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키이우 비크 하우의 단편 소설 '날아가는 빨간 화살'
[단편소설]키이우 비크 하우의 단편 소설 '날아가는 빨간 화살'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1.11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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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비크 하우(KIEU BICH HAU) 작가
키이우 비크 하우(KIEU BICH HAU) 작가

키이우 비크 하우(KIEU BICH HAU) 작가는 베트남 문인협회 회원(Member of Vietnam Writers’ Association)이며 1972년생으로 베트남 흥옌 성(Hung Yen Province) 출신이다.

하노이 대학의 외국어(영어)사범대학을 1993년 졸업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베트남문인협회 대외업무이사(2019년부터 현재까지)를 맡고 있다.

베트남 패션잡지 New Fashion Magazine의 편집 담당, Intellectual Magazine의 부편집장 Garment의 부편집자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다.

문학상 수상은 1992년에 티엔퐁(Tien Phong)신문사와 응우옌 두(Nguyen Du School)학교가 공동주최한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 문학신문이 주최한 문학상에서 2등 수상했다. 2009년에 ‘무술과 문학 잡지(Military Arts & Literature Magazine)’가 주최한 문학상에서 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해군사령부(Naval Command)’에서 주최한 문학상의 단편소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 베트남과 헝가리 문화와 문학 관계를 풍부하게 심화시킨 공적으로 다누비우스 예술상(The ART Danubius Prize)을 수상했다.

시집과 산문집 등 22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단편 소설 <날아가는 빨간 화살> 읽기

자폐아의 말하기 능력 향상을 위한 치료가 끝난 후 아이와 어머니를 보낸 하(Ha)는 철문을 당겨 잠그려다가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스마트 폰을 책상 위에 두어서 그녀는 재빨리 안방으로 스마트 폰을 집으러 들어갔다.

한 자폐아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 한 낯선 사람은 하가 많은 자폐 아동의 말하기 능력을 개선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와 전화로 다음 주 일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하는 일요일 오후 3시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하는 자폐아 교육을 위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자폐증을 앓는 자기 아들을 교육하여 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녀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개인 생활의 70%의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성공사례가 알려졌다. 자폐아를 가진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하는 지난 5년 동안 자신 있게 집에 센터를 열어, 아들을 치료하고, 다른 자폐아들을 위한 치료를 병행했다. 

이 직업을 통해 그녀는 비교적 좋은 수입원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자폐아 교육을 위하여 석사과정을 공부하기로 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이 전공을 아주 깊게 연구하여 아이를 위한 몇 가지 기본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결국 그녀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줬지만, 예상치 않게 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자폐증을 앓는 아들 밍(Minh)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던 하는 깜짝 놀랐다. 밍이 어딨지? 그녀는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았다. 그녀는 전화기를 놓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의 한쪽이 넓게 열려 있다. 그러면 아들은 어머니의 실수를 이용하여 밖으로 나갔다. 

이 10살 아이는 평소 한 발짝도 평범하게 내딛지 않았지만,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활에서 쏘아 올린 화살처럼 돌진하기 때문에 이웃들로부터 '화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여러 번 거리로 돌진하고, 달리는 오토바이와 부딪치고 넘어져서 머리가 붓고, 무릎과 팔꿈치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바로 일어났다.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군중 속에서 아이를 쉽게 찾기 위해 아이에게 빨간 옷을 입힌다.

하는 빨간 옷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면서 작은 거리를 살펴봤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나쁜 예감, 끔찍한 이미지만 떠오르고 있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빨간 옷을 입은 10살 소년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고, 그녀는 즉시 길을 건너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아이를 찾았다.

하는 사고 현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도로 한복판에 5인승 승용차가 멈춰섰고 행인들이 모여들었다. 하는 진정하려고 애쓰면서, 군중에게 달려가 사람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아들 밍이 차 바로 앞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현기증 나서 그녀는 아이 앞에서 주저앉았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면 그것 때문에 죽는 법이다. 그 사고 후 밍은 충돌한 차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이마에 다섯 바늘, 팔꿈치 근처에 세 바늘을 꿰맸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큰 사고이다. 

그가 7살이었을 때 역시 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차가 느린 속도로 차고로 후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밍은 가벼운 외상만 입었다. 밍은 차를 무척 좋아해서 차를 보면 달려가서 차에 치이지 않으면 손에 쥔 물건으로 거울을 비틀거나, 깨거나, 차를 긁으려고 하였다. 하는 아들의 기이한 취미 때문에 여러 번 차 주인에게 돈을 물어줘야 했다.

