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06)
□ 완벽한 인간의 발언, 시(詩)
시를 이해하는 일은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다. 언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동양시학에 큰 영향을 준 공자는 "시를 알지 못하고는 말을 안다고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했다. 즉 언어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소통이 된다고 했다. 말의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진의가 왜곡되기 일쑤다.
시의 언어란 우리의 보통 말과는 달리 내밀한 뜻을 담고 있는 언어다. 그래서 시를 가리켜 ‘언어의 정수(精髓)’라고 한다. ’정수(精髓)‘는 본질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본질을 다루는 시인은 말의 보고(寶庫)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자는 것이다.
시인이 함부로 말을 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양 시학에 영향을 끼친 영국의 대표적 시인이자 평론가인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는 “잘된 시는 인간의 완벽한 발언”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시 쓰는 일을 가벼운 일로 보지 않는다. 쉬운 시를 선호하는 것은 시의 본질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는 노력과도 같다. 달콤한 사랑시나 유행가 가사 같이 쉽게 이해되는 시는 시인의 이빨을 썩게 하는 단 음식과도 같다.
“너무 친숙하면 경멸을 낳는다.”는 서양 속담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지나치게 흉허물이 없으면 존경이나 존엄이 무시되기 쉽다. 시의 언어 중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들을 가져오면 시인으로써의 존엄이 무너지고 경멸을 받게 된다. 신선감이 없는, 누구나 아는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면 시를 죽이는 일이기에 그렇다.
시인은 매번 시적 대상에 감춰진 새로운 뜻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평론가 박태일 교수는 “시에서 동어반복(同語反覆)은 범죄에 가깝다”고 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적 장치가 아니라면 같은 단어나 문장을 시에서 반복하는 일은 자기복제, 즉 표절이라는 뜻이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떼거지로 몰려왔다”
이것은 동어반복적인 비문(非文)이다.
“많은 사람이/몰려왔다”고만 써도 된다.
‘엄청, 많은, 들, 떼거지’는 뜻이 같은 말이다.
시라는 짧은 문장 속에 이렇듯 같은 언어가 반복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처가 집’이나 ‘역전 앞’ 같은 위의 문장을 보고서도 뭐가 잘 못 됐는지 알지 못한다면 시의 기초를 좀 더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시적 표현이란 대단히 새롭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언어를 약간 비틀거나 새롭게 해석해도 시적 언어가 된다. 이 때 그 단어를 빼버려도 뜻이 통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빼보자. 그 뜻은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이 말을 해도 저 말로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산문과 달리 시는 언어의 본질로 말하는 문학이기에 그렇다.
어머니가 어린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내가 어머니를 씻겨드린다
"아퍼, 아퍼" 하는 소리는
내 어릴 때 소리 같다
오랜 병석에서 굳어진
어머니의 몸은
잘 풀리지 않는 숙제다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데
놓쳐버린 시간의 거리만큼
세상을 깜빡거린다
물가의 아이처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자꾸 흘러내리는 어머니를
내 지렛대로 받쳐 보는데
열탕에 몸 담그자
어머니는 알전구처럼 환하게 켜진다
- 김은덕, <목욕> 전문
화자는 어릴 때 자기에게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어머니를 씻겨 드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어머니를/내 지렛대로 받쳐 보는데"에서 짠한 시적 표현의 백미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화자의 거울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새롭게 해석된 어머니의 목욕 장면이지만 별로 어렵지는 않다. 그러면서 잔잔한 울림이 있다. 쉬우면서도 새롭고 새로우면서도 울림이 있는 시가 좋은 시다.
시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들을 이야기로 쓰되 새롭게 해석된 부분을 시적 언어로 표현 하면 좋은 시가 된다.
시적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적 이미지를 살릴 줄 알아야 한다. 이미지란 시적 대상을 축어적(縮語的)으로 암시하거나 직유나 은유를 동원하여 그 특성을 의미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성선설
얼굴색이 노랗든 파랗든 까맣든
속은 노랗고 달다
인간도 그렇다
_ 이국섭