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시 창작 강좌(29)
□은유와 여백의 미
시에서 은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다. 은유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산문이 될 위험이 크다. 은유란 결국 이말 하면서 저말을 하는 표현 기법이다. 이것을 J.C랜섬은"시인은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시에 드러난 내용과 숨겨진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 정호승,<봄밤> 전문
한평생을 성실하게 살다 가는 개미를 인간의 모습에 대비시켜 놓았다. 화자는 개미나 인간이나 생명이 있고 결국 평등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는 연탄재가 버려진 가난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개미 같이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고단한 서민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저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다.
바다를 나온 갈매기는
새벽 기차에서 내린 잡새들 틈에 끼어
언 얼굴을 내밀었다 표정 없는 새들과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을 보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역 뒤편으로
아니면 너와 나의
따뜻한 추억 속으로...
- 감태준, <떠돌이 새> 전문
이 시는 여백의 미가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바다를 떠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독자가 짐작할 일이다. 낯설고 고단한 서울역 뒤편, 방황과 갈등이 이 시의 여백에 있다.
여백의 미는 그냥 빈자리를 남겨놓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대상과 조화가 되어야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고 말할 수 있다.
말과 침묵의 조화가 어우러져야 시가 답답하지 않다. 시의 정서는 사실 동양화 같은 것이다.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축약된 말로 독자가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다 말하지 않는 작법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