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고집은 시의 적...읽히는 시를 쓰자”
이어산 "고집은 시의 적...읽히는 시를 쓰자”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9.06.07 23:45
  •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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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40)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40)

□고집, 그 고정관념의 시 쓰기

시를 자기 고집대로 쓰려는 사람이 있다. 개성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 고집의 다른 말은 고정관념이다. 시 짓기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이다.

시를 발표하는 것은 독자가 공감하고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해석한 무엇을 독자앞에 내어 놓는 일이지 자기고집이나 감정의 배설이 아니다.

“읽히는 시를 쓰자”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난해한 시를 쓰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그 시를 알아볼 사람들을 위해 쓰고 발표하는 것이다. 읽히지 않은 글은 죽은 글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지만 관습이나 고정관념, 즉 고집은 시의 적이다. 무엇을 보느냐는 고집이고 산문이다.

여러 번 강조 했지만 습작한 시들을 보면 '무엇을' 설명하는데 시인의 역량을 쏟는다. 시는 ①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 ②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③어떻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다.

이처럼 시인에게 요구되는 필연적 자질은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다의성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1:1로 설명하는 것은 시로 승화되지 못한 시 이전의 시다. 1:2는 시의 묘사고 1:3은 진술, 1:4나 1:5는 의미의 연쇄적 확장이다.

대상에 진술이 제대로 들어가고 의미의 연쇄(sequence)를 함유해야 현대시가 추구하는 시 짓기가 된다. 따라서 시인의 고집이란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이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버리기 싫으면 시 쓰기를 중단하고 산문으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의미의 연쇄 확장을 위해서는 약간 모호하게 쓰는 방법이다. 시인이 자기주장을 확정하듯 쓴 글은 확장성이 약화 된다.

   내가 잠들지 못한 것은
   당신이 나를 잠들지 못하도록
   사랑하기 때문이며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OOO, <내가 잠들지 못한 까닭>에서


위 글은 시가 될까? 이런 글은 아직 시로 성장하지 못한 글이다. 글 어디에 독자가 생각할 여유 공간이 있는가?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한 글이다. 만약 이렇게 썼다면 어떨까?

   당신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함민복,<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부분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흔한 표현과 자기만의 확장성이 있는 여유 공간, 즉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느냐가 시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갈림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을 그대로 보면 그냥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평범한 것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내는 사람이고 그것에 가치를 넣고 생명력을 들춰내는 사람이다.

   나무는
   땅에 박힌 가장 튼튼한 못.
   스스로 뿌리 내려
   죽을 때 까지 떠나지 않는다
   만신창이의 흙은
   안으로 부드럽게
   상처를 다스린다

   별은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
   뿌리도 없는 것이
   몇 억 광년 동안 빛의 눈물을 뿌려댄다
   빛의 가장 예민한 힘으로 하느님은
   끊임없이 지구를 돌린다

   나는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스런 못.
   튼튼하게 뿌리내리지도
   아름답게 반짝이지도 못해
   붉고 푸르게 녹슬고 있다

   소독할 생각도
   파상풍 예방접종도 받지 않은 그대,의
   붉고 푸른 못

      - 유용주, <붉고 푸른 못> 전문

시인의 시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무엇인가를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고 위에서 말했듯이 이 시는 나무와 별과 화자에게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시적 대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시켜도 될 만한 이미지로 시적소통을 극대화 하는 작법이다. 시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느끼도록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듯 정서적 감흥을 불러온다.

그리고 ‘못’과 마지막 연 둘째 줄에 ‘그대,의’엔 쉼표가 찍혀 있다. 다분히 의도적 메시지가 들어있다. 유용주 시인은 목수다. 나무와 별은 땅과 하늘에 박혀있는 가장 튼튼하고 아름다운 별이란다.

다만 ‘나;로 지칭된 화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못이 될 수 있다는데 이 부분은 바로 세상 사람들로 전이되는 상상력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못과 생활하는 그의 이력이 못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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