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의 아침 노트]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이만수 감독의 아침 노트]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3.02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이만수 감독 (우)
최선행 의사(좌)와 이만수 감독 (우)

2023년 2월 23일 라오스 시간은 2월 24일 자정이 넘은 시간 라오스 공항에 내렸다. 라오스라는 나라도 몰랐던 내게 이제 라오스는 익숙한 곳이 되었다.

대구에서 자란 내게 삼성라이온즈는 당연한 나의 팀이였고 40대 이상의 대구 사람들에게 이만수란 존재는 삼성라이온즈보다 저 강력한 야구 아이콘이였다.

어린시절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외치던 4번 타자 이만수와 라오스란 나라에서 40년 뒤에 함께 할 거라는 상상은 당시는 전혀 하지 못했다. 

이번이 3번째 라오스 방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고 했으나 내게 라오스는 오로지 야구만 있더라. 밤늦게 도착해 숙소로 이동하고 아침 6시 조식 먹고 7시에 숙소를 나와 야구장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넘어야 숙소로 돌아온다. 그 뒤에 밥을 먹었는지 무었을 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차 적응 보다 힘든 날씨 부적응에 그 피로함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지난 두 번의 경험으로 7시에 야구장으로 출발했다. 첫해는 야구장이 없어 공설 운동장에서 시합 했고 7시에 도착에서 전날 밤 산책하러 온 강아지 변을 치우는 것이 첫 번째 일과였다. 이만수와 개똥 줍고 있을줄이야. 세상은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하면서 개똥을 줍던 2019년의 기억이 지나갔다.

개똥을 줍던 이만수는 석회가루로 야구장 선긋기를 직접 했다. 초등학교 때 보았던 이름 모를 기계에 흰가루를 넣고 예쁘게 선을 긋고 있었다. 그 때 “한국으로 갈래”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은 라오스 야구대회였지만 사회인 야구 수준의 시합이였고 도무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랬지만 2020년 나는 또 라오스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코로나만 아니였다면 2021년 2022년도 그랬을 것이다.

2023년 2월 24일 DGB 라오스 야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과거의 찌질했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020년 갓 지어졌던 야구장이 제법 모습을 갖추었고 관리도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이만수 감독 (우)
최선행 의사(좌)와 이만수 감독 (우)

1회 국제대회 개최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싶은 정도의 준비된 구장, 진행 요원들 이미 도착해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 선수들.. 4년 전 야구장에 왔을 때 라오스 아이들 학교 시험이 있어 준비 요원이 없어 물품 넣어둔 방의 열쇠가 없어 난감했던 그 때는 이미 추억속 이야기였다.

본부 건물도 전보다 정비가 되었고 전광판도 있었다. 투수 불펜 등 있을 건 다 있는 라오스 구장을 보면서 “이만수 깡다구 대단하구나” 란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돈이 많으시면 라오스 야구장 짓는데 쓰지 말고 노후나 편안하게 지내시라는 시건방진 조언을 몇 년전에 드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왜 그렇게 야구장을 짓고 싶어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야구라는 시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이 필요했구나....

  일정대회 대회 첫 시합인 라오스와 베트남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야구장을 둘러보며 첫 번째 감동 후 바로 두 번째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 라오스 선수들이 못 본 사이 엄청 성장해 있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 느껴졌다.

여러분들의 지도자 분들,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의 노력이 선수들의 몸에서 느껴졌다. “야구 좀 하는데~”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즐겁게 공놀이 하는 모습.. “우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또 한가지 더 놀란 것은 선수들, 진행 요원들의 한국어가 상당히 늘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아이들과 지금의 이 친구들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3일간의 시합이 모두 끝났다. 결승전은 라오스와 태국이 치뤘고 라오스가 패했다. 예선 때 보다 많이 긴장해 실력 발휘를 다 못한 게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라오스에서 열린 첫 국제대회를 이 친구들은 무사히 마쳤다. 

이번 대회에서는 인하대 스포츠과학과 장은욱 교수와 정연찬 트레이너가 재능기부로 시합에 참여해 주셔서 부상자 및 시합 전 후 선수 관리를 해 주셨다.

얼떨결에 대회 팀닥터라는 자리는 얻었지만 실제적으로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 컸다. 그래도 대회에 의사가 참여한다는 것에 말그대로 의미를 두고 덥석 라오스에 온 것이 많이 미안했다. 

의사의 역할 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야구팬으로 어릴 적 아빠 손잡고 야구장 갔던 그 기억이 나에게는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야구란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친구, 기쁠 때 기쁨을 함께 해 준 친구다.

저 아이들에게도 야구가 좋은 기억이기를... 이런 야구의 역사적인 현장에 아이들이 함께 했다는 경험이 아이들의 인생에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땀 흘리며 함께 할 수 있는 3박 4일이 한국에 돌아와 찌든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된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도 라오스뿐만 아니라 힘들 때는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80이 넘은 아버지는 본인이 무슨 일은 하셨는지 아실까? 내 아버지에게 너무나 감사한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리판단 못하던 시절에 대구시민 구장에 데리고 가셔서 “만수바보”를 “플레이 플레이 이만수”를 외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만수 아저씨의 더 많은 꿈들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다. 그리고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야구를 즐기고 싶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자리가 어떤 보약보다 힘을 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관중석의 라오스의 어린 꼬마가 40년 뒤에 이번 대회를 추억하며 다른 누군가에게 기쁨을 나누는 날이 올 수 있길 꿈꿔본다.

( 이 글은 팀 닥터인 최선행 의사가 작성한 글입니다 )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