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문봉순 작가의 ‘은퇴 해녀의 불면증’
[신간]문봉순 작가의 ‘은퇴 해녀의 불면증’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1.26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문봉순, 사진 박정근 / 170*240mm / 272쪽 / 20,000원 / 979-11-6867-007-5[03380] / 한그루 / 2022. 1. 27.
‘은퇴 해녀의 불면증’....글 문봉순, 사진 박정근 / 170*240mm / 272쪽 / 20,000원 / 979-11-6867-007-5[03380] / 한그루 / 2022. 1. 27.
‘은퇴 해녀의 불면증’....글 문봉순, 사진 박정근 / 170*240mm / 272쪽 / 20,000원 / 979-11-6867-007-5[03380] / 한그루 / 2022. 1. 27.

바다밭을 일구며 물숨의 삶을 건너온 해녀할망들의 이야기

어느 날, 80대의 은퇴 해녀가 불면증을 호소하며 굿을 청했다. 심방(제주의 무격)들은 그 원인을 선앙이나 일월조상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 굿을 보던 한 젊은 연구자는 거기에 숨겨진 다른 원인을 더듬어 보았다. ‘할머니의 불면증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제주 여성이기에 강요당한 무엇과 닿아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몸이 아파 바다에도 들지 못하는 늙은 해녀할망이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채 내뱉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마음의 병이 되었다는 걸 짐작하게 된 순간부터 말이다.

“은퇴 해녀의 불면증”은 저자가 굿청에서 우연히 만난 은퇴 해녀처럼, 온 생을 바다에 뛰어들어 가족에게 바쳤던 해녀할망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사연을 묻고 듣고 기록한 책이다. 각각의 개인사를 말하지만 그 이야기는 근대 제주의 모습과 마을의 원풍경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고, 마침내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부에서는 제주의 부속섬인 우도 해녀 11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해녀가 된 과정과 물질 작업, 출가 물질 등을 통해 해녀로서의 일생을 들려주고, 그 삶으로 이룬 것과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한다. 2부에서는 제주의 동쪽 마을 해녀 8명의 인터뷰를 통해 해녀 공동체의 신앙을 살펴보았다. 3부에서는 해녀들이 삶을 바친 바다밭, 그중에서도 온평리 바다밭을 통해 해녀할망들이 보낸 세월만큼이나 변해버린 바다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책에는 제주해녀이기에 겪어야 했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며 물숨의 세월을 건너온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늙어버린 바다를 보며 한숨을 짓는다. 저자는 존경과 애정을 담아 이 책을 불면증의 처방전으로 내놓고 있다. 박정근 작가의 영혼 어린 사진도 힘을 더한다.

이 책은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2021년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발간되었다.

■ 저자 소개

글 문봉순

경남 진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다가 굿 공부를 하겠다고 제주도로 왔지만, 정작 공부는 않고 사람들과 잘 노는 궁리를 하며 신당과 제주굿, 무형문화재를 주제로 전시, 축제, 강좌 등을 진행했다. 요즘은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듣는 일을 제일 큰 재미로 삼고 있다. 어머니, 할머니, 동네 삼춘까지 모두가 연결된 여성들의 연대와 그 연대 안에서 전달되는 삶의 지혜와 생존기술을 발견하는 것. 오늘의 자파리이자 숙제이다.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2006-2013),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09-2016), 제주문화예술재단 무형문화유산팀 팀장(2017-2018)을 거쳐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19-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신당조사: 제주시·서귀포시편》(2008-2009)와 《제주해녀문화총서》 발간 사업(2019, 2021)의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논문으로 〈제주심방의 입무의례 연구〉(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05)가 있다.

사진 박정근

바다가 없는 내륙의 깊은 산골에서 나고 자란 사진가다. 밀물지는 파도에 이끌리듯 제주섬으로 들어와 카메라를 든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앵글에 잡히는 아름다운 풍광의 실루엣 너머에 있는 해녀, 4·3, 굿 등을 만나며 제주의 내밀한 사연을 마주하고 있다. 아직도 제주가 어렵다.

