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김혜천의 첫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신간]김혜천의 첫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7.01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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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시산맥 창작지원금 공모당선시집... 총 53편 시 수록
김혜천 시인
김혜천 시인

살아간다는 것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는 힘, 걸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일, 바라본다는 것은 미지를 향한 모험이라며 존재는 이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다다를 수 있는 정수라고 노래하는 시인.

2015년 《시문학》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의 활동을 하던 김혜천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라는 제목의 첫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등단 이후 꾸준한 문학활동을 통해 푸른문학상 수상, 2017년 이어도문학상 수상, 2020년 푸른시학상 수상은 물론 윤동주서시문학상 제전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문학의 폭을 넓혀가고 있던 김 시인이 올해 첫 작품을 내놓은 것.

그것도 1쇄도 모자라 2쇄로 이어지고 있다.

시집은 1부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라는 제목의 시 외 12편, 2부 ’바람과 색 그리고‘외 13편, 3부 ’호랑이‘외 12편, 4부 ’풀에 대한 에스키스‘ 외 12편 등 총 53편의 시가 수록됐다.

김 시인은 이번 시집을 세상에 내며 “내 안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불꽃이여, 닿을 수 없어 더 닿고 푼 그대여”라고 표현했다.

오민석(단국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생성하는 알들의 수런거림’이라는 표현을 통해 “김혜천 시인은 세계의 유동성에 주목한다”며 “그녀에게 있어서 세계는 겹 제곱 방정식처럼 증식한다. 동일성의 문법을 깨뜨리는 세계는 늘 탄생의 새로운 문턱에 있다. 경계를 넘어가는 언어는 포획을 거부한다”며 김 시인의 거침없는 문장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시인은 완결된 문장을 거부한다. 시는 종결의 언어가 아니라 생성의 언어”라며 “이 시집의 제목처럼 시인이 적는 첫 문장은 늘 비문이다. 비문은 완결을 거부하는 언어이며,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언어이고, 도래할 문장을 꿈꾸는 언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혜천 시인은 정주의 순간 이주를 꿈꾼다. 그녀에게 모든 언어는 지나가는 고원이다. 그녀는 유목민처럼 세계를 유랑하고, 세계는 그녀를 유랑한다”며 “그녀에게 있어서 주체와 대상은 아메바처럼 고정된 형식을 갖지 않는다. 움직이고 흐르는 것들이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혜천 시인
시집 '첫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표지

특히 ”시인은 산란하는 알들의 언어에 매혹당한다. 세포는 증식되고, 형태는 변화하며, 존재는 생성된다“며 ”김혜천은 이 무한 형태 변용 metamorphosis의 세계에 주목한다. 이 시집은 끊임없이 부화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유목 언어의 기록“이라고 치켜세웠다.

오 교수는 "시인의 세계관 속에서 생성하는 알들의 수런거림은 사회·역사적 현실을 향하기도 한다"며 "시인은 제주 공항이라는 현재와 4·3 항쟁이라는 과거의 두 면을 만나게 한다. 이 두 면의 만날 때, 역사 인식의 새로운 주름이 생겨난다. 현재와 과거 중 어느 한 면만 따로 놀 때, 생성의 공간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각혈이 응고된 기암괴석'과 고사리들이 만날 때, '포란의 새로운 주름이 생겨난다"며 "'포란'은 알이 다른 무엇이 되는 과정이다. 시인은 죽은 역사(“각질 떨어지는 마른 등걸")가 "봄"과 만나 새로운 주름으로 태어나기를 고대한다"고 희망했다.

또한 "시인이 가지고 있는 생성과 변화의 세계관이 이렇게 사회·역사적 현실로 확대될 때, 그녀의 시 속에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주름이 만들어진다"며 "김혜천 시인은 이렇게 약동하는 세계관으로 사물과 자연과 사람과 역사를 읽어내고 이 소란스러운 시의 알들은 분명히 새로운 언어의 부화를 향해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이 시집은 끊임없이 부화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유목 언어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 김혜천 시인
서울 출생, 2015년 《시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시인 등단
윤동주서시문학상 제전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조계종 12기 포교사
2017년 이어도문학상 수상
2020년 푸른시학상 수상
2022년 시산맥 창작지원금 수혜
다도인문강사
hyechon5588@hanmail.net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초판 1쇄 발행 2022년 03월 25일
초판 2쇄 발행 2022년 05월03일
지은이 | 김혜천
펴낸 이 문정영
펴낸곳 | 시산맥사
편집위원 이송희 전철희 한용국
등록번호 제300-2013-12호
등록일자 2009년 4월 15일
주소(03131)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6길 36.월드오피스텔 1102호
02-764-8722, 010-8894-8722
전자우편 poemmtss@hanmail.net
사산맥카페 | http://cafe.daum.net/poemmtss
ISBN 979-11-6243-282-2 (03810)
가격 10,000

시집 구성
1부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18
불씨 20
오리엔탈골리앗왕꽃무지 22
화형식 24
슬랙라이너 26
사막을 깁는 조각보 28
니체의 아이 30
사하라 32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계 34
아틀란티스 36
폐허에서 오는 봄 38
물詩의 집에서 40
리토르넬로 42

2부
바람과 색 그리고 46
그늘의 미학 48
나비장 50
알들의 소란 52
탈脫 54
소리의 질료 56
허기 58
허들 59
침묵의 사계 60
돔의 들다 62
목화 64
해석을 기다리는 기호들 66
페이블랑 67
타트론 68

3부
호랑이 72
문고리에 대한 새로운 조명 74
기척 76
나침반 78
바람의 수화 80
봉스와 82
빛과 어둠의 변주 84
성수동 엘레지 86
무젤만 88
추락하는 날개 90
거미줄 92
낙화 94
아이스크림 파우더 96

4부
풀에 대한 에스키스 100
몽상가의 턱 102
침묵의 바다 104
달의 문장 106
풍마風馬 108
거품꽃 110
포란 112
해조음 114
바닥론 116
푼크툼푼크툼 118
허공 경작지 120
발전도상인 122
걸어가는 사람 124

◆시 감상

몽중에 나에게 온 이 문장은
선사시대를 헤엄쳐 온
해독되지 못한 아사 직전의 물고기
붉은 통점痛點이 파닥파닥 잠을 깨운다
멈춰버린 농담처럼 행간 속에 가둔 비명의 날들
비늘처럼 달라붙은 남루를 벗긴다
쓰나미 잠들고
산란의 바다를 만날 때까지
그늘마다 검은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난해한 기호들
검은꽃의 재해석은 묻어두기로 한다
낮을 되찾고 싶던
긴 밤의 서사를 비문으로 적는다
이제 거침없이
심해를 헤엄칠 수 있겠다

-김혜천의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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