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46)
□하나의 대상 물고 늘어지기
독자는 시를 통해서 시인을 만난다. 전혀 다른 환경과 정서, 낯선 경험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인내심이 없고 냉정하다는 사실을 시를 쓰는 사람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해되기 쉽지 않은 시를 써놓고 바쁜 현대인에게 배려심을 발휘하여 몇 번씩 자기 시를 읽어보고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은 독자를 고문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주관적인 성격의 장르이기에 독자와 다 소통할 수도 없고 이것을 너무 의식하면 시가 풀어져서 싱겁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제대로 독자와 소통하는 시는 정서와 느낌으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가 하나의 정서를 향하여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이 말했다가 저 말하는 등 혼란스러우면 안 된다.
시의 내용에 새로운 심상(형상화)으로 암시와 여운을 남겨놓는 것이 좋다. 그래서 시적 포인트(핵심)가 중요하다. 이것은 한 가지의 대상이나 한 가지의 현상을 시에서는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시 짓기를 '하나의 지배적 정서'라고 한다.
집중하고자 하는 하나의 장면과 하나의 대상을 선택한 후 하나의 정서에 집중하면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여러 대상이 등장하면 혼란스럽거나 하나의 정서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완벽한 네 개의 벽
은밀한 공간 속에서 너를 만난다
그 싸늘한 외투를 한 겹씩 벗기고
나는 네 몸을 더듬으며
때로는 긴장하고
때로는 깊은 환각의 늪에 빠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흔적
무너진 너의 정조를 슬퍼 않으리
나를 마주하고 있는동안
철저히 나의 것이 되어
가장 은밀한 깊은 의미 까지도 열어보이는
그리고 내 영혼을 뒤흔드는
너의 애절한 순교에 감동하는 것이다
완벽한 나의 공간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쾌락으로
전율해오는
아, 이 화려한 책과의 정사
- 강 만, <화려한 정사> 전문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은 독자를 묶어두는 끈이다. 이것을 '몰입성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몰입성이 없는 시는 독자를 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위 시는 에로틱한 하나의 장면을 끌고 와서 책과의 깊은 교감을 나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자가 몰입을 하도록 장치를 해놓았지만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울림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공감대 없이 혼자 심각해져서 시를 쓰면 독자는 심드렁 해지거나 식상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라고 반문할 것이다. 심각한 것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진정성이란 타인이 먼저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면 듣는 사람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듯 시에서의 진성성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 진정성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라 시에 등장하는 화자가 갖도록 해야 한다. 화자는 정서적 알몸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시의 성공 유무를 가르게 된다. 반면 심각한 것이란 감정의 과다 배출이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것은 시 쓰기의 기본이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