉각수가 새어 나왔다. 마침 다리 아래에는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줄지어 서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천만다행으로 모두가 안전벨트를 매어 무사했는데, 어머님만 가슴에 충격이 좀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깊은 절망감이 몰려들었다.

달라스에서 400킬로, 알버커키까지는 600킬로가 남은 중간지점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경찰이 와서 크게 다친 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인근 정비소로 차를 견인해갔다.

차가 다 부서진 줄 알았는데, 터진 타이어를 갈아 끼고 앞 범퍼 망가진 데를 조금 펴니 다행히 네 바퀴는 굴러갈 수 있었고, 엔진도 잘 돌아갔다.

차가 74년 형 8기통 Chevrolet Nova였는데 차체가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져, 큰 충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차들은 연비를 별로 따지지 않고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사고 난 차를 타고 천천히 운전하여 달라스로 돌아가서, 어머님과 아기는 놔두고, 나와 아내만 사고 난 차를 느린 속도로 운전하여 알버커키까지 돌아오니 20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위험성이 있는 일에 설마 괜찮겠지, 조금 아끼자 하다가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 초빙과학자로 귀국을 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취업할까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한국을 위해 일하자는 생각으로, 초빙과학자로서 주거와 이사 비용을 지원받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취직하여 귀국하게 되었다.

전자통신연구소는 ’80년대부터 20~30년간 우리나라 반도체와 통신 분야 기술을 이끌었고, 당시 연구소에 근무했던 네 분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연구소에서 자동화분야를 3년 반 연구하다 한남대학교로 옮겨, ‘19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아내도 박사학위를 마친 후 달라스 소재 베일러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고 귀국하여, 환경부, 석유품질관리원 연구실장 등을 거쳐 특허청 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작년에 정년퇴직하였다. 

우리 후배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꿈꾸고 있다면

세계 유수의 대학을 선택하여 큰 꿈을 갖고 도전해보기를

 ◇ 글을 마치면서

고향을 떠나 20, 30대에 좌충우돌하며 시련을 겪었고 또 보람도 있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며 국내 대학의 제반환경도 세계적 수준이 되어, 오히려 외국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국내로 유학을 오고 있어, 해외유학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후배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꿈꾸고 있다면 세계 유수의 대학을 선택하여 큰 꿈을 갖고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젊은 시절에 나는 꿈을 좇아, 일에 쫓겨 또 철이 덜 들어, 삶의 여유와 의미, 가족과 이웃, 국가에 대한 고마움 등을 놓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내 가족과 이웃, 자연을 사랑하며 사는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깨닫는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성경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역대상 29:12)'

프로필
1972년에 세화고등학교 17회로 졸업하고, 부산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여, 1976년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하고, 1981년 8월부터 1988년도까지 미국 뉴멕시코대 전기공학과에서 공학석사,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1992년부터 2019년까지 한남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워싱턴대학 방문교수로 1년, 하와이 열방대에서 반년을 지냈다. 현재 명예교수로서 기술자문, 인공지능 강의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오병주 박사님의 파란만장했던 미국 유학시절을 돌아보며 쓴 글을 게재하게 해주신 박사님의 호의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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