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10)
□ 시와 시인의 언어
모든 예술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미술은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미적 표현이라면 음악은 소리가 중심인 표현 예술이다. 시의 경우에는 인간 문명의 최고봉인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의 기능을 수행한다. 시가 모든 표현예술의 으뜸에 놓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지 않고 능숙하게 할 수 없듯 시는 언어를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는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조각가가 돌을 다룰 때도 그 돌의 생김새와 결, 강도 등 여러 가지를 제대로 파악한 후 조각을 한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조각을 할 수는 없듯 시인은 시적 대상을 포착했을 때 그것에 연결된 다양한 의미질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시를 잘 쓰는 시인은 '의미의 그릇'에 다양한 재료를 담아놓고 그것이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확인하고 혹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이가 딱 맞을 때까지 몇 번이고 고치는 일을 반복한다. 이 작업이 퇴고다. 시인에게 퇴고란 언어의 집을 잘 짓기 위한 기본 의무다.
'언어 의미의 그릇'에 담을 내용이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것이라면 구태어 시어로 차용할 필요가 없다. 사전적 의미를 시에서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시를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어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의미 변환의 언어다. 시는 붙박이 언어가 아니라 문맥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성의 언어다.
좋은 시인은 창조적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시적 대상과 의미질로 연결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뜬구름 잡듯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실패한 시다.
현대시가 잘 읽히지 않는 이유 중에는 시적 대상을 너무 난도질 하여 시인 자신도 무슨 말인지 설명이 쉽게 되지않는 시를 발표하거나 그런 시를 메이저급 시 전문지에 작품성을 이유로 도배를 하고 있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도 그런 시를 뽑는 일이 계속 되기에 시를 쓰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시를 잘 읽지도 않고 시집도 사보지 않는다. 골치아픈 시를 현대인은 멀리하게 되고, 쉽게 읽히는 사탕발림 같은 사랑 시를 선호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서정적인 시는 일부 평론가나 유명 시인들에 의해 서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시의 본류는 서정성이다. 의미의 중층성을 살리되 시의 서정성, 즉 음악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 음악성이란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자연스러운 것을 말한다. 말이 꼬이거나 부자연스러운 연결은 시의 사지를 뒤틀리게 하는 일이다. 낭송이 되지 않는 시는 음악성이 결여된 시라고 보면 된다.
시사모와 공동으로 주최한 2021<뉴스N제주 신춘문예> 공모에서 서정성 짙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시의 경우 3천 편이 넘는 응모작이 답지하여 그중에서 언어를 다루는 능력을 가늠하다 보니 시의 본질적 속성인 독창적인 인식 기능을 갖추고 있는지를 심사의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약간 난해하지만 중층구조로 새로운 해석의 시들을 본선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에게 주어진 큰 난제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의 시는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 선생의 시다. 병마와 싸우면서 쓴 시라서 그런지 그의 '산'은 항상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성내기도 하고 서러워하기도 한다. 또한 아름다움 속에서 등장할 수 있는 인간의 갖가지 양상을 산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아래 시를 모방하여 '산'이란 제목으로 시를 써보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발견한 산은 어떤 산일까?
댓글로 시를 올려주시면 몇 사람을 선정하여 시집을 보내드리려고 한다.
산
김 광 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평야만 남겨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 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나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 바른 쪽의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모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음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모두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답답하면 솟아서 높은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가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깉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기슭에 언제나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가까이 두 계절을
사이 좋게 지니고 산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무기와 악기
공중전화는 무기처럼
독하게 찔러 상처를 냈고
때론 함께 흐느끼며
다독이는 악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무기였을까. 악기였을까
_ 이용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