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묘사만으로는 잘된 詩가 아니...진술과 조화돼야"
이어산 "묘사만으로는 잘된 詩가 아니...진술과 조화돼야"
  • 뉴스N제주
  • 승인 2019.05.31 23:15
  • 댓글 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칼럼(39)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39)

□묘사와 진술의 조화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그림을 처음 배울 때 데생이 그림공부의 기초가 되듯 시 쓰기의 기초는 묘사하기다.

물론 설명시와 논증시, 체험시도 묘사시와 더불어 기초가 되는 시 작법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묘사시(descriptive poetry)를 오늘은 먼저 알아보자.

   갈매기떼가
   썰물을 끌고 간다
   가다가 저만큼 부리의 힘을 탁 놓아버린다
   뻘 건너 수평선이 팽팽해진다
   발바닥이 드러난 어선들이
   스크류를 이빨처럼 간다
   뻘밭이 수천 개의 흡반을 들이댄다
   박하지 새끼가
   구멍마다 집게발 하나씩을 내밀고
   노을을 섬득 베어문다
   뻘이 번득이며 붉게 물든다
   아직도 흙탕인 바다가 지는 해를 한 번 더  울컥 떠 올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이
   뻘이 깊이깊이 기라앉는다
   작은 횟집 몇이 불을 켜들고
   흡반속으로 빨려든다

        - 김윤<마량진> 전문


위 시에서 보듯 묘사만 잘 되어도 괜찮은 시가 될 수 있다.
충남 서천군에 있는 마량진이라는 어촌포구에서 바다와 뻘밭의 정경을 잘 묘사한 시다.

마량진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떠 오른다.

"갈매기떼가/썰물을 끌고 간다"거나 "수평선이 팽팽해"지고 "뻘밭이 수천 개의 흡반을 들이댄다"는 등 절창구가 계속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박하지 새끼가/구멍마다 집게발을 내밀고/노을을 섬득 베어문다"고 썼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인의 감정과 정서를 최대한 절제하고 풍광을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라면 묘사만으로도 훌륭한 시가 될수도 있지만 묘사는 시를 구성하는 기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자는 묘사만으로는 '시 이전의 시'라고까지 말한다.

묘사는 진술과 조화가 되어야만 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깊은 울림이 있는 시의 대부분은 잘 된 묘사에 진술(시인의 사상)을 넣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사람살이와 관계있는 시 짓기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시는 묘사와 진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저기, 바다는 묘지처럼 배를 부풀리고
   해변의 떼 찔레꽃은 바닷새처럼 떨어진다

   그대 바다로 오라
   누구나 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옷 벗은 사람을 만나리라

       - 오규원,<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전문

위 시의 첫 연은 직유법을 동원한 묘사다. 그리고는 진술을 끌어와서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

따라서 시란 이렇게 묘사와 진술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졌을 때 좋은 시가 탄생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