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한그루 시선 32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
[신간]한그루 시선 32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1.08 0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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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민숙 / 130*205 / 140쪽 / 10,000원 / 979-11-6867-123-2 [03810] / 한그루 / 2023.10.28.
[신간]한그루 시선 32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 표지
[신간]한그루 시선 32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 표지

사랑으로 사람으로 돌아가는 발자국들

한그루 시선 서른두 번째 시집은 양민숙 작가의 신작 시집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이다. 총 5부로 나눠 55편의 시를 묶었다.

현택훈 시인은 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동안 시인은 첫 시집에서 근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시도했고, 두 번째 시집에서는 사람의 운명적 인연에 집중했다.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나’에 대한 물음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시인은 사랑으로 본다. 이번 네 번째 시집을 그 사랑의 완성본으로 본다면,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여정을 걸어온 셈이다.”

시인이 내딛는 발자국들, 그 여정의 끝에 있는 사랑은 얼굴 붉어지는 첫사랑이기도 하고, 노모의 야윈 손을 바라보는 애잔한 사랑이기도 하며, 제주라는 사연 많은 섬에서 상처 입고 스러져간 이들을 그리는 가슴 아픈 애정이기도 하다.

“발자국이 이리저리 놓여 있으면 어떤가. 마침내 그곳에 간다. 가지런한 게 이상하다.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겠지. 힘들어도 발자국을 내자. 이러구러 발걸음을 내딛자. 가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집 안에서라도 이루어질 기대하는 그 사랑 말이다.”라는 현택훈 시인의 발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반을 내딛게 하는 희망의 편지 같은 시집이다.

■ 저자 소개

양민숙

1971년 겨울, 바람의 섬 제주에서 태어나
2004년 「겨울비」 외 2편으로 詩와 인연을 맺고
2009년 시집 『지문을 지우다』 발간
2014년 시집 『간혹 가슴을 연다』 발간
2018년 시집 『한나절, 해에게』 발간
2023년 시집 『우리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는 않아도』 발간
제주문인협회 회원, 한수풀문학회 회원, 제주PEN회원,
운앤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1부 금방 사라질 단어 같아서

15 빛에 대한 짧은 기억 1|17 애기동백|18 테왁|20 가우도|22 침묵의 시|23 61병동|25 파도의 시간|27 이호해수욕장|29 마지막 시집|31 빛에 대한 짧은 기억 3|33 뉘앙스

2부 피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붉고

37 빛에 대한 짧은 기억 2|39 능소화 피는 집|42 아침|43 자귀나무 꽃|45 동백꽃 기다리는 시간|46 천등|48 목련|49 가을 목련|50 광고를 읽다가|51 족두리꽃|53 애창곡

3부 쓰다 보면 번지고 번지다 보면 물드는 것

57 누구나 시인|60 일간지 읽는 봄날|62 낭독회장에서|64 24시 편의점 아침 일곱 시 삼십 분|69 홍시|70 마을병원 아침 여덟 시|72 한낮의 초과|73 썬팅하다|75 빈센트를 읽다|77 허기를 사용하는 남자에 대하여|79 녹나무의 계절

4부 그믓은 그믓을 만들며 퍼졌고

83 귀가|85 건어물 시장에서|87 목련의 시간|88 너에게 가는 길|90 할망물|91 제비들의 합창|92 작아야 산다|93 사라지는 것들|95 부고|96 다시, 폭설|97 주차장에서

5부 신기루 같은 노랑 신호가 떠오르면

101 당올레|103 봄날 마늘밭|104 제주, 해송|105 청소의 철학|107 월령 돌담 위에 노랑 신호가 걸려요|109 가을 벚꽃|110 포도주 숙성되는 것처럼|112 신구간|114 동촌역사|116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117 닮아간다는 것

[발문] 오래된 운명은 사랑이 되고(현택훈 시인)

■ 작가의 말

이미 사라진 것들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것들

낮고 아프고 위태로운 것들

그러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것들

더 늦기 전에

나지막하게 불러봅니다.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 추천사

양민숙 시인의 시편들 속에서 제주 시편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개개의 꽃에 제주에서의 삶의 서사를 투영하거나 제주의 신앙을 통해 “비념의 시간”(「할망물」)을 노래할 때 그 각각의 시는 마치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의 물숨 같아서 애절하고 빛나고 감동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양민숙 시인은 시를 통해 “당신의 언어 안으로 들어”(「월령 돌담 위에 노랑 신호가 걸려요」)가려고 한다. 이 지향은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구현이며 온기의 회복이며 마르고 야위어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라고 하겠다. 나는 이 시편들이 애련(愛憐)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문태준 시인

■ 책 속에서

애기동백

말라붙은 단어가 바스락거린다

가슴팍에 달라붙은 소리

점점 더 빨라지는가

얼굴이 붉어 온다

비로소

당신이 오셨네요

그러나 금방 사라질 단어 같아서

그 이름만 뼈에 묻을 것 같아서

한 잎 한 잎 날려 보내는

휘발시키는 나의 봄,

홍시

홍시를 사다 드릴 때마다

나이 든 사람이나 먹지

단감이나 사 오라던 엄마

병실에서 창밖을 보다가

선선해지니 가을인가 보다

요즘 홍시가 나올 텐데,

혼잣말처럼 하신다

나이가 드는 것은

단단함이 사라지는 것

고깟 홍시가

사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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