〈엿가락과 담배연기〉(서이갤러리, 2021), 〈입도조〉(KT&G 상상마당, 2019) 등의 개인전과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제주현대미술관, 2020), 〈△, , ○… 무한한 대화〉(고승욱&박정근 2인전, 스페이스22, 2018), 〈dépaysement〉(박정근&전은숙 2인전, EntrepotGallery, 2018),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전(고은사진미술관, 2018) 외 다수의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제주 현대미술관 레지던시(2019-2020), Arts Tasmania Residency(호바트, 호주, 2018),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아 레지던시(2018)에 참여했으며, 2017 10th KT&G SKOPF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 목차

제1부 우도직녀가

며느리가 말려도 물에만 들고 싶은 마음 (비양동 정금주)_22

마흔 넘어 다시 배운 물질 (하우목동 고우혜)_31

일본 가서 찾아온 〈해녀의 노래〉 4절 (동천진동 김춘산)_40

물질 잘하는 것, 그것으로 이름났던 수에꼬 (하고수동 고계모)_48

오동나무에 걸려 가도 오도 못 하는 신세 (상고수동 김을생)_56

넙미역 번난지 줍고, 물질해서 오 남매 공부시킨 어머니 (영일동 양순자)_64

삼불도조상에 정성 들여 지킨 가족 (중앙동 송선옥)_72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강관순과 〈해녀의 노래〉 (전흘동 강길여)_80

남편 없어도 시부모님, 어머님 병간호하며 살아온 22년 (서천진동 김용산)_89

남편은 잠수배 선장, 나는 해녀로 다녀온 육지 물질 (주흥동 한연옥)_97

풍선에 실어온 대마도 삼나무로 지은 100년 역사의 집 (삼양동 고매화)_106

제2부 바다에 바친 삶과 신앙

물질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시집온 조천 (조천리 김영자)_116

무엇보다 힘든 천초 작업 (김녕리 강창화)_130

썰물은 동드레 가고 들물은 서드레 오주 (행원리 장군열)_150

새로 시작하는 해녀들을 챙기는 것도 우리의 일 (한동리 허춘자)_164

해녀 목숨 구하고, 병을 얻어 돌아온 육지물질 (평대리 신승희)_177

다시 일어서게 한 친정어머니의 욕바가지 (평대리 김옥선)_191

센 물에도 뛰어들던 세화 해녀특공대 (세화리 이복녀)_206

7개 동네별로 소라 잡는 하도리 (하도리 임옥희)_217

제3부 해녀보다 빨리 늙는 바다 - 온평리 바다밭

겡이여_231

눌여깍_234

배끄러여_235

홀어멍돌_240

관할망여_241

용머리여_243

용머리 새여_246

고장머흘_249

벌러진여_250

애기죽은날코지_253

여머흘_255

수승코지여_258

거욱게빌레_259

양식장_263

물잔지미_265

■ 책 속에서

p.17

70세 이상의 해녀들은 근대화 이전의 제주 모습을 기억하는 세대이다. 물질을 통해 가정을 일구고 제주 경제를 일으킨 해녀들은 그들의 직업을 선택한 적이 없다. 삶의 고단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가족들의 행복을 보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변화된 세상은 그들에게 뒤늦은 억울함을 안겨주기도 한 것 같다. 이 좋은 세상을 더 누리지 못하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덕택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보람을 찾아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고단한 삶을 뚫고 나온 저마다의 빛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21

제주의 동쪽 바다에 소의 형상으로 떠 있는 섬 속의 섬, 우도.

우도의 직녀들은 대부분 우도에서 태어나 70년 이상을 섬에서 살고 있다. 때로 돈을 벌기 위해 섬을 떠나 멀리 외방으로 떠돌기도 했지만,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직녀의 이야기는 주로 1인칭주인공시점으로 전개되지만 가끔은 3인칭관찰자시점으로 전환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전지적작가시점에서 서술되기도 한다. 나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혼재하기 때문이다. 해녀가 전하는 생생한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통해 우도의 미래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p.115

제주해녀들은 바다라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풍요와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가족의 건강과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한다. 2월의 영등신에게는 영등굿으로, 바다의 용왕님께는 요왕맞이를 통해 기원한다. 또한 바다에서 죽은 고혼들도 잊어버리지 않고 지를 싸서 위로해준다. 정월이 되면 문전제를 통해 집안의 조왕신을 포함한 가신들을 위하고, 본향당 제일에는 당에 가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해녀들의 일상은 이처럼 신앙과 연결되어 하나의 축을 만들어 가고 있다.

p.229

바다밭 인터뷰는 온평리 해녀분 4~5분을 모시고 진행했다. 처음에는 여의 이름이나 지명만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몸으로 기억하는 지식을 말로 정리해서 설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2020년 송명자 해녀가 찍은 영상과 최근 7년 사이에 박정근 작가가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보면서 인터뷰를 다시 진행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해녀분들이 쏟아내는 많은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사이 변해 버린 바다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고, 한창때 물건을 많이 잡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벗들과 함께했던 즐거움과 삶의 고달픔까지 복잡한 감정들과 함께 온평리 바다밭의 모양새와 많이 나는 물건들이 드러났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