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양영길의 시집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간]양영길의 시집 '꿔다놓은 보릿자루'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11.2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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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길 시인
양영길 시인

발간의 변

우리들은 나도 모르게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때가 있다. ‘군중 속의 고독’같은 소외감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다보니 소외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시간들이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은 길었지만 계절은 어느새 바뀌고 또 바뀌었다. 하루 빨리 정상의 시간을 되찾고 싶어 이 시집을 내게 되었다.

시집을 엮으면서 _ 고집

1

아주 가끔이지만
시작 노트니 시작 메모니 하는 것을 부탁받는 일이 있다
시에 각주를 붙이는 것도 부족해서
설명을 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번역도 아닌데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곱씹어 본다

읽다가 맘에 들고 공감하면
여러 차례 읽고 좋아하면 그만인 것을
밑줄 치고 공부하듯 시를 대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사족을 붙이라는 것처럼

나는 장미꽃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향기가 있는
시간의 강물을 건너 건너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가시만 앙상했다
나를 할퀴려고 들었다
잠깐 시간을 내어 바람이라도 쐬야겠다

2

제주어 시는 표준어 독자에게는 좀 난해하다
그래도 그냥 두기로 했다
많이 죄송하다
고집이 있는 시인이고 싶어서다
제주어 시만 따로 묶어낼 기회가 된다면
표준어 해석을 곁들일 생각이다

3

해외 봉사활동에서 보고 느낀 걸 몇 자 적었다
오지 마을에서 2~3주 그들과 함께 숨 쉬면서
있었던 이야기다
시 몇 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양영길 시인
표지

표3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 사람들의 하루는
물 긷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물은 모두 아이들 몫이었다.
머리에 이거나 때로는 끌거나
모두 노란 물통을 가지고 다녔다.

아포루오콜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도
읍내 장터로 가는 길에서도
은예로보건소 한 쪽에서도
펌프장마다
노란 물통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아이들의 손 펌프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잠시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말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역사의 언덕을 지나
휘파람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물 길러 다니는 아이들」에서

표4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자연에서 출발하여 자연으로 회귀되는 의미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의미구조는 단순히 자연 친화적 정서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시집 전반에 걸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변주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친구가 되고 때로 애인이 되며 때로는 그치잖고 이어지는 역사가 된다.

그는 창작적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따뜻한 메시지로써 독자와 소통하려 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문학적 효용과 자신의 소명을 합일화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지연의 해설 중에서

◆양영길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을 거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신춘 당선(1991)이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이번 시집을 엮고 있는데, 청소년 시집 『궁금 바이러스』(2017) 4쇄 발행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시집으로 『바람의 땅에 서서』(2000), 『가랑이 사이로 굽어보는 세상』(2005)이 있으며, _ 저서로 『한국문학사 인식 어떻게 할 것인가』(2001), 『지역문학과 문학사 인식』(2006), 『이론을 뛰어넘는 문학 이야기』(2007) 등이 있다.

이외에 30여 편의 문학평론, 50여 편의 문화비평 칼럼 등이 있다.

현재 <돌과바람문학회> 회장과 YouTube 채널‘오지랖 Antenna’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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