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김은순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선정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김은순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선정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4.0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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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부문 하상복 「칼라스의 전사 - 관용의 사상가, 볼테르」 선정...장편소설 부문은 당선작 내지 못해
시 부문 김은순 수상자, 논픽션 부문 하상복 수상자
시 부문 김은순 수상자, 논픽션 부문 하상복 수상자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4·3문학상) 당선작이 결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임철우)는 지난 4월 1일 본심사를 통해 시 부문 김은순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논픽션 부문 하상복의 「칼라스의 전사-관용의 사상가, 볼테르」를 제12회 4·3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장편소설 부문은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4·3문학상을 주관하고 있는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김종민)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전국 공모를 진행한 결과 국내외에서 303명이 2,002편(시 1,880편, 장편소설 115편, 논픽션 7편)이 접수됐다.

시 부문 당선작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는 작가의 <마고할미의 눈물> 연작시의 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단은 당선작에 대해 “ ‘한날한시 엉켜버린 죽음’에 대한 애가이자, ‘죽음의 언덕을 밟고’오는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현재성과 더불어 절제되고 내밀한 언어가 진정성을 느끼게 하며, 향토적 색채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의미망을 넓혀가는 시의 전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논픽션 당선작 「칼라스의 전사-관용의 사상가, 볼테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칼라스 사건과 관련한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비판적 실천을 주목한 평전적 성격의 논픽션이다.

심사위원단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대화식 구성, 계몽사상의 현실적 개입을 보이는 볼테르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유려한 문장력 등 이 작품은 세계 지성사에서 알려진 칼라스 사건의 전모를 치밀한 학술적 논거를 통해 재구성한바,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서 논픽션의 지평을 심화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4·3평화문학상이 전 지구적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심화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4·3문학상은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2012년 3월에 제정했다. 2015년부터 제주4‧3평화재단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으며 상금은 9천만원(장편소설 5천만원, 시 2천만원, 논픽션 2천만원)이다.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김 은 순

한때 항아리는 걸어 다니는 종족이었다
무릎이 녹고 발목이 녹고 급기야
발자국이 녹아 대숲 아래 살게 되었다

항아리엔 말라붙은 말보다
말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대숲이 컹컹 짖는 말들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한날한시 엉켜버린 죽음을 바라봤다
죽음은 죽어서도 만나지 못했다

아직 거두지 못한 숨이 있다고
성글게 덮은 흙을 들썩거렸다
돌담 밑의 수선화의 피가 더 솟아도
수평선이 조금 더 눈금을 올려도
사월은 항아리 같아서
죽은 꽃나무 같아서

한때 돌이었고 흙이었던 노래로
돌아가고 싶었다
축축하고 서늘한 골짜기로 돌아가고 싶었다
저 꽃피는 자두나무 그늘이 시들기 전에

대숲은 돌이 된 사람과 새가 된 사람과
바람이 된 사람을 켜는 마고할미의 악기
혹은 죽음으로 가려운데 말을 긁어도
피 흘리지 않는 항아리의 목소리였다

돌아올 길도 없는데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노래하는 죽음의 언덕을 밟고 온다
거기 온몸에 촛불을 켜는 나무가 있다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명의 작품 100편이 심사 대상이다. 겉으로는, 자신의 작품에 쏟은 모든 응모자의 열정과 역량이 훌륭해 보였지만, 구체적인 심사 과정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점들도 발견되었다. 먼저 그러한 점을 두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하나는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 있는 증언 내용을 옮긴 듯한 작품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제주 4・3과 관련된 소재들이 시를 시일 수 있게 하는 중심구조인 리듬, 은유, 이미지, 상징, 상상력 등으로부터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생경한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판단된다.

다른 하나는 76년 전에 벌어진 제주 4・3을 역사적 사실로만 파악하고 그것을 시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데는 소홀한 작품들, 즉 산문시를 쓰지 않고 시적 산문을 쓴 작품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과 연이 구분되는 것만으로 자유시가 될 수 없듯이 단락별로 전개되는 것만으로 산문시가 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적 산문은 말 그대로 시적 느낌을 주는 산문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을 여러 번 정독한 심사위원들이 한데 모여 장시간 동안 논의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바람의 독백」은 바람이 일깨우는 4・3의 아픔을 토로하고 있는 정교한 작품이다. 작자는 이미지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비유를 효과적으로 구사한다. 어조를 조성하는 기교 또한 능숙하다. 하지만 이 작품과 작자의 다른 작품들 사이에 놓인 현저한 수준 차를 간과할 수 없었다.

「비설」은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곳곳에는 부적절한 관념어와 비유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시적 장치가 언어의 표현적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사용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산문시 작품인 「애기 무덤의 노래」에서 작자는 섬의 풍경(첫째 단락)과 4・3의 아픔(둘째 단락)을 그리고 있는데, 그 표현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섬’이 무려 열아홉 번이나 수식되고 있는 점은, 이 작품 온통이 나열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많다.

