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는 신(神)'...시를 잘 쓰려면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야"
이어산 "'시는 신(神)'...시를 잘 쓰려면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야"
  • 뉴스N제주
  • 승인 2019.09.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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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53)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하늘 길(사진=이어산)
하늘 길(사진=이어산)

■ 토요 시 창작 강좌(53)

 □시는 신(神)이다.

필자가 30년 넘게 시를 써 오면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여러 시론을 떠올렸지만 막상 “이것이 시다”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었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시는 신(神)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는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대상이기에 그렇다. 인간이 어떻게 신의 일을 알겠는가?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기에 시는 죽을 때 까지 쓰고 또 쓰면서 시를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시의 길이다.

그래서 필자는 시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으로 시를 공부하기로 했다.
우선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기댔다
   그에게 등을 붙이고 있었다
   누워서 이마를 그에게 찧었다
   그를 두 손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의 뒤로 돌아가 소변을 해결했다
   그에게 공을 던져 튀어나오면 받았다
   그를 파서 난로를 만들었다
   정신없이 걷다 그에게 부딪쳤다
   그에게 못을 여러 개 박았다
   신경질 날 때마다 발로 차서
   아랫도리를 시커멓게 만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그도 무너졌다

      - 신미균, <벽> 전문

원구식 시인의 "탑"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시다. 탑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듯 내 곁에 언제나 그대로 있을 것 같은 벽도 결국 무너진다는 내용이다.

시사모 김미성 시인의 "낙엽"이 연상되는 시다. 벽을 보고 시를 쓰고, 먹다가 남은 짬뽕 국물이 쏟아져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웃기는 짬뽕"을 써서 독자들을 시원하게, 그러나 짠한 감동을 준 신미균 시인의 시가 좋은 시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 "시를 잘 쓰려면 시를 두려하지 말자"는 것이다. 시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사람이 결국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시를 멀리서 찾지 말자.
시는 우리 집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폐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기도 하며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시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숨어 있기도 하지만 어디든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면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만 자꾸 보여준다.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은 가식을 버리고 내면 깊숙이 감춰 둔 부끄러운 허물까지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진솔함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시가 권위를 갖는 것은 자기의 고백 뿐 아니라 사람들을 대신하여 진솔하게 마음을 드러내어서 독자로 하여금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 했을까!" 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어야 시에 다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를 과감하게 드러낼 용기가 있을 때 시가 찾아온다. 이때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비밀을 모두 드러내거나 나의 전부를 보여줄 각오를 해야 시는 나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말을 오해하여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진실하게 자기를 드러내되 은유적, 함축적, 상징적으로 쓰라는 말이다. 직설적인 글은 앞뒤 가리지 않는 동네 싸움꾼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시의 말(詩語)이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시는 더욱 숨어버린다. 우리의 보통 말인 구어체(口語體)다. 그것을 잘 조합해야 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를 머리로 쓰려고 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내가 쓰려고 하는 대상과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써야 시가 우리에게 와서 자리를 잡는다. 시를 제껴두고 자기 혼자서 머리를 쓰니까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시적 대상에 자꾸 물어야 시가 대답한다.

그렇게 쓴 글을 다시 가지치기를 하고 적확(適確)한 말인지를 생각해보고 다듬는 과정이 있어야 시가 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시는 상품이다. 독자가 읽지 않는 재미없는 글을 쓰면 시는 생명을 잃는다. 재미없는 시는 상점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팔리지 않는 상품과 같다.

시인은 시라는 귀한 상품의 공급자이고 독자는 그것을 소비하는 수요자다. 시는 소비자에게 안길 수 있는 상태를 가장 좋아한다. 의도가 다 드러난 시, 뻔한 이야기, 횡설수설하는 시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상품이어서 시답잖은 글이 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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