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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는 곧 그 사람...나를 죽이고 화자를 살려야"
이어산, "시는 곧 그 사람...나를 죽이고 화자를 살려야"
  • 뉴스N제주
  • 승인 2021.02.05 22:1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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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킬럼](113)토요 시 창작강좌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

□시인이 가져야 할 회초리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를 공부하면 할수록 시 쓰기가 겁난다고 한다.

괴테가 말한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존재”라는 말과도 연결되는데, 모순어법 같으나 ‘알면 알수록 내가 알았던 것들의 가벼움을 떠나서 더 나은 쪽으로의 발전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는 더욱 그러하다. “시는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를 막 쓸 때는 몰랐지만 시를 알고 나면 그 시가 바로 자기의 얼굴임을 깨닫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꾀죄죄한 얼굴로 돌아다닐 수 없듯, 시를 발표한다는 일은 자기 얼굴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일이므로 시인다운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그 사람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시는 아무리 잘 썼어도 공허한 이야기다. 시인답다는 것은 결국 사람답다는 말과 같다.

초보 시인은 우선 ‘자기 입맛에 맞는 쉬운 시가 좋은 시’라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약간만 난해해도 시를 멀리한다면 결코 좋은 시를 알아볼 수가 없다. 좋은 시로 회자 되는 시들은 몇 번 읽어야 뜻이 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번에 쭉 읽히는 시는 한두 번 읽고 나면 싫증이 나서 곧 잊힌 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시는 두고두고 읽어도 맛이 있다.

시인이 “뻔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매운 회초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뻔한 사랑 타령, 꽃 타령, 그리움 타령이 떠오르면 자기 종아리를 때리는 심정으로 멀리해야 한다.

다음은 초보자의 글에 흔히 등장하는 구절인데 너무나 당연하고 식상한 이런 구절을 시에서 쓰면 그 시의 수준은 보나 마나다.

별이 빛나는 밤에, 달 밝은 밤에,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 넓은 광장, 사랑 그 지독한 그리움, 흘러가는 구름에 내 마음을 띄워 보내노니, 쓴 소주를 마시며,
넓은 바다에, 끝도 없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를 사랑하시던 어머니, 아름다운 장미, 따뜻한 봄날, 매화가 봄을 불러내고 있네요, 아지랑이 피는 봄날, 그 무덥던 여름, 여름날의 뜨거운 해수욕장, 쓸쓸한 가을, 추운 겨울, 태양이 빛나는 아침, 등등….

다 열거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당연하거나 뻔한 내용, 뜻이 중복된 문장을 시에서 쓰는 것은 “나는 왕초보”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는 일이다.

지난주에 이어서 필자가 두서없이 적어놨던 시 짓는 방법 중에서 여덟 가지를 소개한다.

1.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세상의 티끌처럼 작은 부분이다. 나의 경험에 매몰되면 시 몇 편 못 쓴다. 다른 사람의, 혹은 책을 읽고 간접 경험을 하거나 나만의 상상적 경험을 만들자.

2. 시에서 나는 죽이고 화자(시에서 말하는 이)는 살도록 하자. 화자가 시를 쓴다. 시인은 화자의 뜻을 적는 사람이다.

3. 시가 매끈해도 지향성(志向性)이 결여되면 죽은 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줄기를 잡자.

4. 시의 거품을 없애자. 그 단어를 빼버려도 뜻이 통하면 무조건 빼자.

5. 시가 안 될 때는 좋은 시를 모방한 시를 써보자. 내용을 모방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전개 방법, 뒤틀어서 독특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방하자.

6. 너무 길게 쓰지 말자. 20행~30행이 표준이다.

7. 젊은 언어를 사용하자. 고어체를 멀리하자. 곧 늙어 죽는 시다.

8.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보여서 냉정한 평가를 받자.

오늘은 다음의 시를 읽고 모방 시를 써보기를 바란다.

까마득한 벼랑바위
하늘과 땅이 기울었다가
바로 잡히곤 한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祈禱도 듣지 않는다 한다
죽은 이들의 祈禱만 듣는다 한다

_ 김종삼 『벼랑바위』 전문

위 시는 엄청난 역설이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 사람은 본능대로 사는 짐승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고약한 구경

튜닝을 하며 네가 그랬지
"히피 같은 몰골과 술주정뱅이 같은
문장이 매력적이야"막걸리같이 
걸쭉한 혀를 꼭 내밀어야 했었니

_ 정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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