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30)
□시 이론을 배워서 시를 쓴다고?
시는 우리의 생각(사상과 감정)을 운문(마디글) 형태로 쓴 것이다. 이런 글은 사실 누구나 쓸 수 있다. 시인이란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잘 쓴 시와 그렇지 못한 시가 있는데 잘 쓴 시란 시적 표현이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말의 낭비가 없는 형태다. 반면 못 쓴 시는 남이 흔히 쓰는 말을 늘어 놓거나 자기의 지식을 나열하여 허황돼 보이게 한 시다. 그러므로 잘 쓴 시는 대게 아는체 하거나 남의 시를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진정성이 있는 겸손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의 이론을 많이 알면 시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의 이론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문학평론가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평론가는 시를 잘 쓸까?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순수하게 시만 쓰는 사람보다 시의 감동이나 완성도에서 뒤쳐지는 경우는 많다.
시인들의 자조섞인 푸념 중엔 "시가 안 되면 평론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필자도 사실 평른을 하다보면 정작 나의 시엔 힘이 들어가서 독자에게 크게 공감을 못 주는 시가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시를 평하기는 쉽다.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론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처럼'이나 '~듯이' '~인 양' '~같은' 직유, 또는 비유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다. 그런데 실제 발표한 시를 보면 수박 겉핧기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자.
서산 마애본존불엔
백제의 미소가 숨어 있는데
오가는 사람들은
합장을 하며 소원을 빈다
중앙의 본존불 좌우의 협시불
삼존불은 그윽한 미소로
사람들의 소원들 듣고 있다.
위 글은 어느 시 창작반 수강생이 쓴 것이다. 이 글은 시로 분류는 할 수 있어도 내용에서 시적인 것이 없다. 알려진 삼존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런 글을 지식 자랑글, 백화사전 베낀 글이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글이다. 같은 대상을 다음과 같이 썼다면 느낌이 어떤가?
백제도 없는
백제 땅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득도한 돌부처니까
백제의 미소 지어 보라니까
쓸개도 돌이니까
단칸 절벽 암자
만년 객승처럼
허구한 날, 기왕이면 허방허방 웃어줄 수밖에
임철재, <백제의 미소1-서산마애본존불>전문
시는 이렇게 적확(的確)한 시적표현을 찾아내는 일이다. 임철재 시인은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시적인 것을 다음과 같이 찾았다.
만져서는 안 될 수직의 비밀 모서리
햇살의 정(釘)으로
천길 아슬한 입술 도톰히 다듬어 놓고
죽어도 좋을 불륜처럼 산그림자가 더듬고 있네요
돌부리 저미는
물구름 물소리만 아스러지게 남겨 놓고
뒷모습도 없이 떠나 갈
햇발의 돌장이, 그래도 밉지 않아
가는 길
볼그레 물들 때까지 볼그레 웃어주며
진달래 분홍 분홍 진 돌장삼 여미지도 않고
속세의 아쉬운 인연처럼 하냥 손짓하고 있네요
- <백제의 미소2-서산마애본존불의 파적>전문
보는 사람에 따라 마애삼존불의 표정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시인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서 변해 가는 석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햇발의 돌장이'로, 산그림자가 마애불을 덮고 있는 것을 '죽어도 좋을 불륜처럼 더듬고 있다'고 유추한 뛰어난 시적 기량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에선 이론을 잘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벌말이 없도록 시적 표현을 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첩경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계속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시를 더 공부하여 잘 썼을 때 발표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30여년 이상을 봐온 경험으로는 그런 사람은 몇 년 후에도 잘 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는 쓰면서 배우고, 고쳐 나가면서 쓰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론을 많이 알면 시 쓰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론이란 단지 참고용일 뿐이고 지금 내가 할일은 불완전 하게라도 자꾸 써보는 일이 먼저이고, 그러면서 시쓰는 방법을 깨닫게 되며 한 단계씩 성장해 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전한 시인이란 없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