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풍경을 필사하는 사진시집 '어멍 닮은 섬 노래'
[신간]풍경을 필사하는 사진시집 '어멍 닮은 섬 노래'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7.11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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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필사하는 사진시집 함께 채워가는 라이팅북
시린 글・사진 / 160*210 / 320쪽 / 22,000원 / 979-11-6867-030-3 (03810) / 한그루 / 2022. 6. 30.
제주아동문학의 산실,제주아동문학협회 마흔한 번째 연간 작품집
제주아동문학의 산실,제주아동문학협회 마흔한 번째 연간 작품집

제주 중산간 마을의 풍경과 삶을 담은 사진집과 감성적인 에세이를 내왔던 시린 작가의 신작 사진시집이다.

제주의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담는 작업의 연장선이자, 이번에는 독자의 필사와 감상의 공간을 더 마련하여 함께 채워가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졌다. 1부 ‘해를 따라 서쪽으로’에는 제주시 지경 중산간 마을 32곳의 풍경을 담았고, 2부 ‘다시 해 뜨는 동쪽으로’에는 서귀포시 지경 중산간 마을 31곳을 담았다. 제주어의 입말을 한껏 살린 시들은 따로 표준어 대역을 마련했다.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한적한 차부(버스 정류장)에 앉아 마음의 길을 더듬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때로는 폭낭(팽나무) 그늘에 앉은 할머니들의 대화에 귀를 세우고, 길에서 만난 이들의 호의에 감동하며, 삶이 그려낸 낡고 정겨운 풍경에서 멈춰 쉬기도 한다.

이런 여행 같은 걸음에서 길어올린 시들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속 문장을 정갈하게 내어놓는 것과 함께, 사진의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두어, 독자들로 하여금 천천히 읽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다시 써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소박하고 정다운 일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와 함께 애정이 담긴 문장과 사진을 따라가다 잠시 멈춰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여운이 긴 사진시집이자, 모두가 함께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책이다.

<저자 소개>

시린(서은석) 

여행하는 중입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실은 헤매는 게 특기인 철딱서니입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일이든 장소든 뭐 하나 제대로 찾지 못했습니다.

늘 낯선 데서 서성입니다.

어느 날 제주에 왔습니다.

인생의 종착지이길 바라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묻혀 있던 꿈 하나를 기억해 냈으니까요.

세상의 눈물이 되어 줄 단 한 줄의 시를 완성하고 싶다는

뷰파인더 속으로 뛰어들어온 낱말을 발견한 후로 카메라는 또 하나의 펜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두 개의 펜을 들고 시의 조각을 모으는 여행을 합니다.

나는 길 위에 있습니다.

사진에세이 《괜찮지만 괜찮습니다》, 《로드 판타지》.

사진집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서귀포지 중산간마을》(공저).

<목차>

1부 제주시_해를 따라 서쪽으로

구좌읍 덕천리_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속을 비운대

구좌읍 송당리_기다림을 기다림

조천읍 선흘리_어부애 걸음

조천읍 와산리_고래가 된 섬

조천읍 대흘리_어게!

조천읍 와흘리_비나리

제주시 봉개동_할망 생각

제주시 아라동_비질

제주시 오라동_보리밭 길에서 잠시

애월읍 고성리_착각

애월읍 광령리_꼬닥꼬닥

애월읍 상귀리_노래가 없었더라면

애월읍 수산리_마중

애월읍 장전리_제주 사람

애월읍 유수암리_이정표 앞에서 쉬다

애월읍 소길리_버스가 올 때까지

애월읍 상가리_나무의 목소리

애월읍 하가리_밖거리

애월읍 납읍리_곶의 이름

애월읍 봉성리_차부 앞집 오름이

애월읍 어음리_여름방학

한림읍 상대리_눈 묻은 시

한림읍 동명리_전상

한림읍 명월리_풍경의 손짓

한림읍 금악리_퇴근길

한림읍 상명리_점심참

한림읍 월림리_달과 숲이 있는 이름

한경면 낙천리_낙천적인 버스

한경면 저지리_바다에서 온 산

한경면 조수리_정류장

한경면 청수리_혼디

한경면 산양리_텃세

2부 서귀포시_다시 해 뜨는 동쪽으로

대정읍 무릉리_실퍼도 정낭

대정읍 신평리_할망의 우영팟

대정읍 구억리_뽄쟁이들

대정읍 보성리_대정몽생이

대정읍 안성리_세우리는 별꽃이란다

대정읍 인성리_어멍이 난전밧디서

안덕면 덕수리_꽃벽

안덕면 서광리_마실감저

안덕면 동광리_지슬꽃 지키는 집

안덕면 상창리_안개들을 조심하세요

서귀포시 색달동_농바니의 집

서귀포시 회수동_주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서귀포시 서호동_물의 이름, 이야기

서귀포시 호근동_하논의 바람 소리

서귀포시 서홍동_먼낭

서귀포시 동홍동_오일장

서귀포시 토평동_매일 풍경

서귀포시 상효동_귤꽃

남원읍 하례리_산담

남원읍 신례리_대화

남원읍 한남리_다라이에 담긴 안녕

남원읍 수망리_꽃 찾으러 왔단다

남원읍 의귀리_보롬 아래

남원읍 신흥리_돔박생이

표선면 토산리_감귤상자

표선면 가시리_기억

표선면 성읍리_옛날 옛적 탐라국에

성산읍 신풍리_고장, 피엇수다

성산읍 삼달리_귀가

성산읍 난산리_생이밥

성산읍 수산리_미깡 먹을타?