「이동의 방식」과 「할머니의 바다」의 작자는 동일하다. 전자에서는 은유와 상징이, 그리고 후자에서는 생동하는 리듬이 각각 눈에 띈다. 두 작품은 주제를 내면화하는 방식도 참신하다. 하지만 「바람의 독백」에서와 같은 이유로 논의의 최종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종 단계까지 논의된 작품으로는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가 유일했다. <마고할미의 눈물> 연작시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한날한시 엉켜버린 죽음”에 대한 애가이자, “죽음의 언덕을 밟고”오는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무릎이 녹고 발목이 녹”아 대숲에 방치된 ‘항아리’라는 매개 혹은 상징을 통해 ‘말하지 못한 말’을 아프게 불러냄으로써, 4・3이 “온몸으로 촛불을 켜는 나무”가 되는 현재성을 획득한다. 절제되고 내밀한 언어가 진정성을 느끼게 하며, 향토적 색채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의미망을 넓혀가는 시의 전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알다시피,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재현된 세계 사이에는 불가피한 분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분열의 최소화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때 상상력은 시인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상상력으로 4・3의 아픔을 환기한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에는 신화와 상징도 함께 작동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여기에서 평화와 인권으로 가는 길목을 찾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한 이유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아울러 4・3정신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 공모에 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심사위원: 김병택, 박철, 김해자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과정은 어떤 심사보다도 커다란 책임감과 함께 소중한 기대를 지니게 만든 시간이었다. 올해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본심은 예심을 통과한 일곱 편의 장편소설을 숙독하는 과정을 거쳐 2024년 4월 1일 오후에 진행됐다.

심사는 제주4·3이 상징하는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이라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더불어 소설작품으로서의 문학적 완성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곧 제주4·3이라는 참담한 역사적 비극의 문학적 승화를 가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울러 10년 넘게 축적돼 온 기수상작이 도달한 문학적 성취도 수상작 선정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 언급됐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올해의 수상작 후보로 논의됐다.

「그날이 오면」은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심훈(본명: 심대섭, 1901~1936)의 삼남 심재호의 시점으로 심훈 사후 한국전쟁 시기에 헤어진 심훈 가족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주된 스토리로 등장한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귀한 내용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수기나 논픽션에 해당하는 글이다. 다른 기회나 형식을 통해 이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글이 소개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싸락눈」은 제주4·3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흥미로운 소재를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만드는 응모자의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라산의 자연과 풍광, 식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소설의 형식과 구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간과하지 못할 한계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얘기가 미적 절제 없이 서술되다 보니, 한 편의 소설이 갖추어야 할 형식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크게 보였다.

「쥬시」는 제주4·3 때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생명력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겪은 후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할머니와 엄마의 힘겨운 스토리를 주인공이 알게 된다는 게 이 작품의 주된 스토리다. 제주4·3의 깊은 상처가 2세대, 3세대에게도 이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서술돼 있다. 하지만 스토리의 절박함에 비해 서사의 구성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점, 문장과 언어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제목 역시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가슴 시린 슬픔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끝남의 세계」는 일제 말 일본인 부인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 이색적인 스토리의 작품이다. 당시의 문화적 풍속과 정보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과 공부를 역력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소재의 흥미진진함에 비해, 스토리를 구성하는 힘과 서술의 밀도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소설의 완성도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작품이다. 이번 심사과정에서 스토리의 흥미와 문제적 성격에 비해, 그 스토리를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드는 소설 구성의 치밀함과 서술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응모작들이 많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들을 놓고 고심 끝에 올해 제주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의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결정은 모든 인생을 걸고 제주4·3이라는 미증유의 역사적 상처를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하고 일구어 온 제주문학의 전통에 대한 경외심이자 그동안 여러 문제작을 낳은 제주4·3평화문학상에 대한 각별한 존중에서 비롯되었음을 이곳에 밝혀둔다.

- 심사위원: 황석영, 한창훈, 권성우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 프로필

김은순 당선자
김은순 시 부문 당선자

△성  명   김은순
△응모 부문   시
△성  별  여
△출생 연도 1957년

〇 출생 : 1957년 대전광역시... 현재 청주에서 활동중
〇 딩아돌하문예원 운영위원
〇 용인문학회 회원
〇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〇 사진작가로 활동 중
〇 수상내역
   - 2017 제4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대상
   - 2020 포항소재문학상 대상
   - 2021 제3회 내성천 문학상 대상
   - 2023 제6회 약천 남구만 신인문학상 당선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프로필

하상복 당선작
하상복 논픽션 부문 당선자

△성  명 하상복
△응모 부문 논픽션
△성  별 남
△출생 연도 1966년
〇 출생 : 1966년 서울 마포
〇 서강대학교에 입학해 정치학, 사회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격동의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낸 뒤 유학을 떠나 브뤼셀자유대학에서 철학을, 파리9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2004년 가을부터 목포대학교 정치언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등한 사회, 연대하는 공동체의 꿈을 학생,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해 가고 있다.

〇 2015년부터 지역시민사회와 <목포시민학교>를 운영하면서 좋은 사회를 위한 교육적 실천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근대와 상징,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다.

〇 지은 책
   - <야누스로 그려진 근대: 근대와 주체의 지성사>(2023)
   - <권력의 탄생: 새로운 대통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19)
   - <이미지>(2017)
   - <죽은 자의 정치학: 프랑스, 미국, 한국 국립묘지의 탄생과 진화>(2014)
   - <광화문과 정치권력>(2010)
   - <빵떼옹: 성당에서 프랑스 공화국 묘지로>(2007) 등

〇 논문
   - 「문학의 정치성과 새로운 주체의 상상: 파리꼼뮌과 빅토르 위고, 제주4.3과 현기영의 경우」(2020)
   - 「한국의 민주화와 부마민주항쟁」(2019)
   - 「세월호참사와 한국사회」(201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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