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한그루 시선 31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신간]한그루 시선 31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1.08 0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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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표지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표지

사라져가는 언어가 들려주는 융숭한 이야기

한그루 시선 서른한 번째 시집은 김정숙 작가의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이다. 저자의 모어(母語)이자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된 제주어가 시집 가득 들어차 있다.

역시 제주어와 제주의 정서를 창작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강덕환 시인은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태초에 고립의 섬 제주에서 소통의 수단이 되었던 것은 언어가 아니고 말이었을 것이다. 문자 이전부터 말은 존재하였고, 문자를 발명하고 난 후부터 온갖 것을 문자화하려고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주어로 문학하기도 마찬가지다. 제주인의 역사와 정통성이 내포된 제주어를 매개로 하는 특색 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제주어문학이기에 김정숙 시인이야말로 이 일에 가담했다면 중증 환자인 제주말을 치유하는 의사인 셈이다. 그 행위는 당연히 예술의 기원이고, 문자화하여 문학(시)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말을 하지 않거나 표현되지 않으면 죽은 언어다.”

시집에는 제주어만의 말맛이 살아있는 시어가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다.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한 제주어의 특색 또한 잘 살아난다. 다른 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고유명사 또한 시를 따라 소리내어 읽어가다 보면 그만의 리듬과 아름다운 말맛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제주만의 정서와 섬땅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서 제주어의 존재와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시집이다.

■ 저자 소개

김정숙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 『나뭇잎 비문』이 있다.

제주작가회의, 제주시조시인협회, 젊은시조문학회 회원으로 시조를 쓰며

수망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 차례

1부 문득 흰 바람이 불었는데

13 문득 흰 바람이 불었는데|14 구순의 입덧|15 할아버지 판결문|16 멍|17 무사는 무사|18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26 게무로사 별곡|27 시집인데|28 어멍산디 어웍산디|29 아버지의 자리|30 아침바람 찬바람에|32 침 맞고 비 맞아야 큰다

2부 지읒 하나 차이

37 프러포즈|38 이대 족대 왕대 그리고 그 대|40 베롱헌날|41 호모사피엔스 다리 설계도|42 설문대할망|44 놀이의 계보|45 놀이의 계보 2|46 현무암 일가|47 범벅을 아는 당신이라면|48 B형 계절|49 허다 허다|50 밥을 밥으로 보면|52 오몽 예찬|53 지읒 하나 차이

3부 보말보다 맛 좋은 말

57 오|58 합병의 시간|59 감성온도계|60 감성온도계 2|61 말 잃고 사전을 고친들|63 보말보다 맛 좋은 말|64 이왕이 기왕에게|65 양이 진다|66 문자 돋아나는 봄|67 먹는 동사|68 말은 낳아 제주로 보내랬다고|70 비가 쏜다|74 말과의 이별 방식|75 작달비

4부 낭만 가득한 거기

79 빙세기를 아시나요|81 목 놓아 울지 못한 사람들은|말에다 곡을 할까|83 현무암 생각에|85 5·16도로|86 개예감|87 얼굴 값|88 같은 울음 다른 이름에 대하여|89 쿨|90 귀순 삐라 고장섶 삐라|92 꼬꼬댁 꼬꼬댁 꼬꼬정책|93 눈빛 바코드

[발문] 시인은 지역의 말과 소리로 그 정서를 표현하는 숙명적인 존재_강덕환(시인)

■ 작가의 말

목젖 아래 가라앉아 있는 말입니다

뱃속에서부터 터득한 말입니다

북받칠 때

겨를 없을 때

불쑥불쑥 솟구치는 말들을

팽팽한 가을 수평선 위로

몇 자 올려놓습니다

■ 책 속에서

놀이의 계보

할아버지 어려서 배튈락하며 놀았고

아버지는 어려서 줄넘기하며 놀았고

아들은 어른 돼서도 게임을 즐기지요

튈락 배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만드셨고

넘기 줄은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주셨고

게임은 아들 혼자서 골라가며 사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락樂이 줄을 넘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 손뼉이 쏠리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돈이 오고 가지요

보말보다 맛 좋은 말

우리가 까먹은 말이 나뒹굴고 있네요

가난 겨우 빠져나간 갯가 바위틈에

밤고등 먹보말, 눈알고둥 문다데기, 두드럭고둥 메옹이, 팽이고둥 수두리보말

고소한 말 쌉싸롬한 말 메코롬한 말 담백한 말 백중날 저녁이면 삶은 고둥 양푼에 매달려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들은 말 옮기며 보말죽 보말칼국수 소문 자자한데 깐 보말 얼른 내밀며

“나 강생이 이래오라”

할머니 이 한마디면 난 별이 되고도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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