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
□시적 발견과 언어의 재 배치
시나 소설, 비평이나 논설 등 모든 문학은 언어로 전달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산문의 언어는 객관적인 서술이 필요하지만 시는 주관적 느낌으로 생략과 비약, 확대를 통해서 언어와 제휴하고 언어와 대결하되 산문과는 달리 설명하지 않는 문학이다.
설명하지 않되 감동이 있는 축약된 글을 시로 본다면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칭하는 것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은 아니다.
가장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고 그 언어를 가장 경제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이다. 또한 시인은 길가의 돌이나 집안의 냉장고, 골목의 전봇대에도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다음 시를 한 편 보자.
여러 난초 화분들 중에
밑둥치만 남은 것이
자꾸 보채는 것 같아
그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잔자갈 아래 분명
가녀린 실뿌리 하나쯤 있으리라
믿고 물을 주었는데
아직 아무런 기척이 없다
물을 머금는 걸 보니
삶을 다듬고 있나 보다
더 기다려 보자
남은 봄이 또 있으니
- 조승래, <짝사랑> 전문
봄의 끝자락인가 싶더니 여름이 뛰어 오는 것 같다. 여름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뛰어 올리 만무하지만 계절도 의인화 하여 축약을 하면 훌륭한 시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이나 문학동아리에서 사물을 의인화 하여 대화하는 내용의 글을 써 오라는 숙제를 가끔 내어주었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시의 좋은 씨앗이 된다. 그 씨앗을 가슴에 품고 사랑이라는 물을 주고 적당한 온기로 키우면 좋은 시가 탄생하게 된다.
위에 소개한 시도 밑둥치만 남은 난초 화분에 대한 이야기를 품었다가 시로 승화 됐다. 이 시는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난초를 의인화 시켰는데 이 난초의 밑둥치는 화자에게 보채기도 하고 삶을 다듬고 있다고도 했다.
시인이 의도 했던지 안 했던지 간에 사랑 받지 못해서 외롭게 죽어가는 소외되고 낙오된 인간에 대한 사랑일 수 있다는 시적 확장성을 지녔다. "세상에는 밑둥치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연민이 깃들어 있다.
한 편 더 보자.
바지를 벗어놓으면
바지가 담고 있는 무릎의 모양
그건 바지가 기억하는 나일 거야
바지에겐 내 몸이 내장기관이었을 텐데
빨래 건조대에 얌전히 매달려 있는
내 하반신 한 장
나는 괜찮지만
나 이외의 것들은 괜찮을까, 걱정하는 밤
내가 없으면
옷들은 걸어 다니지 못 한다
- 박연준, <바지를 벗다가> 전문
이 시도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 대한 시적 발견과 진술이다. '바지가 기억하는 나'를 바지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있다. 이처럼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개인적 발견이자 언어의 재 배치 작업이다. 일상적 언어도 시적 배치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눈을 씻으러
들어간다
- 김일영, <석양> 전문
-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