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족 사연] "봄이 오면 동백은 꽃을 피우고 역사의 숨결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것"
[4.3유족 사연] "봄이 오면 동백은 꽃을 피우고 역사의 숨결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것"
  • 김진숙 기자
  • 승인 2022.04.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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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배우 현장 육성 대사(연극)
연극배우 박정자 육성 대사 중
연극배우 박정자 육성 대사 중

◆유족사연

#01 며칠 전,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동생 원희가 드디어 4.3희생자로 결정되고 할아버지도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02(특별히 마련된 동생 자리로 이동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제 동생과 할아버지도 함께 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03(의자에 마련된 아기 옷 스다듬으며,)

“내 동생 원희야, 이제 위패봉안실을 가면 너를 볼 수 있겠구나

이제 아프지도 말고 굶지도 말고 편안히 지내거라.”

#04(일어서서 하늘 우러르며)

“할아버지~ 이젠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무죄판결이 났대요.

할아버지 명예회복이 됐습니다.

이제 행방불명된 아버지만 찾으면 다 됩니다.”

#05(눈물 머금고 관객들께 인사드리며)

[Narr.#02] 사전 녹음-박정자 배우

(배우:객석 앞 위치에서 무대 중앙으로 퇴장, 뒷모습 연출)

오늘은 저에게 참으로 따사로운 봄날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명예를 회복해야 할 유족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희생자까지 명예를 회복하는 그날

따스한 봄이 오면 동백은 꽃을 피우고 역사의 숨결 속에서 영원히지지 않을 겁니다.

박정자 배우
박정자 배우

◆유족사연

시나리오

[Narr.#01] 현장음성-박정자 배우

저는 4.3으로 제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다.

토벌대에 연행되어 지금도 소식을 알 길 없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모진 고문 속에 목포형무소로 이송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 주정 공장에 잡혀간 어머니와 한 살 배기 젖먹이 내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고파 우는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매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3살 때까지 걷지도 못하다 세상을 떴습니다.

4.3은 화목했던 우리 가족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6살의 저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제 마음 속 더 큰 피해자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아들인 제 아버지를, 어머니는 아들인 제 동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엄마 품에서 떠난 손주를 아무도 모르게 직접 묻고, 아픈 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정공장에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구타를 당한 어머니는 아픔과 한을 품은 채 사시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치매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품에서 떠난 어린 아들의 기억만은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도망가라 아가야, 어서 도망가, 저 대나무밭 속으로, 담 너머 어서 숨어라.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불구덩이 속에서 어린 제 동생을 구하고 계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가여워 출생 신고도 하지 못한 그 아들 말입니다.

양지은 가수
양지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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