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미움의 질량
[신간]미움의 질량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1.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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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혜담, 문영 / 114*188 / 135쪽 / 10,000원 / 979-11-6867-121-8 [03810] / 한그루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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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색으로 하나의 길을 가는 삶과 문학의 동반

부부가 묶은 한 권의 시집

제주에서 터를 잡고 삶을 꾸리며 글을 쓰는 두 작가 부부의 시집이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시를 쓰는 혜담(김원태), 시인이자 소설가인 문영(문혜영) 부부는 초승문학동인이라는 연결 고리로 함께 시 창작을 이어오고 있다.

시집은 크게 2부로 나누어 혜담의 시 24편, 문영의 시 37편을 실었다. ‘미움의 질량’은 동명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시시때때 세상의 기울기에 물들어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의 너와 나라면/ 누군가는 말해줄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얼마만큼 미워해야/ 가벼워질 수 있는 질량인 건지”에서 보는 것처럼, 늘 한결같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이 부부, 혹은 이 작가들 또한 하나의 목소리만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작품들이 한 권의 시집에 나란히 담겨 있다.

전통적인 서사와 단단한 서정을 보여주는 혜담의 시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성을 보여주는 문영의 시를 한 권의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팽팽한 대칭의 저울이 아닌, 흔들리듯 춤을 추며 균형을 맞추는 동반으로서의 삶과 문학을 담은 시집이다.

 

■ 저자 소개

혜담

(현) 제주고등학교 근무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어문교육학부 박사과정 수료

초승문학동인

문영

2023 중앙시조백일장 2월 장원

저서 《전갈자리 아내》, 《리셋》

초승문학동인,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 차례

[혜담]

12 천국에 갈 수 있을까 | 14 영화를 닮은 현실 | 16 아버지의 보호자 | 18 비현실적인 학교 | 20 이상과 현실 | 22 삶이 부끄러운 이유 | 25 겉과 속이 다른 세상 | 28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 30 가벼운 존재 | 32 억새 | 34 당구풍월(堂狗風月) | 36 첫눈 | 38 오늘과 내일 사이 | 40 유리창에 비친 세상 | 42 탓해야 할 사람 | 44 새옹지마(塞翁之馬) | 46 닮지 말아야 할 얼굴 | 48 아파트에서 크는 나무 | 50 내가 가야 할 길 | 52 닮지 말아야 하는 삶 | 54 기억의 한 조각 | 56 바람이 부는 방향 | 58 아이들과 밥 | 60 잃어버린 기억

[문영]

64 아이스아인슈페너 | 65 무릎의 시간 | 67 마살라 타임 | 69 유채꽃 | 72 시간의 사다리 | 75 카페 낭에서 | 76 첫눈 | 77 책 | 79 효모식빵 한 조각 | 81 독 | 82 오벨리스크 | 84 미움의 질량 | 86 새 | 87 기억을 기억하지 않는 방법 | 89 까마귀 | 92 떡잎 | 94 기억의 문 | 97 성형하는 날 | 99 민들레 | 100 은행나무 | 102 우울한 고등어 | 105 감나무 편지 | 107 꽃잎에 베이다 | 110 사월에 쓰는 편지 | 112 친구 | 113 바람을 기다려 | 114 여행 | 116 괜찮아 | 118 겨울 소나기 | 120 오해라서 다행이야 | 121 통장 | 122 거미의 집 | 125 해녀콩 | 127 쓰레기 | 129 밥 | 130 연금술사 | 132 행복 사각지대

■ 작가의 말

망각 곡선을 타고 비가 내린다.

막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모래성을 쌓는 나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 혜담

당신과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詩簡(시간)은

계속된다.

- 문영

■ 책 속에서

첫눈 (혜담)

며느리를 들볶아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시어머니 걸신걸신 돌아다니는 폼이

여자로 태어난 게 한(恨)이라

여든 무렵 찾아온 위암으로 드러누워

호박죽을 먹고 누에고치처럼 잠이 든다.

세상살이 서러움도 많아

업보처럼 먹은 음식을 다 뱉어놓고 가던 날

첫눈이 내린다.

오목가슴에 걸린 손주 녀석이

여섯 자 관 속에 때묻은 셔츠 하나 보시하고 나면

산봉우리를 거뜬히 오른다.

먹을 게 없어 도망친 할머니가

아들 하나 데리고 돌아왔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도련님 술시중에

고개 들지 못한 며느리 센 머리카락 사이로

삶은 닭살 같은 눈이 내린다.

울음과 통곡소리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흩어지고

소주 한 잔 담배 한 모금씩 돌리고 나면

사람들은 잔디조각마다 나뭇가지를 꽂아 놓고 뒤돌아선다.

한(恨)없이 살다 간 무덤 위로

첫눈이 내린다

첫눈(문영)

바람에나 흩어지는 먼지처럼 흩날리다

제 온도 못 이기는 하얀 꽃잎으로 낙화하니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그 사람

첫눈 나린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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