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제주, 바람이 걸어오다》
[신간]《제주, 바람이 걸어오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1.08 0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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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민정 외 / 140*195 / 248쪽 / 17,000원 / 979-11-6867-118-8 [03810] / 한그루 / 2023.11.01.
글 권민정 외 / 140*195 / 248쪽 / 17,000원 / 979-11-6867-118-8 [03810] / 한그루 / 2023.11.01.
글 권민정 외 / 140*195 / 248쪽 / 17,000원 / 979-11-6867-118-8 [03810] / 한그루 / 2023.11.01.

11명의 수필가들의 시선에 담긴 제주

《계간수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11명의 글을 담은 테마수필집이다. 제주를 함께 찾은 후, 그 소회를 남긴 기록을 한데 묶었다.

저자들의 고향은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 밖에서 제주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가벼운 여행객을 넘어선다. 제주의 바람을 오롯이 이해하고자 애쓴 흔적이 짙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 앞에서 저마다 속 깊은 곳의 목소리를 건져올린다. 거기서 더 나아가 제주 사람들의 삶을 조심히 들여다보며 숱한 바람과 함께한 그들의 이력을 찬찬히 돌아보기도 한다.

제주를 통해 치유받고 더욱 깊어진 이들의 시선은 단순한 소회와 감상을 넘어선다. 4.3을 비롯한 제주의 아픈 역사 앞에서 숙연해지고,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눈과 귀를 활짝 열기도 한다.

저자들은 제주의 바람 앞에서 저마다의 삶을 위로받는 시간을 보냈고, 그 기록을 남기면서 “제주의 바람이 더 이상 휘몰아치지 말고 상처받은 모든 이를 부드럽게 감싸길, 우리의 글도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 저자 소개

권민정: 수필가, 동시 작가. 저서: 수필집 《은하수를 보러 와요》, 《시간 더하기》.

권태숙: 수필가. 《계간수필》 편집주간. 저서: 수필집 《그녀의 변주곡》.

김경혜: 수필가. 전 월간 《경영과 컴퓨터》 데스크 역임.

김희재: 수필가. 한국어교육 전문가. 저서: 산문집 《죽변기행》, 여행에세이 《끝난 게 아니다》, 브런치북 《고생은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마음이 고플 때 여행을 떠납니다》 외 다수.

박찬정: 수필가, 시인. 저서: 수필집 《목걸이》.

손진숙: 수필가. 저서: 수필집 《신록처럼》, 《향기에 잠기다》.

심규호: 수필가. 저서: 수필집 《부운재》. 저서 및 번역: 《중국문학이론사》, 《낙타상자》 외 70여 권.

이경은: 수필가, 음악극작가. 저서: 수필집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외 4권, 수필작법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 노트》, 포토 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게 빵을 먹는 오후》.

이용옥: 수필가, 문학평론가. 저서: 수필집 《석모도 바람길》.

전용희: 수필가, 소설가.

한혜경: 수필가, 평론가, 명지전문대 교수. 저서: 평론집 《상상의 지도》, 《시선의 각도》 외, 글쓰기 이론서 《생각 글 말 – 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 외, 수필집 《아주 오랫동안》, 《지나고 보니 따뜻했네》(브런치북) 외.

■ 차례

권민정 제주의 색 11 / 4·3 평화공원에서 16 / 팽나무가 있는 연못가 22 / 비양도 27 / 따라비 오름에 올라 31

권태숙 제주 단상 37 / 이제는 너희 차례야 40 / 그때 무모했지만 46 / 제주에 부는 바람 51

김경혜 할머니의 젖은 손 59 / 살아가라, 눈부실 날들이여 64

김희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케렌시아 Querencia 71 / 속 썩은 매화 梅花 79 /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85 / 쇠소깍 91

박찬정 어느 해 늦가을 99 / 제주를 걷다 104

손진숙 탐나라 공화국에 다녀와서 111 / 음식, 제주 115

심규호 고사리 121 / 납읍에서 126 / 제주 사물 四物 136 / 화북동 ‘시가 있는 등대길’ 유감 143

이경은 김녕 바다, 속울음의 꽃이 피다 151 / 바람이 걸어오다 157 /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은 164 / 아부 오름의 숨결 170 / 막연한 불안 174

이용옥 다 좋다 183 / 우공과 선달 188 / 액자 속 두 남자 195 / 꽃이 보고 싶었네 200

전용희 동문시장에서는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207 / 거기 있더라Ⅰ 213 / 거기 있더라Ⅱ 219

