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기억의 향기는 어떤 맛일까?"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기억의 향기는 어떤 맛일까?"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1.0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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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제주시 간월동로 39번지 아라갤러리 입구에는 가을 낙엽이 휘날리고 있다. 그리 춥지도 않은 날씨, 오히려 여름처럼 더위를 알리는 이곳, 아라갤러리에 새로운 작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의 오름.
어릴 적 기억은 무조건 크다. 그 기억은 자라면서 점점 희미해져가고 세상의 중심이었던 오름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그 중심에 사다리를 놓고 기어올라 먼곳을 바라보는 작가, 이연정이 11월 첫날부터 전시를 한다. 오는 14일까지 기억의 향기를 찾아 그려온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그림을 가만이 보면 초록과 하얀색, 송이색과 하얀색만 있고 가끔 수평선 아래 바다가 있다. 여백이 크게 남은 것은 기억의 장을 확대했다.

동양에서는 비움의 공간일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이 작가는 자신이 힘든 기억도 그냥 지우고 싶은 것, 생각하고 싶은 기억만 여기에 집어넣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그림속에 사다리는 곧 나무다.
작가는 늘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만의 공간, 행복했던 그 상상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있는 빨래는 무슨 의미일까, 따뜻한 이 하얀 천은 어머니의 따뜻한 느낌을 기억한다. 비 올 때 보면 어머니처럼 빨랫줄에 하얀 천이 있다. 항상 엄마를 기다리는 그 따뜻함과 같이 빨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고향 판포에서 느낀 많은 기억들.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가고 싶어 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어떻게 꾸며갈지 새로운 기억을 불러오는 이곳, 아라 갤러리엔 따뜻한 커피가 익어가고 있었다.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작가 노트 : 기억을 담는 풍경

김지혜(미학)

기억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 태어나 얻은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이다. 이연정은 이러한 기억들이 농축되며 생성해온 유기적 풍경을 오름에 투영하여 화폭에 담아온 작가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기억 상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붙였다. 이 글은 이연정 작가의 작업을 세 개의 관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연정의 작업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대상은 오름과 의자, 사다리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재인 오름은 - 선사시대로부터 고려시대, 일제강점기, 4.3사건에 이르기까지 - 긴 세월 동안 제주인들이 간직해온 공적이고 사적인 기억들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기억 상자다.

이연정의 오름은 이처럼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을 함께 품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오름을 지극히 현실적인 장소로 표현하기도 하고, 라퓨타처럼 현실에 없는 허구의 장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장면에는 산수화에서 자주 등장하였던 평원 법(4월초)과 심원법 (25출:)이 사용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연정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여백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인화에서 철학적 의미와 조형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하였던 여백이라는 장치는 이연정에게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작가는 이 여백이 채움을 전제로 하는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지우는 장치(지우개)라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억은 왜곡되고 변형되며, 각색되고 연출되기에, 때론 찬란하고 아 름다운 희극이 되지만, 비극의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아마도 작가는 여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토록 우리를 버겁게 하는 기억들을 덜어내고 지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연정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백이 작가가 제시하는 색다른 치유의 장치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작가 이연정이 사용해오고 있는 재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작가는 근래 아크릴물감과 몰딩 페이스트를 주로 사용해오고 있다.

아마도 아크릴물감의 명료함을 몰딩 페이스트의 거친 텍스처로 중화 시키고자 하였던 것 같다. 작가가그려온 주 대상인 오름 역시 부드러운 형상과 거친 시간을 함께 지니고 있기에, 이와 같은 재료의 배합은 그것의 본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해 보인다.

여기서 나아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실험을 펼친다. 바로 화산의 잔재이자 제주도의 토속적 재료인 송이를 분쇄하여 독특한 붉은색과 거친 질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기존의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밝은 청색과 녹색 계열의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다소, 과감한 시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작품 들은 청녹색의 기억과 붉은색의 기억을 동시에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정체성은 남기되 작업의 변화를 갈구하며 실험을 거듭한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기억상자는 사람들에게 기억과 마주하여 그것의 본질을 발견하고 미래를 향한 도약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과 마주하며 그 공간에 기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곱씹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전시]이연정의 '기억상자' ...11월 1일-14일 아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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