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있는 여자' 문효진 씨, 박사학위 논문 '여성인권운동과 항쟁가의 관계에 관한 연구' 발표
'색깔있는 여자' 문효진 씨, 박사학위 논문 '여성인권운동과 항쟁가의 관계에 관한 연구' 발표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8.30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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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진 박사
문효진 박사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언어와 문자로는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 -. 대한제국 애국가 서문.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정신에 달려있고, 국민의 정신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는 데는 노래가 최고다" - .애국창가4 서문
.

제주출신, 피아니스트, 수필가, 작곡가, MC, 연출 등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문효진 씨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제주에서 새로운 문화를 뿌리 내리고 있는 문효진(45) 작곡가는 최근 상명대학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 박사는 뉴스N제주와의 만남에서 "그동안 제주해녀의 뿌리를 알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새로운 눈으로 제주해녀의 미래상을 찾기 위해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문효진 박사학위 논문은 '여성인권운동과 항쟁가의 관계에 관한 연구'에 대한 것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에 활용된 <해녀의 노래>가 긍정적인 시대적 역할을 도출했음을 동시대 다른 지역의 사례와 비교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거듭된 일제의 수탈에 대항한 제주 해녀의 생존권 투쟁이다. 강관순 선생은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교육시켰을 뿐 아니라 부당한 처우를 위로하기 위해 <해녀의 노래>를 작사했고, 이 노래는 90여 년이 지나도록 해녀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시대를 기록하는 노래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섬인 제주도에서 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여성 1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항일운동은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역사기록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항일운동의 주체는 하층계급으로 취급받던 '해녀'라는 '여성'이었다. 이율배반적으로 〈해녀의 노래>는 일본 유행가의 곡을 차용한 점과 작사를 한 강관순 선생의 사회주의 운동의 행보로 인해 광복 이후 반갑지 않은 현대기록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도 1932년 제주도 해녀들의 항일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운동이 결국 여성인권운동으로 확장된 점은 유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객관적 지표를 위해 동시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배경과 항쟁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리고 있는 영국의 <여성행진곡>(March of Women), 미국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그리고 현재 불리지 않지만 <해녀의 노래>처럼 비밀리에 생존과 저항을 위해 불렀던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트레블링카의 거짓말>(There Lies Treblinka)이 있었다.

일본의 <동경행진곡>을 차용한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동시대 대한민국의 문화적 배경과 항쟁가의 유입 흐름, 특별히 일본노래를 차용한 항쟁가를 살펴보았다.

유행가나 명곡 등을 개사해서 부르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사례였다. 항일목적을 가졌던 독립군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노래까지 차용해 독립군 군가로 불렀다.

4장에서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전반적인 배경과 강관순 선생 및 여성항일운동가를, 5장에서는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서술하였다.

항일운동 현장의 해녀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녀의 노래>가 항쟁을 준비하며 미리 불렸고, 옥중에서 전달된 것은 추가된 4절임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노래의 존재 목적과 가사의 중요성을 통해 항쟁의 시대적 역할을 발견했다.

성공적인 인권운동 배경에는 '항쟁의 노래', '저항의 노래' 가 있었다.

문효진 박사는 "본 연구를 통해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성공적인 항쟁에 활용된 <해녀의 노래>를 폭넓게 재조명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에서 드러난 '여성', '인권', '노래'의 가치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문효진 박사
문효진 박사

▲문효진 박사 프로필
△Sound of Jeju 대표
△모차르트한국콩쿨 제주지부장
상명대학교(SangMyung University)에서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전공
The University of Melbourne에서 Piano Performance (MA) 전공
남녕고등학교 졸업

◆연구 배경과 목적

박사학위 논문 표지

인간이 보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랜 투쟁과 희생이 필요했다는 것은 필수 불가결의 사실이다. 여성들은 오늘날과 같이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많은 희생과 인내, 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에서 여성의 권리는 노예해방(1833년)보다 60년이나 더 늦게 허락되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라는 미국의 흑인 여성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말처럼 여성이 걸어갈 다리는 거대한 벽을 눕혀야 할 만큼 커다란 투쟁이었다.