한혜경 정원에서 유영하다 227 / 풍경 너머 233 / 순이삼촌과 강정심과 그리고… 237

■ 프롤로그

올해 초 《계간수필》로 등단한 열한 명의 작가들이 바람처럼 제주를 다녀갔다. 그윽한 정원과 상상력이 넘치는 공간을 거쳐 크고 작은 오름과 4·3의 아픈 들녘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성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린 그림 앞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고, 더 갈 곳 없는 바다의 끝에서 누구는 울음을 터뜨리고, 또 누구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서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을 되살려 바람이 걸어오는 제주를 그렸다. 한순간도 세상이 같지 않음을 실감하지만, 그래도 혹시 멈춘 바람이 있으면 좋겠다.

■ 에필로그

우리의 제주 여정은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아픔을 응시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11개의 색채와 모양으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제주의 바람이 더 이상 휘몰아치지 말고

고요히 걸어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어가기를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를 부드럽게 감싸며

살아갈 수 있다고 나직하게 위무하기를

우리의 글도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기를.

제주의 바람과 우리의 바람이 만난다.

■ 책 속에서

제주의 바람은 사람을 부른다. 지인의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편한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의 조그만 학교로 옮겼다. 오랜 친구는 퇴임하고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다가 집을 샀다.

내가 제주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1989년 8월,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맨 먼저, 하늘 속으로 높이 솟은 야자수가 먼 이국에 온 듯 설렘을 주었다. 서울처럼 끈적한 바람이 아닌 훈훈하고 고슬한 바람, 옥빛으로 빛나던 바다, 낯설어 반가운 식물들, 푸근한 오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며 나의 최애 땅이 되었다.

제주에 부는 바람은 그냥 스러지지 않는다. 손짓을 한다, 머얼리 육지를 향해. 제주가 있다고, 제주가 있다고. (56쪽)

오목하게 들어앉은 용소(龍沼)는 끝이 확 터져서 바다로 연결되었다. 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회색의 기암괴석(奇巖怪石)은 먼 산에서부터 따라온 호위병(護衛兵) 같았다. 용소 끝에서는 거대한 몸집의 바다가 다시 들어오려는 양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미친 듯이 몸을 뒤집어 허옇게 포말(泡沫)을 뱉어내며 몸부림쳤다. 끊임없는 바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짙은 에메랄드색 용소는 흔들림 없이 침묵했다. 냉정해 보일 만큼 고요하고 평온했다. 보통 산이 깊은 곳은 바다가 멀고, 파도가 치는 곳에는 계곡이 없기 마련인데 여기는 둘이 공존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오묘한 풍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저녁해가 먼바다로 설핏 넘어가고 있었다. (92-93쪽)

어찌 보면 하찮은 식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생명력을 안다면 그리 말할 수 없다. 제주어에 능통한 임 선생이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 들었다는 말, “고사린 열두 자손이여.”에서 눈치 챌 수 있다시피 고사리는 꺾고 또 꺾어도 끊임없이 자란다. 그래서 ‘열두 형제’ 또는 ‘아홉 형제’라고도 한다는데 혹시 제사상에 고사리가 빠짐없이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닌지 궁금하다. (125쪽)

두 개의 섬에 내 섬을 얹었다.

섬은 고립된 것 같지만, 그 반대로 사방이 틔어 있는 형체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붙드니 어디로든 가지 않고 떠나지 못한다. 제주의 바다가 오키나와에 닿고, 절실한 마음에 대한 절실함이 서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두 섬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착잡해진다. 나의 섬은 어쩌랴. 그 안에 부는 미친바람을, 거세고 거친 바람을, 소리 내지 못하는 무음의 바람을 어느 주머니에 담아야 할까. 아니 어디로 날려 보내야 할는지….

그때 바람이, 불지 않고 걸어왔다. (163쪽)

그렇게 <순이삼촌>을 안 지 44년이 지났다.

그때의 분노와 충격은 당면한 문제들에 밀려 잊혀졌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중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의식 저 아래에 가라앉혔다. 제주에 여러 번 갔어도 가족들, 친구들과의 일정을 소비하기 바빴다.

4·3 특별법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곧 잊었고, 4·3 평화공원이 개관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알고는 있었으나 가 볼 생각을 못 하다가, 최근 문우들과의 여행에서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 돌아가신 이들의 위패들을 모신 위패봉안실, 행방불명된 이들의 표석들이 무딘 내 가슴을 툭툭 쳐댔다. (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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