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강정효 사진집 《본향》- 1990년대 제주굿
[신간] 강정효 사진집 《본향》- 1990년대 제주굿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9.13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사진 강정효 | 220*280mm | 208쪽 | 25,000원 | 979-11-6867-040-2 03660 | 한그루 | 2022. 8. 31.

신인동락(神人同樂)의 세상을 꿈꾸며
제주굿, 신당, 심방, 단골들을 담다

제주를 일만팔천 신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그만큼 무속신앙과 굿은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이에 따른 관심도 지대해 건입동 칠머리당 영등굿이나 송당본향당의 신과세제 현장에 가서 보면 수많은 사진가들이 촬영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사진가와 연구자의 숫자가 지역주민인 단골을 능가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출신의 사진가 故김수남 선생이 1970-80년대 굿을 정리한 이후로 제주의 굿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진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사진 전시회마다 굿 사진이 등장하지만, 간헐적으로 보일 뿐이다.

글과 사진으로 제주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진가 강정효 작가가 ‘본향’ 사진집을 펴냈다. ‘1990년대 제주굿’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제주도 곳곳에서 펼쳐진 신과세제를 비롯해 영등굿, 좀수굿(해녀굿), 4‧3 50주년 해원큰굿 등이 실려 있다. 146컷의 사진과 함께 이해를 돕기 위해 신당에서의 굿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동김녕 1999

촬영장소는 건입동의 칠머리당을 비롯해 우도, 신양리, 송당리, 와흘리, 김녕리 등 도내 곳곳이다. 사진은 흑백과 컬러사진으로 나뉘는데, 강 작가는 흑백필름과 슬라이드 필름을 넣은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강 작가는 작가 노트를 통해 “굿에는 제주문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여깁니다. 가정의 안녕을 기원함은 물론이거니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자 했던 염원까지도. 제주의 정체성은 특정 계층이 아닌 기층민인 민중들에 의해 지켜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라며 사진집 제작 의도를 말하고 있다.

이어 최근의 각종 개발행위로 신들의 거주처인 신당이 허물어지고, 심방과 단골들 또한 고령화와 함께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송당본향당 1995

실제로 작가는 2008년부터 2년간 제주전통문화연구소의 신당조사팀장을 맡아 제주도 전체의 신당 전수조사를 진행한 것을 비롯해 2011년과 2012년, 2017년에는 14일에 걸쳐 진행되는 제주큰굿 현장에서 심방(무당)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굿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사진기자 출신인 강정효 작가는 제주대 강사, 제주민예총 이사장을 거쳐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8회의 사진 개인전과 함께 《화산섬 돌 이야기》, 《한라산》, 《한라산 이야기》, 《제주 아름다움 너머》, 《폭낭》, 《세한제주》 등 1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와흘본향당 1995

 

강정효 KANG JUNG-HYO

와흘본향당 1996

 

1965년 제주 출생.

칠머리당 1999

기자, 사진가, 제주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사)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공동대표(이사장)를 역임했다.

한라체육관 1998

 

17회의 사진개인전을 열었고, 저서로 《제주는 지금》(1991), 《섬땅의 연가》(1996), 《화산섬 돌 이야기》(2000), 《한라산》(2003), 《제주 거욱대》(2008), 《대지예술 제주》(2011),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2015), 《할로영산 웃도》(2015), 《한라산 이야기》(2016), 《제주 아름다움 너머》(2020), 《폭낭, 제주의 마을 지킴이》(2020), 《세한제주》(2021) 등을 펴냈다.

화을본향당 1995

공동 작업으로 《한라산 등반개발사》(2006), 《일본군진지동굴사진집》(2006),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2008), 《뼈와 굿》(2008), 《제주신당조사보고서Ⅰ·Ⅱ》(2008, 2009), 《제주의 돌담》(2009), 《제주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빛낸 선각자들》(2009), 《제주도서연감》(2010), 《제주4·3문학지도Ⅰ·Ⅱ》(2011, 2012), 《제주큰굿》(2011, 2012, 2017),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2013),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관광 도입방안Ⅰ·Ⅱ》(2013, 2014) 등 제주의 가치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hallasan1950@naver.com

사진 개인전

〈폭낭〉, 갤러리 브레송/서울, 포지션 민/제주, 한국, 2020
〈제주 아름다움 너머〉, 갤러리 브레송, 서울, 한국, 2016
〈제주4·3, 남겨진 사람들〉, 마부이구미 연속사진전, 갤러리 라파엣, 오키나와, 일본, 2016
〈한라산 신을 찾아서〉,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 한국, 2016
〈할로영산 보롬웃도〉, 스페이스 선⁺ 서울, 한국, 2015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 제주4·3평화공원 전시실, 제주, 한국, 2013
〈제주의 돌〉 기획전,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 한국, 2012
〈대지예술 제주〉, 제주도문예회관, 제주, 한국, 2011
〈베트남〉, 한라대학 전시실, 제주, 한국, 2009
〈일본군진지동굴〉, 제주학생문화원, 제주, 한국, 2006
〈화산섬 돌 이야기〉, 사진갤러리 자연사랑, 제주, 한국, 2000
〈한라 백두〉, 제주국제공항(제주)/한국관광공사(서울), 한국, 2000
〈한라산의 계곡〉, 제주국제공항, 제주, 한국, 1999
〈매킨리, 산악인 고상돈 20주기 추모〉,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 한국, 1999
〈섬땅의 연가〉, 세종갤러리, 제주, 한국, 1997
〈부처님 오신 날〉, 세종갤러리, 제주, 한국, 1993
〈돌하르방〉, 동인미술관, 제주, 한국, 1987

작가 노트

본향本鄕, original hometown은 본래의 고향 또는 시조始祖가 태어난 곳을 이르는 말입니다. 불휘[뿌리]와도 비슷한 용어로 근본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데, 제주에서 본향이라 하면 고향 마을의 본향당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본향당의 신을 할마님[할머님] 또는 할망이라고도 부르는데, 제주에서의 할망은 가족관계의 할머니뿐만 아니라 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 농경의 신인 자청비를 이르는 세경할망, 부엌의 신인 조왕할망,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삼승할망 등이 대표적입니다.

제주를 가리켜 일만팔천 신神들의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민속의 보고, 신화의 섬이라고도 하죠. 하나같이 신들과 더불어 살아온 무속신앙이 남아있기에 붙게 된 수식어들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제주의 무속신앙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새벽녘 집에서 1km 이상 떨어진 마을의 본향당에 가는 어머니가 말벗 삼아 데리고 간 것이지요. 이후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초등학생 시절, “굿은 미신”이라며 굿판을 보게 되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야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굿과 심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1990년대에 촬영된 것들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마을의 굿판에 외부인이 찾아오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굿에 앞서 청결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던 단골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또한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신당이나 굿판을 보면 애써 외면하면서 지나쳤습니다. 괜히 동티가 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접하면 접할수록 굿에는 제주 문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가정의 안녕을 기원함은 물론이거니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자 했던 염원까지도. 제주의 정체성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기층민인 민중들에 의해 지켜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제주의 무속신앙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각종 개발행위로 신들의 거주처인 신당은 허물어지고, 심방과 단골들 또한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불어 제주의 정체성도 그만큼 사라지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또한 시대상의 반영인 것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갈 뿐.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