여성 투쟁의 원천은 그녀들의 아버지, 남편이자 아들을 향한 희생이요, 몸부림이었다.

20세기 초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여성은 한 개인에서 '여성'이라는 공동체 집단으로, 집안의 순종적인 피지배계급에서 사회주도 세력으로, 수동적인 역할에서 가정을 책임지는 적극적인 노동자이자 경제인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계몽과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자아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증폭되며 성공적인 여성운동을 이룰 수 있었다.

성공적인 인권운동 배경에는 노래의 힘, '항쟁의 노래'가 있었다. 최초의 항쟁가로 불리는 프랑스 혁명의 <마르세유즈>(La Marseillaise)는 1792년 군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불렸고 이후 애국가로 사용했다.

"일어나세요, 조국의 아이들이여, 영광의 날이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은 애국과 국가 정체성의 강력한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1891년에 만들어진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e))은 전 세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위해 현재까지도 불리고 있다.

사회, 경제, 정치 혼란의 이데올로기였던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인권운동과 항쟁가는 세계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여성들은 <여성행진곡>(The March of the Women)을 부르며 빼앗긴 양육권과 사회 권리를 위한 참정권을 요구했다.

미국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유럽의 여성 이민자들은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노래를 부르며 노동자 인권과 산업재해를 개선해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Nazi)가 주도한 폴란드의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에는 <트레블링카의 거짓말>(There Lies Treblinka)을 비밀스럽게 부르며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당시 나치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고발했다.

우리나라의 근대 음악은 식민지 시대(1910-1945)에 접어들면서 독립을 염원하고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독립군들은 일본의 눈을 피해 만주와 러시아까지 퍼져 노래를 통한 독립의 희망을 고취시켰다.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도 해녀들의 대대적인 항일운동이 있었다. 강관순 선생은 해녀들의 계몽과 부당한 처우를 위로하기 위해 <해녀의 노래>를 작사하였고 이 노래는 90여 년이 지나도록 해녀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시대를 기록하는 저항의 노래가 되었다.

<해녀의 노래> 가사가 해녀박물관과 우도항 등 여러 제주 항일운동 자료에 기록된 데 반해 노래 원작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항쟁가로 불린 노래가 이율배반적으로 일본 유행가였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 연구 관점에서 선행된 연구문효진, 20225) 에서 <해녀의 노래>와 <동경행진곡>을 음악적으로 분석한 뒤 동일한 노래임을 증명했다. 또한 '행진곡'이라는 노래 제목 때문에 일본군가로 잘못 알려졌는데 <동경행진곡> 원곡에 관한 내용과 음악적인 내용도 서술했다.

일본노래를 차용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나 원곡에 관한 연구를 통해 조선인을 압박했던 군가가 아니라 당시의 유행가를 필요에 의해 개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2019년부터 시작한 본 연구는 연구자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저항의 노래'를 찾는 것이었는데 항일운동 당시 불렸던 <해녀의 노래>가 일본노래를 차용하였기에 원곡과 항쟁에 관한 후속 연구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동시대 대한민국에서 불린 항쟁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작은 지역인 우도의 항쟁가 연구에 지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을 통해 건너온 서양 번안곡과 일본의 창가들을 독립항쟁가로 차용했던 것은 침략과 저항의 역사의 양면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독립운동가들은 노래를 통해 자주독립의 열망을 들여다보았다. 고립되고 유배된 섬이었던 제주도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전반의 항일운동과 항쟁가들을 살펴봄으로써 제주의 <해녀의 노래>가 같은 목적을 가진 항일 노래임을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지난 연구를 통해 <해녀의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강관순 선생의 노래는 해녀항일운동 이후 옥중에서 작사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강관순의 유복녀, 강길여 증언).