하는 지난 6년 동안 자폐아 교육 방법을 연구하면서 아들을 위한 자가 치료도 직접 해 왔다. 그녀는 언론에서 "놀라울 정도"라고 극찬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아들 밍은 네 살이 될 때까지 눕고, 우유를 마시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정상적인 아이처럼 걷거나, 말하거나, 밥을 먹을 줄 몰랐다. 하는 집에서 아들을 돌보기 위해 대학 도서관의 일을 그만두고 자폐아 교육에 대한 책들을 사서 읽고 적용했는데도 소용없었다. 

결국, 남편인 후이(Huy)와 의논한 끝에 돈을 빌려 학교에 다니고, 아이를 돌봐주는 가정부를 고용하기로 했다. 하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국내외 선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아이의 치료 방법을 연구했다. 점차 그녀는 아들이 걷기, 말하기, 밥, 야채, 생선 등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녀가 아들의 발전에 대한 기쁨을 페이스북에 공유했을 때 일부 기자들이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와 신문에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이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자녀를 데려왔다. 그녀는 다른 자폐아도 성공적으로 치료해주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자폐아를 치료하는 데 뛰어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밍이 두 번째 사고를 당한 후 하는 아들의 진도가 더디지 않았냐는 의문이 생겨 고민에 빠졌다. 약 일 년 동안 아들에게 읽기, 쓰기, 연산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밍은 새로운 기능을 습득하지 못했다. 밍은 문장이 아닌 개별 글자만 읽을 수 있으며, 10개 이내로 연산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가 커갈수록 정상적인 발걸음을 내딛지 않고 활에서 쏜 화살처럼 돌진하는 것이다. 

그녀와 남편은 아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문을 잠가야 했다. 그러나 감금이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는 두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눈에서 이상한 빛이 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극도의 불안함을 느꼈다. 아들 안에는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이상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목표물에 방출될 경우에는 해결책이 없었다. 점점 더, 그녀의 아이는 폭발을 기다리는 화약통과 같았다.

 “우리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낼까?”

 후이는 아내가 반드시 반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당신이 미쳤어?”

 후이의 말을 듣고 하가 노려보면서 대답하였다.

“우리가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려고 한 것도 수백 번이고,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선생님들이 사과한 것도 수백 번이었어. 일반 학교 선생님들의 꺼리는 마음이 너무 싫어서 자폐아동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에 투자했는데, 이제 와서도 그런 제안을 하네. 나는 당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

 “나는 우리 아들을 교육해야겠다는 생각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당신이 아이를 향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걸 인정해. 하지만 작년까지 아이가 더 발전하지 않고, 심지어 나빠진 것 같아. 최근 사고를 통해서 깨닫지 못했어?”

 후이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해?”

 하도 짜증을 냈다.

“나도 최선 다 했어.”

“당신이 아이 교육 방법을 바꿔야 해!”

 후이는 대답했다.

“어떻게 바꿔? 자세히 말해주면 안 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당신이 알아봐야지. 자폐아 교육 전문가가 당신이잖아, 나 아냐. 우리 처음부터 이야기했었지? 나는 경제 문제를 부담하고, 당신은 모든 시간을 투자해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는 것. 지금 당신의 교육 방법으로 아이가 발달하지 않으면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머리를 써야지! 이대로 아이를 내버려 두면 안 돼. 발전하지 않으면 나빠질 거야.

”난 신이 아니잖아!“

하는 삐쳐서 말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옳다. 발전이 없으면 나빠질 것이다. 밍의 최근 사고는 그녀에게 심각한 경고다. 아이를 발전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아이를 잃게 된다. 아들이 완전히 망가지면 그녀의 노력, 열정, 사랑, 그리고 얻은 명성마저도 불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방법은 무엇인가? 아무리 궁리해도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교육에 더 투자하고, 수준을 높이면 자식을 계속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몸서리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미래가 없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나쁜 생각이 그녀를 삼키지 않도록 고개를 저었다.

***

하는 급히 달려가 아들의 입에서 왼손을 재빨리 빼냈다. 그녀는 아이의 손톱 열 개가 모두 물려서 감염되고 부어오르고, 피가 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았다.