<작가의 말>

풍경은 노래 닮다.

그래서 우리는 피부가 벗겨진 손을 소독약에 문지르고,

빨갛게 헌 귀에 마스크를 걸고서라도 자꾸만 나가고 싶다.

당신과 나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잊고 있던 노래를 떠올리듯, 가만히 풍경에 귀 기울인다.

사진은 시 닮다.

사진도 시도, 풍경이 내게 들려 주는 이야기니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때로는 받아 적었다.

여기 적힌 이야기들은 바닷가에서 주워 온 작지 한 알만큼도 안 된다.

책상 위에 올려둔 작지처럼 작고 쓸모없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느껴지는 따스한 바람이 있다.

그 바람들, 내가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당신이 함께 써 주면 좋겠다.

<책 속에서>

바다에서 온 산

- 한경면 저지리

제주섬 한라산

하늘에서 보면 섬이라 제주도

땅에서 보면 산이라 한라산

바다에서 보면 뭍

물 위의 섬, 섬 위의 산

섬과 산 중에 무엇이 먼저 생겼을까

화산이 터졌으니 산이 먼저일까

그전에 땅이 솟았으니 섬이 먼전가

아니지 그 땅은 원래 바다 아래 있었지

한라산은 바다에서 왔구나, 소라처럼

우리처럼, 뭍에 사는 모든 동물 식물들처럼

어느 날 당신이 바다 아닌 곳에서

바람 안의 바다 내음 느껴지고

몸속을 도는 파도 소리 들린다면 그런 까닭

바다에 떠 있는 섬만 아니라

산이 곧 섬이듯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왔으니, 소라처럼

껍데기만 남았어도 먼 옛날의 기억을 잊지 않은 까닭

물의 이름, 이야기

- 서귀포시 서호동

물 있는 데는 어디나 이야기가 있단다

옛날, 나라가 없고

마을 이름이 없던 때에도

사람들은 물 있는 데 모여 살았지

그게 모든 마을의 시작이란다

그러니 마을의 이름은

물의 이름이기도 하지

살아 있는 모든 몸속에는 물이 있고

그러니 몸을 가진 모든 것들은

이야기가 있단다

우리가 그 이름을 미처 모를 뿐

세상에 이름 없이 살아가는 건 없듯이

이야기 없이 살아가는 것들도 없지

기억하렴 너의 이름 안에는

물이 있고 세상이 있고

너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란다

<추천사>

한 사람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묻는 사람은 없다.

아는 이 없는 곳, 마중 나온 이 아무도 없는 섬.

그녀도 이 섬에 오게 된 이유를 알아가는 중이다.

피부, 소독약, 풍경, 사진, 시, 공천포, 기다림, 섬, 어게, 비나리, 버스, 착각, 꼬닥꼬닥, 이정표, 밖거리, 차부, 눈, 손짓, 정류장, 혼디, 텃세, 우영팟, 몽생이, 세우리, 어멍, 꽃벽, 마실, 지슬, 안개, 물, 이름, 바람, 소리, 하논, 오일장, 귤꽃, 산담, 다라이, 상자, 귀가, 길, 아이, 함께, 퇴근길.

시린 작가는 글자를 모아 생명 있는 단어를 만들고, 서로의 만남을 주선하여 그들의 삶을 관찰한다. 흩어져 살아왔던 글자와 단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 책에는 섬이나 육지로 구분되는 정서가 아닌 것들을 담았다.

이 책을 통해 무거운 여행자에서 조금은 가벼워진 생활자로 진화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도착점 모르고 출발한 우리를 따스하게 안아 준다.

사진은 시다. 시는 사진이다. 사진과 시는 생각보다는 마음에 가깝다.

마음이 담긴 책장을 넘기는 행운을 함께 누려 보면 좋겠다.

오늘, 그대의 섬에 도착할 것이다.

- 이겸(사진심리상담가)

시린은 차부에 부는 바람을 사진으로 담을 줄 안다. 마을 이미지를 이렇게 형상화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시린은 거뜬히 해낸다. 그것은 마을을 자주 거닐며 탐구한 결과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산문은 시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사진과 시가 나란히 놓이니 사진이 시 같고, 시가 사진 같다. 펼치면 나타나는 사진들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작정 내리면 나타나는 마을 같다. 사진 속 장소는 대부분 마을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니 풍경 속에 사람이 없어도 정겹고, 따스하다.

시린은 오늘도 바닷가 작은 집에서 카메라를 정비하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을 것이다. 그가 있어서 제주도는 하영 부드러워졌다. 이 책을 가방에 넣고 제주도 마을을 걷다가 폭낭 그늘에 앉아 펼쳐 다시 읽고 싶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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