많은 해녀가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야학과 노래를 통해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노래는 항일투쟁사건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부분은 해녀 관련 기관에서도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어 연구자는 추가 증언을 통해 이 노래가 불렸던 시기에 대해서도 정리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제주해녀항일운동과 해녀의 노래>의 가치를 증명하여 해외의 여성인권운동과 활용된 항쟁가의 관계성을 찾는 것이다. 먼저 여성들이 불평등을 호소하며 투쟁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생존권과 참정권, 노동권 등 인권운동으로 성장하는 구조와 과정을 들여다보고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연결하고자 한다.

제주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해녀를 연구하는 것은 제주도 전체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해외에 해녀 문화를 알리는 교류사업이 증가하면서 해녀 문화와 정신에 대한 콘텐츠와 아카이브가 필요해졌다. 현재 해녀는 자연환경의 변화, 인구감소, 직업의 도시화로 매년 100여 명씩 줄어들고 있다.

해녀 직업의 계승과 복지를 위한 행정제도도 필요하지만, 해녀 문화의 정신과 가치를 정립하는 기록과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여성', '인권'과 '노래'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제주해녀항일운동에 활용된 <해녀의 노래>가 긍정적인 시대적 역할을 도출했음을 동시대 다른 지역의 사례와 비교하고자 한다.

◆연구의 제한점

연구의 범위는 근대화가 시작된 영국과 미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폴란드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였던 대한민국 제주와 제국주의를 이끈일본까지, 전 세계를 내포하는 범위의 조사가 필요했다.

연구의 제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사례는 범위가 넓어 많은 부분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야 했다. 영문 자료는 충분히 자료가 방대해 내용을 취합하기 수월하였다. 미국과 폴란드, 이스라엘, 독일에 기념박물관)들이 설립되어 있고, 홈페이지에 많은 자료가 다양한 콘텐츠(증언 인터뷰, 역사적 사실, 음성파일, 사진 자료, 비디오 자료, 기념사업, 예술가 기록)로 제작되어 있어 도움을 받을수 있었다.

그러나 본문 2.2.2. <빵과 장미>(Bread and Roses)와 미국 뉴욕 셔츠웨이스트 파업'에서 유대인들의 이디시어 자료는 영문 번역이 많지 않았다. 미국 의류공장의 여성 노동자들 대부분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유대인 이민자들이었다.

역시 본문 2.3.1. <트레블링카의 거짓말>(There Lies Treblinka)과 폴란드 트레블링카 여성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은 모국어인 이디시어를 사용했으므로 기초 자료와 원본 자료를 찾는 데 큰 노력이 필요했다.

특별히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불린 음악 자료는 방대했으나 강제수용소였던 트레블링카의 기록은 철저하게 폐기되었기에 구전으로 남은 자료에 의존해야 했다.

<해녀의 노래>를 차용한 일본노래 <동경행진곡>은 현재도 일본에서 불리고 있어 음성자료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노래에 대한 기초 자료가 많지 않았다. 자체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음악 자료보다 영화자료에서 원곡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100여 년 전 현장에서 불렸던 음성파일이나 원본 악보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본문 2.2.1. 의 <여성행진곡>은 전문 여성 작곡가의 작품으로 합창뿐 아니라 여러 편성으로 작곡을 하였어도 원본 자료는 많지 않았다.

본문 2.2.2. 의 <빵과 장미> 노래도 매해 기념식과 행사에서 불리고 있지만, 원본 악보를 찾기 어려웠다. 본문 2.3.1.의 <트레블랑카의 거짓말>은 작곡가가 여러 명으로 조사되어 작곡가마다 연대기와 음악 활동, 차용된 멜로디를 찾아 최종으로 대조해야 했다.

셋째, '구전으로 불렀다' 또는 '노래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확인하기 위한 사실적인 접근과 객관적인 자료를 찾는 데는 부분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노래'의 음악적 해석을 넘어 '항쟁의 노래'로 불린 '시대적 가치'와 '역할'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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