 ”화(Hoa)!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지 않게 돌봐달라고 했잖아?“

하는 참지 못하고 가정부에게 소리쳤다.

”제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밥을 데우려고 아이를 잠깐 놓아주었어요.“

가정부가 변명했다.

하는 한 손으로 아이의 두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밍의 손등을 쳤다.

아이는 손과 신체의 다른 부분에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을 알았다면 그렇게 열 손가락을 물어뜯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의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침 그때 하의 고등학교 친구가 찾아와 아들의 문제에 대해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그녀에게 ‘생존 기술’ 코스를 소개했다.

'생존'이라는 두 단어가 하의 뇌리에 박혔다. 맞다, 그녀 아들에게 이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 삶에서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하고, 피하는 방법과 극복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남편과 그녀가 죽은 후에도 아들은 계속 살아가야기 때문이다.

하는 남편과 의논할 시간이 없어서 생존 기술 코스 주최자에게 연락하여 밍을 위한 과정을 등록했다. 하이퐁(Hai Phong)에서의 일 개월 집중 과정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자폐아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진실을 말하면 받아들여 지지 않을까 봐 여전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이자 생존 기술 교육 담당자인 응옥(Ngoc)은 밍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수업료는 꽤 비쌌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하는 응옥선생이 학습 기간에 아이들을 군대 막사에서 관리한다고 말하자 안심했다. 그렇게 하면 밍이 뛰어나갈 기회를 찾지 못하고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응옥 선생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음이 싱숭생숭하였다. 몇 분마다 그녀는 전화를 확인하면서 응옥 선생이 밍을 집에 데려가라고 전화를 걸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하루가 순조롭게 흘러갔다.

오후 6시에 응옥 선생의 전화가 왔다. 하는 전화를 받자 즉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응옥 선생의 목소리는 꽤 차분하게 들렸다.

 ”이건 좀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응옥 선생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 둘 다 교육 업계에 일하고 있고, 무엇보다 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혹시 밍에게 다른 특징이 있으면 알려주길 바랍니다.

 ”미리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드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진실을 아시면 저희 아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는 머뭇거렸다.

”제 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과잉행동 장애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정상적으로 걷지도 못하고 제지하지 않으면 그냥 달려갑니다….

하는 아들의 문제와 이상한 행동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어째서인지 응옥선생이 조용히 듣기만 해도, 믿음이 가서 아이의 부족한 점을 망설임도 숨김도 없이 털어놓게 되었다.

“저는 아이를 잘 이해하고 정보 부족으로 인해 생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집에 돌려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밍이 꼭 좋아질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는 밍이 특별한 경우라 등록금을 더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응옥 선생은 거절했다.

통화가 끝났지만 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응옥 선생은 "밍이 좋아질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한 게 맞나? 선생은 자폐증이 무엇인지 이해하면서도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한 것인가? 선생이 삼 일째까지 밍을 관리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겠다. 그래도 어쨌든 희미한 희망에 집착하는 것이 의심과 걱정보다는 낫다. 하는 다른 자폐아들을 가르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려고 하였다.

***

'생존 기술' 코스 주최 측과 부모 사이에 약속한 대로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전화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밍이 이상한 병을 앓고 있어서 하와 남편에게 훨씬 더 큰 도전이 되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질문이 일어났다. 응옥 선생은 어떻게 밍을 통제하고 있을까? 그의 기이한 행동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선생은 아이를 묶거나 심지어 때렸을까? 친부모로서 아이를 견디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외부인, 특히 교사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날 밤, 부부는 조바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응옥 선생의 생활 기술 훈련 시설에 갔을 때, 남편과 그녀는 밍을 만나서 놀랐다. 그전에는 오랫동안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몸이 마르고, 피부가 창백했는데 이제는 밍이 듬직하고 피부가 구릿빛으로 빛났다. 하가 아들의 두 손을 잡았는데 이상하게 열 손가락 끝이 다 나아있었다.

 ”아이가 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을 거의 버리게 되었습니다.“

 응옥 선생이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90%를 없앴습니다.“

 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라서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셨나요?“

 ”밍! 부모님께 저글링 하는 걸 보여줘 봐!“

 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에 응옥 선생은 밍에게 세 개의 테니스공을 주었다.

 ”네!“

 밍은 순순히 대답하며 부모 앞에 서서 일 분간 공 세 개를 떨어뜨리지 않고 저글링을 했다.

 ”저 방법으로요.“

 응옥 선생이 말했다.

 ”밍이 손가락 물어뜯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선생님 중 한 분이 밍의 손을 바쁘게 유지하여 손가락을 물지 않도록 이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하는 감동하여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행복하고, 감동하며, 감사하였다. 그녀는 십 년 넘게 아이와 함께 살아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일을 응옥 선생과 얼굴도 모르는 어떤 선생이 성공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위협만 하며 아들의 손을 때렸고, 때로는 꼼짝 못 하게 아이의 두 손을 붙잡기까지 했다. 마음이 왜 그렇게 강퍅했을까! 과연 교육에서는 자녀를 위해 모든 사랑과 지혜를 쏟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아드님이 정말 잘해요.“

 응옥 선생이 강조했다.

 ”밍을 우리 시설에 머물게 해주시면 저글링 기술을 강화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부터 시작해서 다른 기술을 배우면서 사고 능력을 더 개발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응옥선생의 말을 듣고 하는 깜짝 놀랐다.

 ”그걸 장담할 수 있으신가이요? 인정하는 전문 기관이 있습니까?“

응옥선생이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우리 센터가 장담하겠습니다.“

 응옥 선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떤 전문 기관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인정될 때까지 기다렸다면 일을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저희는 실제 결과로만 증명합니다. 믿어주십시오.“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 후이는 희망을 품은 빛나는 응옥 선생의 눈을 보며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저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밍이가 아까부터 계속 가만히 앉으면서 어디로 뛰어가지 않고, 아이의 손톱도 멀쩡한 걸 보니 선생님을 정말 믿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보고 싶어도 아이 미래를 위해서 여기에서 밍이가 계속 공부하게 받아들여 주시길 바랍니다.“

***

그 이후로 밍은 응옥 선생의 센터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센터와의 새로운 약속에 따라 하와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방문하고, 삼 개월마다 주말에는 이틀 동안 아이를 집에 데려갈 수 있었다. 

하의 부부는 점차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데 익숙해졌고, 아이가 눈에 띄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였다. 밍은 일반 아이처럼 읽고 쓰기를 잘하지만, 산수는 아직 약하였다. 일 년 후, 아이는 화살처럼 돌진하는 행위를 버리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후이는 너무 기뻐하여 응옥 선생의 방법을 인정하고, 입을 열 때마다 응옥 선생을 칭찬할 정도로 여신처럼 존경하였다. 심지어 같은 상황에 부닥친 부모를 찾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밍처럼 자녀들을 응옥 선생에게 데려가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아내의 코스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야기하고 응옥 선생의 코스를 참고하라고 권했다. 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그렇게 응옥 선생을 지나치게 믿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밍의 경우에 응옥 선생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자폐아 전문적 치료 분야에서 응옥 선생이 취득한 학위가 없었고 어떤 기관에서도 인증하지 않았다.

그날, 하와 남편은 응옥 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매우 놀랐다. 다음 날 밤에 밍에게 베트남 기록 보유자 증명서를 수여하니 수여식에 참석하러 오페라 하우스로 가라고 했다.

 ”선생님! 이거 장난치신 거 아니죠?“

 하는 믿을 수 없어서 응옥선생에게 물었다.

 ”우리 밍이가 뭘 했길래 기록 보유자 증명서까지 받는 건가요?“

 ”통보해 드린 대로 약속 시각에 와서 보면 됩니다. 그때 초대장을 줄 사람이 입구에서 기다릴 겁니다.“

 응옥 선생은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신반의하면서 하부부는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았다. 많은 사람에게 물은 결과, 다음 날 밤 국가에서 수여하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기록 보유자 영예 증명서를 수여하는 행사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기록 보유자 명단은 아직 발표되지 않는다.

이튿날 밤 객석에 앉은 하와 남편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마음이 초조해지며, 공연과 첫 번째 기록 보유자에게 증명서를 수여했을 때 집중하지 못했다. 하는 꽃다발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 생각했다. 부끄러워질까 봐. 갑자기 남편이 그녀의 무릎을 쳤다.

 ”여보, 저기 봐, 우리 집 ‘화살’ 아냐?“

 하는 안경을 조절했다. 서커스 연주자처럼 흰 새틴 셔츠에 파란색 바지를 입고 나오는 한 잘생긴 단발머리 소년이 무대에 올랐다. 그 소년은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고 다시 꼈다.

소년은 인사하러 청중에게 고개를 숙였다. 검은 옷을 입은 지원자 네 명이 나와서 다섯 개의 롤러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놓았다. 소년이 한 손으로 나무판자 위에 기대고, 다른 한 손은 옆에 있는 지원자의 어깨에 얹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하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세상에, 그녀의 밍이 저 소년이라고? 그 다섯 개의 롤러 위에 서 있으면, 떨어지겠다! 왜 그들이 감히 그녀의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인가?

 그러나 밍은 다섯 개의 롤러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에게 테니스공 여덟 개와 머리에 얹을 물 한 병도 주었다. 몸이 흔들리고, 공을 던졌고, 물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얼굴이 위로 향했다. 나무판자 위에서 균형을 잡는 아들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하도 숨을 죽이고, 나무판자가 평형을 유지하기를 기도했다. 그녀는 아이가 공과 물병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절대 볼 수 없었고, 두려워서 어지러웠다.

공연장에서 박수가 터지자 하는 정신을 차렸다. 그 소년은 무대에서 뛰어내리며 웃었고, 월계관을 어깨에 걸치며 기록 보유자 상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사회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황 빙 밍(Hoang Binh Minh)! 2017년 베트남 기록 보유자, 다섯 개 롤러에서 균형 잡기, 물병 얹고, 최장 시간 동안 여덟개의 공을 저글링 한 최연소 기록 보유자입니다!“

하의 귀가 윙윙거렸다. 남편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남편이 우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그녀의 아들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어떤 방송국은 인터뷰했다.

 ”지금 이 영광스러운 순간에 밍 씨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저… 하 엄마, 후이 아빠, 그리고 응옥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목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많은 괴로움과 시련 끝에 마침내 그녀는 남편, 그리고 아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울기만 했던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 많은 십 대들의 아이돌이 되는 아들을 안아 주지도 못했다. 이것이 단지 꿈일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하 엄마, 물을 드세요!“

 밍은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었다.

 ”오, 물이 어디 있어?“

 하는 아들의 손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여기요!“

 밍은 어머니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으면서 머리 위에 있는 물이 담긴 컵을 보여줬다.

 ”아, 고마워!“

 하는 아들의 독특한 물 주는 방식에 기뻐하고, 놀라며 행복했다. 평소처럼 손으로 물잔을 가져오지 않고 머리에 얹었다. 정말 똑똑하다! 그야말로 서커스단의 곡예사이다.

 ”서커스 언어로 밍은 ‘복제’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응옥 선생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밍은 허리부터 머리까지 엄청난 유연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연습 끝에 삼 개의 어려운 공연을 다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보셨듯이 최고의 서커스 전문 곡예사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릅니다.“

 ”모두 다 응옥 선생님과 센터의 모든 선생님 덕분입니다. 저희가 평생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말했다.

 ”저번 통화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 저희가 밍을 집에 아예 데려가고 싶습니다. 저는 빙밍(Binh Minh) 자폐아 치료센터 확장에 투자했습니다. 지금 아이의 진전과 함께 다른 자폐아들도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 있습니다.“

 ”사실 저희는 밍이가 여기 머물렀으면 정말 좋겠어요. 지금 밍이는 스타이자, 본보기이며 다른 아이들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응옥 선생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밍이를 다시 데려갈 권리는 그쪽에 있는 거죠. 앞으로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면 저희와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하와 후이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행복해야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방금 응옥 선생과 손을 뗀 것 같았다.

택시는 공사 중인 도로를 위아래로 쿵쿵거리며 간다. 택시 안에서 밍은 계속 뒤를 돌아보며 응옥 선생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밍은 선생의 눈꼬리에서 반짝이는 눈물을 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의 느린 동작처럼 일련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가 달려와서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는 선생이 울고 상처를 문질러줬고, 차려준 밥그릇을 넘어뜨렸을 때도 선생이 울었고, 감기에 걸려서 열이 엄청나게 났을 때도 역시나 선생이 울면서 죽을 먹여줬다. 밍은 일어나서, 화살처럼 응옥 선생을 향해 돌진하고 싶었지만, 택시는 그를 가두었다. 

억눌린 흐느낌으로 몸이 떨렸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새빨간 옷으로 검은 플라스틱 방울처럼 떨어졌다. 응옥 선생의 모습이 점점 흐려진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기록 보유자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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